갈등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을 위한 길잡이 — 〈짐멜의 갈등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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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을 위한 길잡이 — 〈짐멜의 갈등론〉
  • 정헌주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 승인 2023.02.1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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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짐멜의 갈등론: 갈등에 대한 사회학 논쟁』 (게오르그 짐멜 지음, 정헌주 옮김, 간디서원, 188쪽, 2023.01)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는 갈등의 사회다.” 얼핏 보면 “지금까지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라는 마르크스의 말로 들린다. 실제로 갈등 없는 사회는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아담과 이브 사이에도 갈등이 있지 않았을까?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현대사회는 한층 더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빈부갈등, 계층갈등, 노사갈등, 세대갈등, 남녀갈등, 주거갈등 등등 경제, 정치뿐 아니라 교육, 문화를 비롯한 모든 일상생활 영역이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런 탓에 갈등에 대한 연구들도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연구들은 현재의 갈등의 원인을 진단하고 대책을 세우는 등 많은 점에서 현재의 갈등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들은 단편적이거나 정책 보고서여서 복마전처럼 얽혀 있는 현대 갈등의 근원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럴수록 고전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17세기 이래로 19세기 또는 적어도 20세기 초까지는 경쟁과 혁명, 전쟁으로 얼룩진 갈등이 난무하는 시대였다(21세기에 들어서도 그런 갈등이 도처에서 크고 작은 형태로 재연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갈등을 사회학적으로 조명한 학자는 그리 많지 않다. 고전경제학의 대부이자 아직도 그 유산이 남아 있는 애덤 스미스는 자유라는 미명 아래 진행되는 무한경쟁의 시대 속에서도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연스럽게 갈등이 조정되어 균형을 이룬다는 낙관론(?)을 펼쳤다. 20세기 후반 들어서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보이지 않는 손이 부활하고 있다. 즉 갈등은 자연 소멸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속에서 사회양극화의 심화로 갈등은 일상생활 속으로까지 침투하여 우리의 삶은 낙관론은커녕 비관론을 넘어 파멸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 사회학의 주류라 일컬어지는 구조기능주의 이론에서도 사회를 체계로 이해하여 자동조절 메커니즘에 의해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며, 갈등은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일탈 요소로 간주한다. 교환이론이나 상징적 상호작용 이론 등에서도 갈등은 사회 균형을 무너뜨리는 주범(?)으로 간주하거나 부차적인 요소로 치부하여 깊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갈등을 사회분석의 중심으로 삼은 인물은 칼 마르크스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라는 말은 마르크스(1818~1883)가 살던 혁명으로 점철된 시대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역사 전체가 갈등의 역사임을 가리킨다. 마르크스에서 갈등은 사회의 본질이자 생명력의 원천이다. 즉 갈등 없는 사회는 발전하지 않으며 죽은 사회나 다름없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역사발전의 변증법적 발전 법칙을 이끌어낸다. 마르크스가 초점을 맞춘 것은 계급갈등이다. 당시는 계급갈등이 첨예화되던 시대다. 마르크스 이후로 150여 년이 지나고 혁명의 시대는 지났지만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마르크스의 계급갈등 이론은 유효하다.

현대사회는 계급갈등을 넘어 개인의 모든 생활영역에 갈등이 엄습하고 있다. 따라서 갈등이 모든 사회문제의 근원으로 부각됨에 따라 갈등에 관한 연구와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갈등을 원리적으로 다루는 저작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고전사회학자 중에 마르크스 외에 갈등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게오르그 짐멜을 갈등을 사회분석의 중심으로 부각시켰지만 그 방향은 다르다. 
 
게오르그 짐멜(1858~1918)은 마르크스보다 한 세대가 넘는 40년 후에 태어났다. 그때도 여전히 혁명과 전쟁으로 얼룩진 갈등이 고조된 시기였다. 하지만 짐멜은 갈등을 다른 시각에서 보았다. 마르크스가 애덤 스미스의 고전경제학, 헤겔의 변증법적 철학, 프랑스의 사회주의 사상에 기초한 정치경제학적 입장에서 갈등을 바라보았다면, 짐멜은 사회학, 사회심리학, 문화철학, 예술철학, 인식론, 윤리학, 형이상학, 미학 등을 두루 섭렵하며 일상생활 속의 갈등에 주목했다. 하지만 갈등을 부정적으로 보는 기존의 다른 이론가들과 달리 갈등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와 짐멜은 공통점이 있다. 그렇지만 마르크스가 사회변혁 관점에서 갈등을 조명한 반면 짐멜은 일상생활에서 갈등의 역할에 관심을 두었다.

『짐멜의 갈등론』은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대한 짐멜의 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짐멜의 유일한 저작이다. “갈등은 사회통합을 위한 한 방편이다.” 이것이 짐멜의 갈등 인식을 집약하는 말이다. 이 말은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 준비를 하라”는 말처럼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단순한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짐멜의 갈등관을 집약하는 보편적 진리에 가까운(?) 말이다. 짐멜은 지금까지 갈등(conflict)의 사회적 중요성을 원리적으로 논의한 적이 없었다는 일갈로 『짐멜의 갈등론』을 시작한다. 물론 갈등이 사회적 모순을 낳고 이를 극복하여 새로운 더 나은 사회를 창출한다는 갈등이론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마르크스 이론을 비판하는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짐멜의 갈등론』에서 갈등은 모든 사회적 관계, 상호작용의 중심을 이룬다. 갈등은 각종 집단, 조직을 생겨나게 하기도 하고 변화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갈등은 집단의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여 파멸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통합을 위한 방편으로 이해한다. 즉 비온 뒤 땅이 더 굳어진다는 말처럼 갈등은 집단의 통합을 공고화하는 방편, 수단이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갈등이 없는 집단의 통일은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짐멜의 갈등론』에서 갈등은 계급갈등처럼 거시적 측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곳곳에서 상시적으로 일어난다. 공장에서는 노사갈등(이것은 계급갈등의 한 측면이기도 하지만 공장이라는 한 집단 내에서 구성원들 간의 상호작용의 하나다), 학교에서는 학생-선생, 학생들 간의 갈등, 가정에서는 부모-자녀, 자녀들 간, 부부 간의 갈등 그리고 연인 사이의 갈등 등 항상 갈등 속에 살고 있지만, 대집단이든 소집단이든 해체되는 경우는 드물고 갈등 후에 일어나는 화해는 집단의 통일을 한층 더 강화한다.

갈등의 종류도 다양하다. 갈등에는 전쟁, 투쟁, 경쟁 등 눈에 보이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적개심, 증오심, 질투심, 시기심 등 갈등을 조장하는 잠재적 요소도 존재한다. 갈등을 종결하는 수단도 갈등의 성격에 따라 승리, 화해, 갈등 유발 수단의 제거 등 다양하다. 이처럼 짐멜은 갈등의 원인과 결과보다는 갈등의 형식을 중시한다.

마르크스의 계급갈등과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갈등이 분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 개인의 일생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개인은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원인보다 형식에 관심이 있다.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짐멜의 갈등론』은 항상 갈등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갈등의 형식과 그 원리를 이해하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정헌주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계급이론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치경제학에 관심을 가져 사회이론, 사회변동, 사회복지, 노동문제 등 다양한 분야를 접하고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해왔다. <정보사회의 빛과 그늘>, <현대사회와 소비문화>, <(오늘의) 사회이론가들>(이상 공저) 등을 저술했으며, <새로운 계급정치>, <지구체계의 사회학>, <낭만주의윤리와 소비주의정신>(공역) 등 30여 권의 번역서를 냈다. 최근에는 <짐멜의 갈등론>을 시작으로 사회학 고전 시리즈를 번역하여 지금까지 6권을 냈고 7권 <뒤르켕의 사회주의론>을 막 탈고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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