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 너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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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 … 너의 의미
  • 김광식 서울대·인지문화철학
  • 승인 2023.01.2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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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철학 사이〉

■ 김광식 교수의 〈음악과 철학 사이〉

 

 

“너의 그 한 마디 말도 그 웃음도 / 나에겐 커다란 의미 
너의 그 작은 눈빛도 / 쓸쓸한 그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

너의 모든 것은 내게로 와 /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네

슬픔은 간이역의 코스모스로 피고 / 스쳐 불어온 넌 향긋한 바람
나 이제 뭉게구름 위에 성을 짓고 / 널 향해 창을 내리 바람 드는 창을”


김창완이 짓고 아이유가 다시 부른 노래 <너의 의미>다. 새해에 새로운 삶을 다시 맞으며 ‘너’의 의미를 다시 묻게 된다. ‘너’는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아니, ‘나’는 ‘너’에게 어떤 의미일까?

뜻하지 않게 2개월 된 갓 난 강아지가 어미에게서 떨어져 내게로 왔다. 먹고 자고 싸기를 거듭하다 어느덧 여기저기 기어 다니기 시작한다. 서재를 기웃거리다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는 ‘너’에게 어떤 의미일까?

너의 모든 것이 내게로 온 지 어느덧 다섯 해가 지났다. 옷을 갈아입으려 하면 어느새 너는 달려와 꼬리를 흔든다. 산책을 반긴다는 의미다. 하지만 나는 일하러 가야 한다며 말한다. “산책, 안 가. 갔다 올게.” 너는 흔들던 꼬리를 멈추고 풀이 죽어 돌아선다. 그리곤 하루 종일 혼자 기다린다. ‘나’는 ‘너’에게 어떤 의미일까?

“아빠, 차가 큰 동물과 부딪혔어!” 아들에게 밤늦게 전화가 왔다. “안 다쳤니?” 다급히 물었다. 다행히 아들은 다치지 않았고 차 앞 범퍼만 부서졌단다. 집 근처라 얼른 달려갔다. 아들과 차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 비로소 중앙선 분리대 옆에 쓰러진 부딪힌 동물의 상태를 살폈다. 큰 개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고개를 쳐들고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다리가 부러졌는지 꼼짝하지 못했다. 119를 불렀다. 그들은 ‘그’를 우리에 넣어 데려갔다. 옆자리에 앉아 ‘너’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 ‘나’는 ‘너’에게 어떤 의미일까?

아우슈비츠에서 온 가족을 잃고 혼자 살아남은 사내는 ‘나’에게 ‘너’의 의미를, 아니 ‘너’에게 ‘나’의 의미를 묻는다. 그 사내가 바로 ‘너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철학자 레비나스다. 그는 왜 아우슈비츠의 비극이 일어났는지를 묻는다. 그는 그 비극의 뿌리에 ‘나의 철학’이 숨어있음을 발견한다. 세상의 중심에 ‘나’가 있으며, ‘너’는 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나를 넘어서 ‘너’를 볼 줄 모른다. 나를 ‘넘어섬’, 곧 초월이 없으면 아우슈비츠의 비극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나는 과연 나를 넘어설 수 있을까?

레비나스는 ‘너의 고통스러운 얼굴’이야말로 나로 하여금 나를 넘어설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 말한다. 나를 넘어서는 초월의 기적을 가능하게 해주는 존재가 ‘신’이라면, ‘너의 고통스러운 얼굴’이야말로 신의 얼굴이라고 그는 말한다. ‘너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보고 나를 넘어서는 초월의 기적을 경험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신성한 종교적 체험이라고 그는 말한다.

가라앉는 세월호 속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죽어가는 아이들의 고통스러운 얼굴은 보지 못했다. 좁디좁은 이태원 골목길에서 살려달라고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며 숨 막혀 죽어가는 청년들의 고통스러운 얼굴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졸지에 자식을 잃고 넋이 나간 유가족들의 고통스러운 얼굴은 똑똑히 보고 있다. 왜 죽었는지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여 자식들의 억울함을, 한을 풀어달라고 외치는 유가족들의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은 똑똑히 듣고 있다.

‘너’의 고통스러운 얼굴이, ‘너’의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이 과연 나로 하여금 나를 넘어서는 초월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을까? 놀아달라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너’를 바라보고만 있는 ‘나’, 흔들던 꼬리를 멈추고 돌아서는 ‘너’를 하루 종일 혼자 두는 ‘나’, 죽어가는 친구를 바라보고만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너’를 바라보고 있는 ‘나’, 그리고 자식을 잃은 ‘너’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는 ‘나’는 ‘너’에게 어떤 의미일까?

나를 넘어섬은 거창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너의 그 한 마디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아이유는 노래한다. 나를 넘어서게 해주는 너의 고통스러운 얼굴도 마찬가지다. “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그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이라고 그녀는 노래한다. 그래서 내게로 온 너의 모든 것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온전히 이해되지 않지만, 이제 뭉게구름 위에 성을 짓고 널 향해 향긋한 바람 같은 너가 들어올 창을 내겠다고 노래한다. 새해엔 그녀의 노래처럼 나의 성에 널 향한, 작디작지만 활짝 열린 ‘의미’ 있는 창을 내고 싶다.


김광식 서울대·인지문화철학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공과대학 과학·기술·철학과에서 인지문화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 기초교육원에서 교양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인지과학의 성과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인지철학자이자, 여러 문화현상의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는 문화철학자이다. 저서로 『BTS와 철학하기』, 『행동지식』, 『김광석과 철학하기』, 『다시 민주주의다』(공저), 『세상의 붕괴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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