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여성 연구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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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여성 연구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1.28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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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연구보고서]

■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연구총서_ 〈인문사회 분야 여성 신진연구자 실태에 관한 연구〉

 

현재 인문사회 분야는 물론 이공 분야와 예체능 분야를 모두 포함한 대학원생 중 여성의 숫자는 남성의 숫자를 웃돌지만, 4년제 대학 전임교원 중 여성의 비율은 2021년 현재 인문학 34.8%, 사회과학 29.4% 수준으로 대단히 낮다. 특히 인문사회 분야 대학원에서는 여성 비율이 높지만, 그들을 가르치는 전임교원 대부분은 남성으로 사회적 성차별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어 불편한 현실이다. 특정 학문 분야의 경우에는 전임교원 중 남성 비율이 ‘쏠림 현상’이라고 부를 만큼 압도적이기도 하다. 2022년이라고 형편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교수 전원이 남성으로만 구성된 대학 학과도 여전히 많다. 그만큼 인문사회 분야를 전공하는 여성 연구자를 둘러싼 학문 생태계는 각박하고 혹독하다. 

‘그 많던 여성 연구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대학원을 다니면서 무불노동에 시달리지만, 진로를 보장받지 못하기에 늘 자신을 감싸고 도는 불안감과 싸우는 일은 모든 학문후속세대의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젠더화된 대학원과 학회 문화 등에 실망하거나 고통스러워하고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에 좌절하며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전임교원에 도전할 때 실력에 앞서는 남성중심적인 인맥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은 분명 여성 신진연구자만이 겪고 있는 현실이고 지금 상태로는 변화 가능성이 적은 암울한 미래이다.

이에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국내 인문사회 분야 여성 신진연구자들의 전반적인 연구환경 실태를 파악하고, 인문사회 분야 여성 연구자를 재생산할 수 있는 정책의 기본방향을 제안하는 정책연구보고서 〈인문사회 분야 여성 신진연구자 실태에 관한 연구〉(연구책임자: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를 지난달 발간했다.

이번 연구는 그동안 연구대상으로 크게 주목되지 않았던 집단인 이들을 주목하고, 이들이 대학원에서부터 이후 이행 과정과 경로에 이르기까지 대학과 노동현장, 사회적 관계망에서 어떻게 연구자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하는지 살펴보았다.

보고서는 인문사회 분야 여성 연구자들이 생애단계의 중간에서 이탈하지 않고, 그리고 ‘연구하는 삶’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안전하게 지식 생산과 학술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인문사회 분야 여성 신진연구자의 사회안전망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연구 결과 요약

이번 연구는 문헌분석과 인터뷰를 통해 여성 신진연구자들의 구체적인 실태를 파악하고자 했다. 인문사회 분야 여성 신진연구자에 관한 통계조사와 법률 및 정책 조사를 통해, 기존의 여성 연구자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기초적인 통계자료들과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기본법률이나 관련 제도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23명의 연구참여자에 대한 FGI와 개별 인터뷰를 통해 여성 연구자들이 어떠한 학술환경 속에서 연구활동을 유지하고 지식노동에 대한 경험을 가지게 되는지를 살폈고, 대학과 노동현장,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이들이 인문사회를 전공한 여성 신진연구자로서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에 마주하게 되는지를 조사했다.


□ 연구를 통해서 파악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통계조사 분석을 통해 파악한 결과, 인문사회 분야 여성 신진연구자들을 파악할 수 있는 기초적인 실태조사 자료는 양적, 질적으로 모두 한정되어 있다. 국내 박사과정생 및 박사학위자들의 연도별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들이 통계조사 자료들이 일부 있었으나, 주로 분석대상을 인적 자원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으며, 학문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의 복지 및 안전망이라는 관점에서 수행된 조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특히 여성을 중점적인 분석 대상에 특화한 실태조사는 이공 분야 연구자 그룹에 편중되는 한편, 인문사회 분야 여성 연구자들의 현황은 일반적인 실태조사의 하위 항목으로만 확인되고 있다. 즉 인문사회 분야 여성 신진연구자들의 개인적, 사회적, 환경적 요인들을 파악할 수 있는 조사자료가 부재한 실정이다.

둘째, 국내 및 해외에서 시행되는 여성 연구자 관련 법률과 정책 및 제도를 분석한 결과, 국내 인문사회 분야 여성 신진연구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제도와 정책은 이공계 및 해외 사례와 비교했을 때 거의 부재한 실정이다. 이공 분야 여성 연구자에 대해서는 중고등학생부터 경력단절 여성까지 법률과 제도, 지원센터, 네트워크 플랫폼이 모두 마련되어 있는 한편, 인문사회 분야 여성 신진연구자에 대한 지원사업은 개별 학회 단위에서 소규모로 이루어지고 있거나 여성에 특화하지 않은 전체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에 대한 지원사업으로 한정되어 있다. 이마저도 박사학위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인문사회 분야 여성 대학원생들이 별도로 지원받을 수 있는 사업은 대학 장학과 (박사과정 이상에만 해당되는)학술연구교수 사업을 제외하면 전무하며, 박사수료자와 경력단절 여성 연구자는 지원제도의 사각지대에 위치한다.

셋째, 연구자들의 학술환경과 노동경험을 분석한 결과, 인문사회 분야 여성 연구자들은 대학원 진학부터 학위취득 이후까지 연구자로서 생애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여러 형태의 불안정성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불안정성은 경제적 불안정성과 학술 자원에 대한 접근권과 사회적 관계의 불안정성, 여성으로서 겪는 불안정성을 포함하며, 연구자로서 삶의 한 단계에서 발생하는 불안정성이 여성 연구자의 다음 단계로의 이행과 안착을 지연시키거나 불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으로 작동하고 있다. 여성 신진연구자들은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를 내실 있게 양성해내지 못하는 국가와 학계 시스템의 부실함을 스스로 체감하고 있었으며 인문사회 분야 여성 연구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의 부재를 비판하고 있다.

넷째, 여성 연구자의 구체적 삶과 관련된 키워드별 분석 결과, 여성 연구자들은 ‘여성’으로서 
겪는 모든 학술 장의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차원에서 책임과 대응을 요구받아 왔다. 출산과 육아 이후 경력단절 여성으로서 일과 생활을 양립해야 하는 문제, 진로나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여성 롤 모델의 부재 속에서 새로운 주체성을 상상하는 문제, 여성 연구자로서 학술 장에서 남성 중심적 네트워크에 대응해야 하는 문제, 비가시화된 여성이자 불안정한 지식노동자로 학술 장의 재생산에 투여되는 문제 모두에 대해, 여성 연구자들은 제도적 안전망의 부재 속에서 스스로 분투함으로써 해결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여성 연구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연구하며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고, ‘여성 연구자로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고 스스로 발굴하고 있다. 인문사회 분야 여성 연구자들이 생애단계의 중간에서 이탈하지 않고, 그리고 ‘연구하는 삶’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안전하게 지식 생산과 학술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인문사회 분야 여성 신진연구자의 사회안전망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 정책 제안

□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연구진이 제안한 정책의 기본방향을 다음과 같다.

1. 인문사회 분야 여성 신진연구자에 대한 정기적인 실태조사 필요

인문사회 분야 여성 신진연구자들의 연구를 조력하고 이들이 학계에서 이탈하거나 안착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실태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인문사회 분야 여성 연구자들의 육성 및 지원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디딤돌로서 정기적인 실태조사가 양과 질의 면에서 축적되어야 한다. 실태조사에는 단순한 통계적 수치뿐 아니라 연구자의 복지 및 안전망 구축이라는 관점이 결합되어야 하며 여성 연구자의 개인적, 사회적, 환경적 요인들을 파악할 수 있는 접근이 포함되어야 한다.

2. 인문사회 분야 여성 신진연구자들을 위한 정책 추진 주체 마련

여성 신진연구자들이 여러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거나 경력단절의 상황에 놓였을 때, 연구와 생활의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연구문화를 개선하는 정책을 추진할 주체가 마련되어야 한다. 한국연구재단 등 공공연구기관 안에 ‘인문사회 분야 여성 연구자 육성과 지원을 위한 위원회’를 설치하여, 여성 연구자 실태조사와 대학원과 학회에서의 부당한 문화에 대한 신고 기반 조사, 여성 연구자 육성 및 지원방안에 대한 기획과 추진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3. 인문사회 분야 여성 신진연구자들이 여성으로서 학계에서 부딪히는 여러 형태의 난관을 해결하고 일과 생활의 균형을 지원하는 인적 인프라 마련

현재 인문사회 분야 여성 신진연구자가 여성으로서 대학과 공공기관, 연구기관, 노동현장에서 다양한 곤란함을 겪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은 매우 부족하다. 이공계 분야에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여성과학기술인 담당관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인문사회 분야 여성 신진연구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일과 생활의 평등을 추구하는 연구문화 환경 조성을 지원하기 위한 인적 인프라가 필요하다.

4. 학교, 지역, 학회, 연구소 단위를 넘어 상호 교류할 수 있는 네트워크 지원 방안 마련

인문사회 분야 여성 신진연구자들이 고립되고 분산된 채 홀로 문제적 상황을 해결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상호 교류하며 문제를 공유하고 그 해결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여성 연구자 개인이 겪고 있는 문제를 여성 신진연구자 공동의 문제로 의제화하고 공론화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5. 연구과제 공모 시 심사 기준에서 연구원 성비 기준 마련

유럽 등지에서 공공기관을 통해 수행되고 있는 젠더평등계획은 모든 연구분야에서 연구자 간 젠더 균형을 추구하고 연구과제 지원 및 선정 단계에 잠재하는 젠더 편향을 제거하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경제인문사회연구회를 비롯해 산하 국책연구기관, 한국연구재단 등에서 연구과제를 공모할 때 일정 비율 혹은 특정 분야에서 연구원 구성비에 있어 성별을 심사 기준의 하나로 포함할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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