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는 우리 현대사와 생활상을 어떻게 바꾸어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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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는 우리 현대사와 생활상을 어떻게 바꾸어왔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1.2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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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력주의의 두 얼굴: 에이드리언 | 울드리지 지음 | 이정민 옮김 | 상상스퀘어 | 640쪽

 

능력주의란 출생에 따른 신분, 인종, 성별이 아니라 성과와 능력에 따라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상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정치, 심리, 교육에 따라 현대사와 사회제도에 구축된 ‘능력주의’(Meritocracy)의 역사를 추적한다. 20세기 말부터 전 세계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된 능력주의는 과연 공정을 위한 최선인가 차선인가? 능력주의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을까? 능력주의는 지금 왜 정치적으로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서 공격을 받는 것일까?

저자는 능력주의가 어떻게 구축되고 발전하고 어떻게 타락했는지를 드러내며, 능력주의라는 혁명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음을 주장한다. ‘양날의 검’인 능력주의는 해묵은 가치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질문이자 화두이다. 이 책은 고대 플라톤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재능을 바탕으로 한 발탁과 발전에 대한 방대한 과정과 의미를 집대성했다. 

또다시 혼돈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민주주의는 쇠퇴하고 있고 자유주의는 고전 중이며 자본주의는 본연의 빛을 잃었다. 그러나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그 사람의 실력과 노력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는 믿음,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1958년 처음으로 명명한 ‘능력주의’는 여전히 가장 널리 지지받는 사상이다. 저자 에이드리언 울드리지Adrian Wooldridge는 공개경쟁이라는 혁명적인 원리를 도입한 정치인과 관료, 타고난 두뇌 능력을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한 심리학자, 교육의 사다리를 만든 교육학자에 의해 구축된 이 능력주의의 역사를 추적하고 해부한다. 플라톤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재능을 바탕으로 한 발탁과 발전에 대한 흥미로운 역사를 제시하고, 인재를 인정하고 보상하는 것이 진보임을 강조한다. 

능력주의란 모든 사람이 똑같다는 생각을 완전히 거부하면서 그들이 가진 모든 재능을 충분히 활용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도덕적이라는 주장이다. 이 책의 원제인 ‘The Aristocracy of Talent’(능력 귀족주의)는 기회 균등과 공정에 대한 갈망에서 시작된 ‘능력주의Meritocaracy’가 어떻게 특권층 그리고 자본과 결탁하며 변해갔는지를 암시하고 있다. 능력과 돈의 결합이 특히 더 위험한 이유는 하필 능력과 민주주의가 결별할 때에 맞춰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간 계층 이동의 원동력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책의 1부에서는 능력주의 이전 세계, 즉 개인의 지위가 고정되고 일자리도 청탁이나 인맥, 상속이나 매입으로 분배되던 세계를 소개한다. 지식인 귀족, 학자 관료, 극빈층 출신 관료 등 신분에 얽매이지 않는 지식인과 기업가의 세계다. 2부에서는 근대성 발현 이전의 능력주의 역사를 살펴본다. 플라톤은 정치학의 고전 『국가Republic』에서 엄격한 기준으로 선발되고 혹독한 훈련을 거친 관리자가 이끄는 세계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중국은 최고 학자 선발시험 제도를 도입했고, 유대인은 지적 성공을 중시한 민족이었다. 중세 사회의 중추였던 교회와 왕실은 후견을 통한 이동성이 보장되는 메커니즘을 고안했다. 

3부에서는 근대 세계를 창조한 위대한 자유혁명,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혁명, 영국 자유주의 혁명을 통해 능력주의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살펴본다. 4부에서는 지능의 유전과 습득, 학습 능력의 선천성 여부를 논의에 올린 IQ 테스트에 대해 해부한다. 또한 능력주의가 가장 눈부시게 발전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를 돌아본다. 타고난 능력을 개발할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정치적으로 좌우가 동의했던 시대, 일할 기회가 확대된 시대, 과학자, 공학자, 심지어 전문가로 대변되는 지능의 힘을 사회 전체가 추앙하던 시대였다. 저자는 또한 능력주의가 여성주의와 맞물려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에 대해 성性의 관점에서 재검토한다. 

마지막 5부에서는 능력주의에 대한 다소 부정적이고 어두운 현재의 전망과 시각을 다룬다. IQ 테스트의 정확성과 그 근본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시작된 좌파 진영의 봉기, 최근 더욱 강화되는 능력주의와 금권정치의 결합을 논의한다. 또한 엘리트의 특권이 노력과 실력이 아니라 부패한 체계에서 나온다는 기조를 공유하고 있는 포퓰리스트의 봉기 또한 심각하다. 육체 노동자 계층에서 크게 지지를 받았던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는 싱가포르 등 극동 아시아 지역에서 능력주의가 긍정적으로 적용되며 발전한 현실을 돌아본다. 싱가포르는 후진국에서 세계 최고 부유국 중 하나로 도약했다. 물질적 풍요에 있어 능력주의 사상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저자는 서구 문화권 밖까지 내다보며, 개인의 기회가 활짝 열리고 특히 여성들이 능력주의 체제에 편입된 후 어떤 변혁적인 효과로 이어졌는지를 드러낸다. 또한 능력주의가 타락한 과정을 짚으며, 최근 계급 간 사회적 이동이 활발하지 못한 까닭은 능력주의 혁명을 완성하지 못한 결과라는 반성 또한 놓치지 않는다.

능력주의를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는 그 자체로는 훌륭하다. 첫째, 능력주의 사회는 타고난 재능만으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가 자부심의 척도다. 둘째, 모든 이에게 무상교육을 제공해 기회의 균등을 보장한다. 셋째, 인종, 성별, 능력과 무관한 특성에 기인한 차별을 금한다. 넷째, 채용은 청탁이나 인맥이 아니라 공개경쟁으로 이뤄진다. 집단의 권리나 평등주의가 아닌 능력주의 사상이야말로 우리가 진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게 저자가 전하려는 핵심 메시지다. 즉, 사람들을 집단 구성원이 아닌 개인으로 대하고 기회와 일자리를 능력과 성과에 따라 분배하며 사상과 재능의 자유로운 교류를 가로막는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 능력주의는 우선권, 서열, 지위의 세계에서 인류가 벗어나도록 도와준 철학이다. 

그러나 능력주의 혁명이 결코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고 저자는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는 해악을 일으킨다는 단호한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능력주의로 인한 성공에의 압박이 견딜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우려한다. 최근에는 계층 간 이동성이 정체되고 기술 발전과 세계화로 제조업 일자리가 파괴되고 일반인과의 공감대라곤 전혀 없는 기술권력 엘리트가 부상하면서 이 같은 경향은 더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다. 샌델은 우리가 더는 능력에 집착하지 않고 민주주의와 공동체를 중시해 더 균형적인 미래를 일궈나가길 고대한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둔화하면서 양질의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졌다거나, 습득해야 할 지식 양이 기하급수로 늘면서 미래의 전문가는 어느 때보다 노력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세상을 지배할 만한, 현재 능력주의보다 더 나은 체제가 존재하는가? 능력주의가 대안 체제에 비교해 결함이 얼마나 더 많고 적은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옹호론자들도 능력주의가 완벽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립이 불가피한 다양한 가치들, 예를 들어 사회정의와 경제효율성 또는 개인적 열망과 제한된 기회 등을 화합시키는 데는 능력주의가 가장 낫다고 주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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