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뿌리 박정희 노스탤지어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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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뿌리 박정희 노스탤지어 다시보기
  • 강우진 경북대·정치학
  • 승인 2023.01.22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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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테제_ 『거대한 뿌리: 박정희 노스탤지어』 (강우진 지음, 역락, 200쪽, 2022.12)

 

한국이 1987년 6월 시민항쟁을 통해 민주화로 이행한 이후 어느덧 한 세대가 지났다. 한국은 제3의 물결이라고 불리는 세계적인 민주화 흐름 속에서 민주화에 동참했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은 네 번의 정권교체를 평화적으로 이루었다. 학자들은 한국을 제3의 물결을 통해서 민주화를 이룬 나라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민주화 사례 중 하나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편, 2021년 여름은 한국의 현대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회원국 만장일치로 한국이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위상이 변경된 것이다. 한국은 국내 총생산(GDP)과 무역 규모에서는 이미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원조를 받던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한국이 추격모델을 통해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한국의 안정적인 민주주의 제도화와 성공적인 경제성장의 이면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현상은 박정희 노스탤지어다. 박정희 추종자들에게 박정희는 한민족을 가난에서 구원한 불세출의 영웅이며 심지어는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신격화된다. 긴급조치와 위수령이 상징하는 인권탄압과 민주주의 후퇴로 박정희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조차도 박정희가 ‘경제는 잘했지’라는 인식을 통해서 알게 모르게 박정희 노스탤지어와 결별하지 못했다. 베이비붐 세대가 경험했던 계층상승의 사다리는 끊어진 채 좁아진 사회진입의 문턱을 절감하고 있는 젊은 층은 박정희 시대 지배이념이었던 경제성장우선주의를 통해서 박정희 노스탤지어와 조우한다. 

박정희 노스탤지어가 세대를 넘어 지속되는 현실은 일부 지지자의 퇴행적 신격화로만 볼 수는 없는 현상이다. 박정희를 둘러싼 인식과 평가, 지지와 배척의 간극 속에서도 박정희 노스탤지어는 한국 민주주의에 중요한 함의를 지니는 포괄적 현상임이 여러 조사를 통해 확인된다.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과 진전 속에 여전한 ‘박정희 노스탤지어’는 막연한 회고적 지지나 지속적 선호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다층적 현상이다. 이 현상을 ‘박정희 노스탤지어(Park Chung Hee Nostalgia)’라 명명(命名)한 이유다. 『거대한 뿌리』는 한국 사회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헤게모니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박정희 노스탤지어를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은 박정희 노스탤지어의 다섯 가지 차원을 분석했다. 제1장(현상)에서 현재 진행형으로서 박정희 노스탤지어를 분석했다. 

                              <보람찬 내일-10월 유신의 미래상>, 문화공보부(신동우 作)

둘째, 박정희 노스탤지어는 무엇인가? 시민들은 박정희에게 한국형 경제성장 모델의 건축가 지위를 부여한다. 박정희 노스탤지어는 “민주화 이후에도 적지 않은 시민들이 권위주의적 지도자 박정희를 한국식 경제발전을 이루어낸 지도자로 평가하고 그 시대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현상”이다. 나아가 “박정희 정권의 지배 이념이었던 경제성장우선주의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고 이를 위해서는 박정희식 경제성장 모델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인식하고 지지하는 현상”이다. 제2장(노스탤지어-이것이 노스탤지어다)에서 박정희 노스탤지어의 정의와 구성 요소를 다루었다. 

셋째, 박정희 노스탤지어는 어디로부터 왔는가?(제3장-뿌리) 박정희 노스탤지어의 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조건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한국은 정부 수립 이후 민주화 이전까지 오랜 기간 동안 동안 권위주의 통치를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시각에서 볼 때 한국의 권위주의는 연성 권위주의 체제였으며 이 기간 동안 현대 민주주의 핵심인 선거는 유지되었다. 시민들은 권위주의 체제하에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표출할 수 있는 통로가 존재했다. 이러한 경험은 오랜 권위주의 체제 이후 이룬 민주주의 성취를 경제성장보다 상대적으로 저평가하는 역사적 배경이 되었다. 박정희 정권을 계승한 전두환 정권의 이중적 역할도 주목할 만하다. 광주항쟁을 무참히 진압하고 집권에 성공한 신군부의 폭압성은 역설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비민주성을 가리는 역할을 했다. 여야 협약에 의한 민주화 이행 양식 또한 박정희 노스탤지어의 토양이 되었다. 이를 통해서 박정희 정권의 계승 세력은 정치적으로 부활할 수 있었다. 더구나 3당 합당으로 집권 세력의 한 축이 되었다. 정당성이 취약했던 신군부는 3당 합당을 통해서 과거의 성공으로부터 정당성을 빌어올 수 있게 되었다. 

앞선 다른 연구는 문민정부와 이후 진보 정권에서 박정희 노스탤지어가 기원했다고 보았다. 하지만 글쓴이는 박정희 노스탤지어는 박정희 시대의 경제적 수행력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박정희 정권 이후 정치적 경쟁에 의해서 재생산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민주화 이후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한국형 보수의 이념과 정책을 발전시키지 못한 한국의 보수 정치세력은 과거의 성공을 지속해서 호명했다. 또한 헤게모니적 지위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는 박정희식 경제성장 모델을 대체할 대안적 모델을 제시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 진보세력은 여전히 양적 성장 모델에 의존했다. 

넷째, 박정희 노스탤지어의 정치적 영향력은 무엇인가? (제4장). 박정희 노스탤지어의 정치적 영향력이 확인된 간접적인 사례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 돌풍과 제17대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을 들 수 있다. 직접적인 영향력을 확인한 사례는 제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이다. 하지만 글쓴이가 더욱더 주목하는 영향력은 박정희 모델의 중요한 유산인 총량적 의미의 경제성장우선주의다. 

                 태극기 집회에 등장한 박정희와 박근혜 대통령 사진. 출처: 아시아 경제 2017/03/01

제20대 대통령선거 캠페인 중에서 낯설지 않은 장면이 반복되었다. 민주정부 4기를 다짐한 자칭 촛불 정부의 대통령 후보는 ‘제20대 대통령선거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제1호 공약은 성장의 회복’이라고 선언했다. 이재명 후보는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어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의 길을 열었다’면서 이재명 정부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갈 에너지 고속도로를 깔겠다고 박정희를 호명했다. 더구나 기본소득을 자신의 브랜드로 제시했던 이재명 후보의 핵심 공약은 양적인 지표로 구체화된 ‘555’(국력세계 5위, 국민소득 5만 달러, 코스피 5000시대) 공약이었다. 촛불 정부를 자임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국민 성장’을 내세웠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말하는 이른바 민주 정부의 후보들조차도 한국 사회에서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는 박정희식 양적 성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다섯째, 박정희 노스탤지어를 정치적으로 구현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정치적으로 몰락한 이후 박정희 노스탤지어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제5장에서 글쓴이는 대부분의 언론 전망과는 달리 박정희 노스탤지어는 지속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정희 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않는 세대에게 박정희 노스탤지어가 재생산되는 메커니즘은 박정희 체제의 가장 중요한 유산 중의 하나인 경제성장우선주의다. 경제발전을 이미 그 효용이 다한 총량적 의미의 경제성장과 동일시할수록, 총량적 의미의 경제성장이 삶의 질과 지속가능한 발전 등 다른 가치를 압도할수록 박정희(식) 경제발전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지속될 수 있다. 특히 경기 침체를 배경으로 박정희에 대한 정치적 호명은 반복될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화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확산하여 공동체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깊숙이 뿌리내린 박정희 노스탤지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차원적 접근이 필요하다. 박정희 노스탤지어를 시에 비유하면 각자의 필요에 따라서 각자의 정치 언어로 불러온 박제된 서사시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을 통해 박정희 노스탤지어라는 박제된 역사적 서사시를 함께 읽고자 한다. 여론조사 등 여러 객관적 근거들은 박정희 노스탤지어라는 시를 함께 읽는 노둣돌이다. 독자들이 각자의 프리즘으로 박정희 노스탤지어를 바라보더라도 다양한 근거를 통해서 다른 빛깔도 함께 만나기를 바란다. 


강우진 경북대·정치학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동대학원(석사)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다. 최근 저작으로는 『한국 민주주의 역설-제도신뢰 결손』, (2021 경북대학교 출판부)가 있다. 지난 10여 년간 주로 한국 민주주의 수행력과 선거 정치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최근 관심으로는 한국 민주주의가 대표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분석과 한국 민주주의가 보통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제도적 대안을 모색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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