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집 시대부터 이어져 온 한국인 유전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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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집 시대부터 이어져 온 한국인 유전자의 힘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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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너 어디에서 왔니: 한국인 이야기, 탄생 |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432쪽

 

한국의 대표 지성으로 불리는 이어령 박사가 지적 편력의 대미를 장식할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를 출간했다.

총 12권으로 기획된 신간 ‘너 어디에서 왔니(한국인 이야기)’의 첫 편은 ‘탄생’이다. 88세를 맞은 이어령 박사가 10여 년간 집필한 작업의 결과물로, 그는 암 직전까지 병원에서 최종 원고작업을 거치며 이번 책을 냈다.

학자, 언론인, 시인, 문화 기획자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저자는 다른 수사 대신 ‘이야기꾼’을 자처한다. 그는 온갖 텍스트와 인터넷에 떠도는 집단 지성을 채록하고 재구성해 누구에게도 들려주지 못했던 ‘한국인 이야기’를 풀어낸다.

책은 어릴 적 듣던 꼬부랑 할머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열두 고개로 이뤄진 '탄생' 이야기는 꼬부랑 할머니가 ‘태명’ ‘배내’ ‘출산’ ‘삼신’ ‘지저귀’ ‘어부바’ 고개를 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저자를 따라 고개를 넘다 보면 한국인 탄생 이야기의 오묘함에 푹 빠지게 된다. 어딘가 낯익지만,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밑도 끝도 없이 꼬불꼬불 이어지는 이야기들 속에 한국인의 집단 기억과 문화적 원형이 담겨 있다.

저자는 삶의 끝자락에서 오히려 ‘탄생’을 이야기한다. 생명을 생각하고 텅 빈 우주를 관찰하면서, 모든 것을 부정해도 살아 있는 자신은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죽음을 알려고 하지 말고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적 자본, 사회 자본, 문화 자본, 자연 자본을 거쳐 그 다음에 오는 것이 ‘생명 자본’이다. 저자는 한국인에게는 오래전부터 생명 자본의 풍부한 의식과 경험이 있다고 설명한다. 아득한 채집 시대로부터 장구하게 이어져 온 문화 유전자, 인류 문명이 태동한 태생기의 기억을 품고 사는 한국의 생활 문화 속에 그것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또 저자는 채집형 한국 문화가 한류의 원천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정보 문명의 최첨단을 달리는 이 시대에 채집 문화의 흔적을 가장 많이 지닌 집단이 바로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한 손에 호미를 들고, 다른 손에 최첨단 스마트폰을 든 한국인을 떠올리며 다가올 생명화 시대의 연결고리를 찾아낸다.

그러면서 생명 자본의 시대를 열어가는 한국인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일례로 아이의 나이를 셀 때 서양에서는 엄마 배 속에 있는 시간은 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문화 문명이 아이를 키운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이미 한 살이다.

인간의 문화는 학습 이전의 상태로, 누가 가르친 게 아니다. 태아에게는 태생기의 거대한 생명 질서, 우리가 모르는 대우주의 생명 질서가 있듯이 태중의 아이를 한 살로 보느냐, 보지 않느냐가 중요하다. 자연과 단절된 문화 문명으로 사느냐, 아니면 대우주의 생명질서를 바탕으로 오늘의 문명과 연결하며 사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생명 자본을 깊이 간직했던 한국인의 문화가 한류는 물론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이뤄낸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또 우리의 ‘막 문화’ 속에 담긴 원초적 생명력의 의미를 파헤침으로써 어떻게 지금의 한국인으로 이어왔는지 여정을 풀어낸다.

저자는 과거를 알려면 검색하고, 현재를 알려면 사색하고, 미래를 알려면 탐색하라고 전한다. 이 책은 검색, 사색, 탐색의 삼색이 통합되어 있는 거대한 지적 그물망이며, 검색은 컴퓨터 기술로, 사색은 명상으로, 탐색은 모험심으로 하라고 권한다.

또 이 책은 우리 한국인을 더욱 깊게 들여다보고,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인이 되어가는 우리를 긍정하게 해주며, 나아가 우리가 생명화 시대의 주역임을 일깨워준다.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는 2권 ‘알파고와 춤을’, 3권 ‘젓가락의 문화 유전자’로 이어지며, 마지막 10권은 지성과 영성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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