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는 모든 구성원의 동일한 차이점을 기반으로 구축되는 것
상태바
공동체는 모든 구성원의 동일한 차이점을 기반으로 구축되는 것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12.24 22: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코무니타스: 공동체의 기원과 운명 | 로베르토 에스포지토 지음 | 윤병언 옮김 | 크리티카 | 320쪽

 

이 책 『코무니타스』는 이탈리아 철학자 로베르토 에스포지토의 (『임무니타스』와 『비오스』를 포함하는) 생명정치 삼부작의 첫 번째 저서다. 공동체에 관한 기존의 해석적 관점들을 남김없이 해체하고 공동체의 근원적인 의미를 복원한 에스포지토의 혁신적인 탈구축 작업에서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공동체가 ‘나’와 ‘우리’의 고국도, 어떤 유형의 소유물도, 무언가로 꽉 채워졌거나 채워야 할 공간도, 지켜야 할 영토나 자산도 아니며 오히려 허무에, 선사의 의무에, ‘타자들’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에스포지토가 이처럼 ‘커뮤니티’ 개념을 탈-구축하며 제시하는 전제는 문자 그대로 파격적이다. 우리가 흔히 공동체의 특징으로 간주하는 요소들, 예를 들어 ‘민족’ 공동체, ‘문화’ 공동체 같은 표현 속에 함축되어 있는 요소들은 공통점이라기보다는 공동체 ‘고유의’, ‘유일한’, ‘특이한’ 특징들이다. 저자에 따르면 공동체는 오히려 이러한 공통점이 조금도 없을 때에만 성립된다. 정확하게는 모든 구성원의 동일한 차이점을 기반으로 구축되는 것이 공동체다. 동일한 의무사항, 동일한 한계, 동일한 모순, 동일한 병을 - 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좀 더 정확하게는 이에 대한 면역을 꾀하면서 - 구심점으로 모이는 것이 공동체다.

에스포지토는 홉스, 루소, 칸트, 하이데거, 바타유의 공동체 개념을 해부하고 공동체를 설명하는 정치철학적인 어휘의 허점들을 도려내며 대대적인 수술을 감행한 뒤 어떤 수식어로도 쉽게 설명되지 않는 순수한 역학적 원리로서의 ‘함께’라는 인간 공동체의 심장을 근원적인 형태로 소생시킨다. 이 고귀한 심장은 순수한 관계의 차원을 뛰어넘어 개개인의 참여를 조건으로, 동시에 개개인의 생존 조건으로 박동한다. 참여의 궁극적인 목적이 고귀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역동성을 에스포지토는 공동체의 어원적 의미에서 발견한다. 공동체를 뜻하는 라틴어 코무니타스는 ‘함께’를 뜻하는 ‘쿰cum’과 ‘선사의 의무’를 뜻하는 ‘무누스munus’의 합성어다. 이는 곧 공동체가 본질적으로는 타자에 대한 근원적인 의무 혹은 갚아야 할 빚을 공유하기 때문에 모인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은 근원적일 뿐 왜곡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왜냐하면 의무에서 벗어나는 면역화, 고유화, 체화라는 형태로 전개되는 임무니타스의 원리가 코무니타스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왜 공동체가 공존과 상호 의존이라는 형태로만 발전하지 않고 오히려 의무를 권리와 특혜로 바꾸면서 결국에는 누군가의 희생을 수반하는 형태로 발전해왔는지 설명해준다. 이러한 성향은 공동체 내부의 일화로 그치지 않고 - 근대를 기점으로 - 공동체 자체의 본질적인 구조로 확립되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에스포지토가 분석의 기점으로 삼는 홉스의 관점, 즉 모두의 희생을 전제로 구축되는 홉스의 국가 체계다. 홉스가 이처럼 전적으로 부정적인 차원의 전제를 내세울 때, 개개인은 이러한 전제가 배가되거나 증폭된 형태의 리바이어던과 절대적이고 직접적인 관계를 유지할 뿐 또 다른 공동체 구성원과의 모든 관계를, 궁극적으로는 ‘함께’를 상실한다. 하지만 홉스에 반대했던 루소도 이러한 측면을 절대적인 방식으로 전복시키기 때문에 결을 달리할 뿐 여전히 문제적인 공동체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루소는 개인의 위상을 강조하지만 공동체 일원으로서 고유의 특성이 모두 사라진 개인을 꿈꾸기 때문에 ‘나’와 ‘타자’의 구분조차 불가능해지는, 결과적으로는 ‘함께’의 관계성 자체가 일체화 속에서 사라지는 공동체 개념을 구축한다.

이처럼 홉스와 루소의 비교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코무니타스와 임무니타스의 이율배반적인 관계에 주목한 에스포지토는 낭시의 순수한 관계로서의 ‘함께’에 동의하면서도 관계의 추상적인 차원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함께’의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함께’의 내용은 허무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사실상 어떤 공통점도 지니지 않지만 이 사실만큼은 공유한다. 왜냐하면 ‘함께’는 ‘나’를 구축하는 원천이자 ‘나’의 생존에 필요한 터전인 동시에 개인이 면역화, 고유화, 사유화를 시도하며 결과적으로 ‘함께’ 자체의 파괴를 시도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사실상 더 큰 개인으로 간주해야 할 특수 공동체와 외부세계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에스포지토가 추적하는 이러한 역학 관계는 코무니타스와 임무니타스의 변증관계로 귀결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