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을 말하다
상태바
책,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을 말하다
  • 김진웅 선문대학교·커뮤니케이션학
  • 승인 2022.12.04 19: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책을 말하다_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 (김진웅 지음, 이담북스, 223쪽, 2022.11)

 

이 책은 새로운 학문 분야로서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science communication)에 대한 소개서이다.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은 학술연구를 통한 지식생산 또는 학술활동과 관련된 모든 커뮤니케이션 현상을 포괄하는 것으로, 학문과 다양한 공중 집단 또는 전문가와 시민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다원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의미한다. 

최근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의 부상은 ‘상아탑 학문’, ‘온실 학문’, ‘시장 학문’으로 이어지는 학문의 소통 패러다임 변화를 반영한다. 먼저 전통적인 학문의 세계는 ‘상아탑 학문(ivory tower science)’으로 상징된다. 이 시기의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은 학술공동체 집단 구성원 사이의 소통현상, 즉 학자, 연구자 간의 커뮤니케이션과 교수와 학생 사이의 지식 전수가 해당된다.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소통은 서적을 비롯한 문자텍스트를 기반으로 하였고, 설득적·일방적 소통양식이 주류를 이루었다.  

둘째, 상아탑 학문의 뒤를 이어 등장한 ‘온실 학문(glasshouse science)’은 대학 및 연구기관에 커뮤니케이션 전담부서가 설치되고 학자들은 전문가로 인식되는 시기이다. 또한 매스미디어가 매개하는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 패턴이 지배하며, 전문가의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일방적이고 비대칭적인 소통이 지배하는 시기였다. 

셋째, ‘시장 학문(marketplace science)’은 시장 경쟁적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시기이다. 대학 등 연구기관은 홍보 전담부서를 설치하는 등 적극적인 대외적 소통을 추구하는 한편, 학자, 연구자들도 온라인을 통해 외부세계와 소통한다. 이들은 정치, 경제  시민 등을 대상으로 연구 성과에 대한 홍보뿐만 아니라, 재원 확보 등 이해관계 추구를 위한 소통에 집중한다. 이 패러다임에서는 공중을 대등한 소통파트너로 인식하며 상호 쌍방적 소통을 지향한다. 본격적인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은 이러한 학문의 시장경쟁적 패러다임이 지배하면서 형성되었다.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배경은 무엇인가? 우선 학문, 특히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따른 사회적 영향력의 확대를 꼽을 수 있다. 과학기술 지식의 폭발적 증가는 가능성과 동시에 위험성을 안겨주고 있다. 특정 과학기술의 이슈가 제기될 때 전문가들은 두 가지 상반되는 관점을 동시에 제시하는 ‘전문가 딜레마(Expert’s Dilemma)’를 보여주곤 한다. 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 ‘진리’는 오직 하나일 뿐, 다를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대중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둘째, 사이언스 민주화 요구이다. 첨단 과학기술의 산물이 위험을 일상적으로 재생산하는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의 수용과 통제 및 관리를 누가 할 것인가. 과학기술을 연구 및 생산하는 상아탑 학문의 제도권 내에서 이 문제가 해소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학문 또는 과학의 민주화라는 사회적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이는 전문가와 일반대중의 간극을 해소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다름 아니다. 

셋째, 정보와 지식을 매개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폭발적 증가이다. 즉,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다양한 디지털미디어의 등장이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현대 첨단 과학기술은 과학자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군·산·학 복합체가 주도하는 거대과학이자, 시스템의 불확실성이 매우 높고 전문가의 결정에 따르는 위험부담이 매우 큰 ‘탈 정상과학(post-normal science)’으로 불린다. 이 단계에서는 정상과학 패러다임에서 제시할 수 있는 해결책이 작동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다른 대안도 부재한 상태이다. 따라서 과학기술의 문제는 합리성에 기반한 것이 아닌 정당성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즉, 과학기술은 이제 과학적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는 전문가 집단의 고유 권한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통섭적 소통, 즉 분과 학문이나 지식 사이의 장벽을 넘어서는 수평적 소통이자, 제도적 학문의 틀을 넘어 전 사회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전일적 소통이 요구되는데, 이에 부응하는 것이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이다.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포맷을 통한 공중과의 직접적 소통이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한 온라인 소통은 연구기관이 원하는 내용을 공중에게 직접 전달하고 공중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 상호 소통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또한 연구과정의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연구주제부터 연구결과까지 전 과정 내역을 상세히 공중에게 공개할 수 있어 연구에 대한 외부 검증이 가능하다. 

이런 소통 활동은 연구기관이 연구주제나 연구결과를 널리 알리고 조직의 정당성을 유지하거나 구축하기 위한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에 해당되는 것이다. 매스미디어가 수행하는 사이언스 저널리즘 외에 연구기관의 직접적 커뮤니케이션 양식이 새로 등장한 것인데, 이러한 새로운 소통방식을 사이언스 PR 또는 홍보라고 한다. 사이언스 저널리즘이 과학자 또는 과학적 성과에 관한 뉴스를 상품화하여 전달하여 대중적 관심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과는 달리, 연구기관이나 연구자의 홍보활동은 연구정보를 매개하는 대신, 자신을 홍보하는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다양한 포맷을 통한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은 우선 학문 및 과학기술에 대한 전문지식의 사회적 공유를 가능케 한다. 동시에 과학기술의 대중화에 기여하는 한편, 소수 독점으로 인한 원자력 사고와 같은 위험성을 낮출 수 있다. 나아가 합리적인 의사결정과 학문의 민주화 또는 학술연구와 과학기술의 민주화에 기여한다.

한편 최근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은 몇 가지 부정적 현상을 드러내고 있다. 우선 커뮤니케이션과 마케팅 활동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둘째, 연구기관 및 연구자의 홍보 활동은 학문연구를 매개해주는 기능보다는 자기광고 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셋째, 사이언스 홍보는 저널리즘과는 달리 소통 대상자인 공중에게 직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동시에, 일방적으로 자신의 정보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상과 같은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은 학문의 사회적 매개에 관련된 주제, 양식 및 내용에 대해서 연구를 하는 새로운 학문분야, 즉 ‘사이언스커뮤니케이션학(science of sciencecommunication)’을 등장케 하였다.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학은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이론적 실천적 현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융·복합적 학문영역이다. 좁은 의미에서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은 과학기술의 생산-유통-수용과정의 커뮤니케이션 현상에 관한 연구를 의미하지만, 성찰 또는 숙의를 위한 학문으로서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에 이론적 기반을 제시하는 인문학 또는 사회과학 역시 과학기술 연구에 관한 사회적 논의 및 담론에서 구심적 역할을 한다. 

전문가 공동체에 의한 판단과 결정은 과학적 수준에 그치고, 정치권력 집단에 의한 판단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좌우되며, 경제적 집단의 지향은 이윤을 추구하는 데 귀결될 수 있다. 나아가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그 중요성을 간과함으로써 야기된 현대 과학문명의 위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과학 그 자체에 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각 분과학문(分科學問)의 질주를 막고 전체 학문이 함께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상아탑 학문을 벗어나 사회와 진지하게 대화하는 것이 현대문명의 위기를 극복하는 바른길이다.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고 실천하는 것이 사이언스커뮤니케이션학의 임무이자 과제이다. 


김진웅 선문대학교·커뮤니케이션학

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를 거쳐 독일 베를린대학교(FU)에서 커뮤니케이션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MBC 연구위원을 역임했다. 주요 관심 분야는 광의의 커뮤니케이션 현상 연구이다. 저서로 《예술 커뮤니케이션》, 《메타커뮤니케이션》, 《기 철학과 커뮤니케이션》, 《방송자유와 공영방송》 등이 있고, 역서로 《커뮤니케이션학의 이해》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