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일류인데 정치는 삼류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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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일류인데 정치는 삼류라고요?
  •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 승인 2022.11.26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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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의 생활에세이]

우리나라의 경제는 일류인데 정치는 삼류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사람들은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우리의 생활 수준은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선 지 꽤 되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만날 살기 어렵다고 하고, 모든 물가가 다 오르는데 안 오르는 건 내 월급뿐이라고 거짓말을 하고(1930년대 소설에도 이 거짓말이 나온다), 만날 경제 위기라고 언론에서는 떠들까? 1980년대 말 ‘3저 호황’ 이후 한국 경제는 위기 아닌 날이 없다. 만날 경제 위기인데 왜 우리는 아직 안 망했지? 그리고 경제는 일류라면서?

정치가 3류라는 말은 여야 정치인들이 하루 같이 지저분하게 싸우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도 건희 여사가 조명을 썼느니 아니니 동훈이가 술집에서 놀았으니 안 놀았느니를 가지고 물고 뜯고 하고 있잖은가? 참 민망하고 한심하고 지저분한 일이다. 3류 소리가 나올 만 하다. 그러면 삼류 아닌 일류 정치는 어떤 것일까? 정치인은 국민의 뜻을 잘 받들고, 여야 정치인은 정책을 잘 개발하여 그것으로 경쟁하고, 정치 제도는 효율적이고 정의로우며 법과 질서를 잘 지키고, 사회 각 부문의 여론과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며, 이견이 있을 때에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결하며, 막말을 하지 않으며 모함도 하지 않고, 정파 간 대립으로 국민이 고통 받을 가능성이 있으면 앞장서서 양보하고....?

세상에 그런 정치가 어디 있는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정치는 싸움이 기본이다. 정치의 이상이 싸움은 아니지만, 싸움이 없는 정치는 있을 수 없다. 그 싸움을 되도록 너저분하지 않고 고상하게, 폭력적이지 않고 평화적으로, 자의적이지 않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하는 것이 선진 정치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정치는 매우 모자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3류인 것은 정치 자체라기보다는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 즉 정치인들이다. 한국의 정치 제도는 매우 발전하여 이미 선진국 수준에 이르고도 남았다. 인권과 정치적 자유도 때로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보장받고 있다. 한국 정치 제도는 고칠 점이 여전히 많이 있겠지만 이미 일류 수준에 도달하였다. 그런데 정치인들의 너저분한 싸움질이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러면, 한국의 경제인들은 과연 정치인들보다 수준이 높을까? 경제인들의 온갖 비리와 불법 행위들을 매일 같이 보고 있지 않은가? 이재용이 법을 어겨 감옥에 갔다 왔는데 대다수 국민들은 이재용을 비난하기는커녕 경제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그를 처벌하는 사법부(도 아니고 행정부)를 비난했다. 정경유착의 경제 비리와 정치적 부패는 정치인만의 문제가 아니고 경제인도 똑같은 공범이다. 그런데 이런 사건이 터지면 우리는 돈을 준 경제인보다는 돈을 받은 정치인에 더 주목하고 그들을 더 질타한다. 

왜일까? 문제의 성격상 그런 점도 있는 것 같다. 정치인을 아무리 욕해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들에게 뭔가 ‘지도자’ 또는 반듯한 대리인의 모습을 기대하고, 그 반면 경제인의 이익 추구는 당연하며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조금의 편법과 탈법은 눈감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게다가 정치인들의 싸움은 적나라하게 언론에 실상황으로 보도되는 반면 경제인들의 다툼은 장막 뒤에 숨어서 일반인에게 잘 보이지 않는다. 경제인은 법을 어겨도 다른 경제인과 몸싸움을 하지는 않지만 정치인은... 다 알지 않는가?

이런 상황이니 정치인의 수준이 경제인보다 더 낮아 보이고 정치 수준이 경제 수준보다 더 낮아 보이기 쉽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주의(정치) 수준은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경제) 수준 이상으로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 나에게 구체적인 순위를 요구하지 마시기 바란다. 논문도 아니고 그런 수고를 할 필요는 없다. 수치를 찾아보고 내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알려주기 바란다. 실상 둘 다 한국 축구의 국제 순위와 비슷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그 부인을 그렇게 자유롭게 씹을 수 있는 것이 한국 정치가 발전한 증거 아니겠는가? 그들을 보고, 혹은 이재명을 보고 한국 정치가 아직 멀었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을 한 번 돌아보기 바란다. 아파트 다운 계약 한 적 없는지, 위장 전입한 적 없는지, 부동산 투기한 적 없는지, 그런 재산이 없다면 혹 남을 모함하거나 보조금을 부정 수급한 적은 없는지. 죄 없는 자만이 돌 던지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비슷한 수준에 있다는 말이다. 정치인이 3류라면 경제인도 3류고 다른 국민들도 3류다. 분야별로 수준이 좀 다를 수는 있지만 거기서 거기다. 이재용의 구속이 잘못되었다고 믿는 사람은 정치가 3류라고 비난할 자격이 없다. (그래도... 지금 정치인들이 하는 꼴을 보면 짜증나는 것은 어쩔 수 없구나. 이것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일 듯하다. 앞으로도 죽.)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외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담론에서 실천으로: 한국적 정치학의 모색』, 『단일 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사』, 『한국 정치의 성격』, 『정치란 무엇인가: 김영명 교수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최근 수필집 『봄날은 간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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