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으로서의 관문도시’와 동아시아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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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으로서의 관문도시’와 동아시아의 평화
  • 이홍규 동서대학교·중국학
  • 승인 2022.11.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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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필자가 살고 있는 부산은 해양에서 대륙으로 들어오는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관문도시(gateway city)다. 이미 1930년대부터 부산은 일본과 중국 대륙을 잇는 ‘동아의 관문’이라 불렸다고 한다. 한반도가 만주와 철로로 연결되어 중국 본토에 이어 유럽까지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배를 타고 한반도로 들어오면 첫 관문이었던 부산에서 중국 대륙은 물론 유럽까지 가는 기차표도 살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1990년대 이후 탈냉전과 세계화라는 세계사적 변화가 동아시아를 하나의 단위로 다시 사고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비록 오늘날 한반도의 분단으로 동아시아의 분단 역시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형국이라 부산이 동아시아의 관문도시로서도 본래의 온전한 기능을 다 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국민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관문도시는 일종의 최전선 전초기지이자, 새로운 충격을 실험하는 테스트 베드(test bed)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회주의 중국이 경제발전을 위해 시도한 개혁개방 즉 시장화의 실험이 선전(深圳) 등 중국 동부 연해지역의 관문도시들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본에 대한 적대적 민족주의 감정이 서슬 푸르던 시절에도 일본 문화가 일찍부터 유입되어 유통되던 곳이 한국의 해양 관문도시 부산이었다. 
 
관문도시는 따라서 이중성을 갖는다. 관문도시는 국민국가(national state) 혹은 권역(region)의 문(gate)에 해당하는 만큼, 문을 열면 길이 되고 문을 닫으면 벽이 되는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즉, 관문도시가 폐쇄적으로 운용되면 그 공간은 국수적인 국가주의(nationalism)의 구현의 장으로 기능하며 이에 반발하는 시민들에 대한 억압 공간의 실험장이 된다. 반면, 관문도시가 개방적으로 운용되면 그 공간은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의 구현의 장으로 기능하여 그동안 국가로부터 배제되어온 다양한 존재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시민적 연대가 가능해진다.   
 
일본의 근대사상사 연구에서 사용되어 유행된 ‘방법’(方法)이란 용어는 무언가를 바로잡는 의미 즉 비판적 시좌를 일컫는다. 예컨대, 중국학 연구자였던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가 제시한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는 서구의 근대화 모델을 추종해온 일본 사회를 아시아 특히 중국의 역사 경험과 사상 자원을 ‘방법’으로 삼아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으로서의 관문도시’라는 비판적 시좌에서 동아시아 문제를 재평가하는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동아시아의 관문도시들이 개방적 공간이 되면 동아시아 역시 개방적인 권역이 되고 동아시아의 관문도시들이 폐쇄적 공간이 되면 동아시아는 폐쇄적인 권역이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부산과 같은 동아시아의 관문도시는 동아시아 문제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전형적인 장소가 될 수 있다. 

특히 ‘방법으로서의 관문도시’라는 시좌는 동아시아 평화 구축에서 새로운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부산이라는 관문도시의 사회사를 연구해보면, 단순히 부산이라는 지역사(local history) 연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라는 권역사(regional history)를 연구하는 시작점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관문도시의 한 곳인 부산에서 이방인에 대한 사회적 처우 및 그 변화 여부를 추적해보면 동아시아의 평화가 근본적으로 가능한지 추론할 수 있다. 즉, 부산 등 동아시아의 관문도시들에서 이민족이나 이방인들을 적극적으로 환대한다면 동아시아에 평화가 조성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반면, 이들에 대한 처우가 혐오와 홀대로 가득해지면 동아시아에서 평화가 유지되기 쉽지 않음을 시사할 것이다.   

얼마 전 중국 당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중국의 관문도시 상하이가 봉쇄되었을 때 공포를 느낀 것은 상하이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전 세계 사람들 특히 상하이를 자주 왕래했던 동아시아인들이 폐쇄공포증 같은 감정을 공감했다.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관문도시 중 하나인 상하이가 많은 이들에게 큰 장벽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장벽에 직면하여 상하이 사람들과 가느다란 그러나 지속적인 소통과 연결을 가능하게 한 마지노선 역할을 가능하게 한 것이 온라인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SNS 등을 통해 상하이의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연결하여 소통하고자 애썼다. 상하이의 사람들도 봉쇄된 상황 속에서 SNS 등을 통해 소식을 전해왔다. 상하이에 살고 있는 자신의 친구들과 지인들이 무사함을 확인하고 나서야 사람들은 절망감과 중국 당국에 대한 불신을 그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더구나 동아시아에는 각국 차원에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상처들이 많다.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 한국전쟁과 냉전으로 이어진 체제대결의 관성, 신자유주의 양극화까지 나타나면서 서로서로를 미워하고 혐오하는 감정의 뿌리가 얽혀져 있다. 이제 미중 신냉전의 조짐으로 동아시아가 다시 국가 간 대립이 극심해질 가능성이 높아졌고 상호 혐오와 적대의 정치도 나타나고 있다. 

동아시아 관문도시들이 문을 닫아 장벽이 되면, 서로에 대한 불신이 더욱 쌓일 것이다. 불신이 쌓이면 상대방에 대한 미움의 감정이 커지는 법, 결국 동아시아인의 평정심을 깨뜨리면 동아시아의 평화는 위태로워질 것이다. 동아시아 관문도시들이 무엇보다 열린 태도로 개방적인 정책을 펼쳐야 동아시아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 


이홍규 동서대학교·중국학

동서대학교 캠퍼스아시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국연구센터소장을 맡고 있다. 중국사회과학원 대학원 법학과(정치학과 통합과정) 박사과정 졸업. 저서로 『차이나 핸드북』(공저),  『CHINA SOLUTION-중국솔루션』(공저), 『한중협력의 새로운 모색, 부산-상하이 협력』(공저) 외 다수가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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