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철학과 대륙철학은 어떻게 갈라지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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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철학과 대륙철학은 어떻게 갈라지게 되었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1.08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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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보스에서의 결별 | 마이클 프리드먼 지음 | 최일만 옮김 | 필로소픽 | 284쪽

 

이 책은 20세기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분석철학 전통과 대륙철학 전통 사이의 분열을, 하나의 아주 중요한 결정적 사건을 렌즈로 삼아 굴절시켜 제시한다.

“무 자체는 무화한다”라는 하이데거의 주장을 가짜 문장의 전형으로 삼아 잘못된 철학의 대표적 사례로 비판한 논리실증주의자 카르납의 논쟁적 공격은 분석철학과 대륙철학의 지적 분열을 상징하는 악명 높은 사례이다. 사실 분석철학이 언어 분석이라는 방법을 통한 명료함의 추구라는 공통의 이념으로 묶일 수 있는 반면, 대륙철학은 방법적, 주제적으로 너무나 상이하여 하나의 범주로 묶이기 힘들다. 그것은 대륙철학이 공통의 이념이 아니라, 분석철학이 자신의 대립항으로 보았다는 바로 그 점에 의해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두 전통은 철학적 사건들과 사회정치적 조건들의 결합을 통해 각자가 자리하고 있는 대학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자기 전통 내의 저서들을 참조하고 연구한다. 또한 대륙철학과 달리 분석철학은 형이상학에 대한 반대라는 주제적 정체성을 분명히 가진다.

하지만 분석철학과 대륙철학의 구별을 단지 형이상학과 반형이상의 양자택일 문제로만 생각한다면 두 철학적 전통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반목하고 냉소를 주고받으며 무시와 무관심으로 일관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둘 사이의 간극을 좁힐 수 있을까? 저자 마이클 프리드먼은 20세기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분석철학 전통과 대륙철학 전통 사이의 분열과 대립, 상호 간 무시를 “하나의 아주 중요한 결정적 사건”을 렌즈로 삼아 굴절시켜 제시한다. 그 결정적 사건이란 다보스 국제 대학 강좌에서 벌어진 에른스트 카시러와 마르틴 하이데거 사이의 논쟁이다. 

이제 막 후설의 뒤를 이어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철학과장이 된 30대의 신인 하이데거와 고전적 자유주의적 지적 전통의 가장 걸출한 대표자인 카시러의 조우는 세대교체의 모든 드라마를 내포했다. 

하이데거에게 카시러와 나눈 다보스에서의 대화는 굉장한 기회였다. 신칸트주의적 “이성주의”의 가장 걸출한 동시대 대표자와의 직접 대면을 통해, 그는 자신이 근본적으로 새로운 종류의 철학의 창조자가 된다는 자신의 주장을 분명히 밝힐 수 있었다. 이 새로운 종류의 철학은 신칸트주의의 헤게모니를 대체하고, 또한 후설 현상학에도 남아 있는 “이성주의적” 경향을 교체할 운명을 지닌 것이었다.

프리드먼은 이 논쟁에 카르납도 참여했고 하이데거와 첨예한 논쟁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다보스 논쟁’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이 분석철학과 대륙철학의 분열을 이해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카르납과 하이데거 사이의 철학적 쟁점은, 결국에는 논리학의 본성과 중심 역할에 대한 극명하고 깊은 의견 불일치에 바탕을 둔다. 그래서 카르납은 “무 자체가 무화한다”를 일차적으로 논리적 형식을 근거로 해서 비판한다. 현대 수리 논리학이 보여주는 것은, 무의 개념은 존재 양화와 부정을 통해 설명되어야 하며, 그러므로 결코 실사(개별 상수)로도 동사(술어)로도 기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하이데거가 볼 때 이러한 순수 논리적 분석은 그의 요점을 정확히 빗나간다. 그가 무라고 부르는 것은 논리학에 선행하며, 그렇기에 특히 부정의 개념에 선행한다. 논리학의 철학적 중심 역할에 관한 이런 근본적 의견 불일치의 뿌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1929년 다보스의 카시러-하이데거 논쟁에서 제기된 신칸트주의 및 “지성의 초월론적 도식” 문제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보스 논쟁의 주제였던 칸트의 감성과 지성의 관계에 대한 해석을 공통의 문제 틀로 제시하면서, 이를 통해 분석철학과 대륙철학의 대립을 상대화하려 시도한다. 프리드먼은 카르납, 카시러, 하이데거를 공통의 논제를 바탕으로 대화시키면서 분열된 두 전통 간의 대화를 도모할 뿐 아니라, 나아가 제3의 길 또한 모색하려 한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우리는 분석철학과 대륙철학의 관계, 감성과 지성의 관계, 논리학의 역할과 의의, 철학의 학문성 등 여러 논제에 관한 커다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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