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대화로써 한일 양국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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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대화로써 한일 양국을 잇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10.3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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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 일본, 철학으로 잇다: 개벽과 공공 그리고 실학의 지평에서 | 야규 마코토 지음 | 모시는사람들 | 384쪽

 

이 책은 한국과 일본에서 공통된 주요 철학적 주제를 비교함으로써 각 국가별 철학의 특징을 이해하고, 그 유사성과 차이점이 어떠한 역사적, 지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어 갔는지를 고찰한 한-일 철학 비교작업의 연구 성과들을 담아, 철학적 대화로써 한일 양국을 잇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 방면에 걸쳐 지속적으로 교류와 협력 또는 갈등을 지속해 오고 있다. 오랫동안 조선은 일본의 문화적 발전의 원천이 되어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쳐 왔으나, 그 속에서도 일본은 독자적인 학문적, 철학적 특질을 구축해 나갔다. 조선으로부터 전래된 성리학(신유학)이나 퇴계학이 일본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꽃피움으로써, 그 사상의 본질을 더욱 잘 드러내는 측면도 있으며, ‘실학(實學)’의 경우 한-중-일에서 각각 공통점과 아울러 독자적인 특성을 한껏 드러냄으로써 동아시아의 학문적, 사상적 발전과 사회적 다양성의 분기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 또는 중국과의 교류는 자국 내에 유폐될 때 가져올 수 있는 사상적 근친상간의 위험성을 불식시키고, 서로에게 거울이 됨으로써 자기이해를 강화하며 하나의 뿌리에서 분기할 수 있는 다양성의 가능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 그 사상의 심화와 확장을 가져온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작지 않다. 

저자 야규 마코토는 수년간의 연구를 통해 한국과 일본 사이에 공유되는 철학적 주제들의 상사성(相似性)과 더불어 두드러지는 독자성(獨自性)도 함께 천착해 한국과 일본 철학의 친연성 및 상호교류를 통한 철학적 성숙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차이 속에서 유사성을, 유사성 속에서 근원적인 차이를 읽어내고, 철학적 안목을 한 차원 높여 나간다. 
 
제1부에서는 ‘한국의 개벽’이라는 주제 아래 동학(천도교) 등의 ‘개벽종교(開闢宗敎)’가 한국 근현대의 시민적 공공성을 발달시켜 왔음을 논증했다. 수운 최제우가 ‘다시개벽’을 제창하며 동학을 창도한 이래 개벽종교는 남녀와 반상, 빈부 간의 차이를 넘어 모두가 신격(한울님, 부처님)과 동격인 귀한 존재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사회와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동학에서의 교조신원운동이나 동학농민혁명은 이러한 세계구축 과정을 실천적으로 추동하는 과정이었다. 또한 수운(최제우)과 해월(최시형)을 이은 의암(손병희)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상황에서 3.1운동을 통해서 동학농민혁명의 폐정개혁의 꿈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이어나갔다. 이런 맥락에서 3.1운동은 한·중·일 세 나라가 서로 독립된 대등한 국가로 뭉쳐서 서구 제국주의와 맞서고, 장차 전 세계 나라들이 연대하여, 침략과 강권과 전쟁이라는 것 자체를 세계에서 없애야 한다는 동아시아적 공공성, 나아가서는 세계적 공공성 확립을 지향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대종교가 “태백산(=백두산) 남북 7천만 동포”(「檀君敎五大宗旨佈明書」)라는 ‘범퉁구스주의’적인 동포 관념을 제시한 것도, 조선시대 유교에 입각한 소중화사상의 정체성을 극복하고 근대 국민국가로서의 한국시민의 정체성을 자각시키는 촉매 구실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제2부에서는 ‘일본의 개벽’이라는 주제 아래, 오늘날 현재화한 일본과는 다른 ‘개벽적 일본’에 대한 추구와 시도의 맥락을 살펴보고 있다. 일본 에도시대의 다양한 ‘성인’ 해석과 한국의 개벽종교와 거의 같은 시기에 탄생한 일본 신종교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주장 ‘요나오시’ 등을 통해 일본적 ‘영성’의 추구 경향의 특징을 드러내고 그것이 시대적으로 변천해 간 추이를 살펴본다. 일본의 신종교는 1970~80년대를 분수령으로 ‘신종교’에서 ‘신신종교(新新宗敎)’라는 새로운 용어로 자리매김하였지만, 1990년대 옴진리교의 연쇄 테러 사건을 계기로 종교 자체에 대한 사회의 인상이 악화된 데다가 고령화의 영향까지 겹치면서 2000년대 이후에는 대부분의 종교에서 쇠퇴 현상이 나타났다. 그런데 2011년의 동일본대지진 및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사고와 2010년대 후반의 자연재해 속출, 그리고 2019년 말부터 이어진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일본 사회에서는 종교단체나 조직, 종교적 카리스마 등에 의존하지 않는 영성 현상이 잇따라 나타나게 되었다.

제3부에서는 ‘실학’을 키워드로 하여 19세기와 ‘실학’이 연구 대상이 된 현대의 한·중·일 세 나라의 신실학론을 다루었다. 우선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인 최한기와 이규경의 일본관을 검토함으로써, 그들 각자의 실학적 경향의 특질을 역으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최한기는 ‘기학’의 토대 위에서 일본에 대한 객관적인 서술에 치중한 반면 이규경은 풍부한 자료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나 경계심을 감추지 않고 차별적인 시각을 드러내 보인다.

제4부에서는 ‘비교의 시각’이라는 범주 아래 “일본에서의 퇴계·율곡·다산(茶山) 연구의 흐름”을 통해 일본 내에서 한국 유학에 대한 이해와 평가의 변천 과정을 살피고, 특히 퇴계가 일본의 근대 유학 발전 및 근대사상사에서 끼친 영향을 검토하면서 일본에서 주자학의 도통론이 메이지 천황에게까지 이어지는 맥락을 살폈다. 또 “최한기와 일본의 공공 사상가 비교 연구”에서는 조선의 대표적인 기학자 최한기와 일본의 오규 소라이, 안도 쇼에키를 ‘공공사상가’라는 관점에서 비교하여 그들이 각각 독자적인 시각에서 유교적 성인의 개념을 공공세계를 구축하는 ‘제작’의 측면에 주목하여 논구했다.

끝으로 “동서양 공공성 연구와 한국적 공공성-교토 포럼의 연구 성과를 중심으로”에서는 교토포럼에서 축적되어 온 논의를 바탕으로 서양(고대·중세·근대)과 동양(중국·일본·이슬람) 그리고 한국의 공사(公私) 관념과 공공관의 특징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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