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 인플레이션
상태바
호칭 인플레이션
  • 계승범 서강대·한국사
  • 승인 2022.10.30 17: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론]

흔히들 조선 후기에 양반 주도의 신분제가 크게 동요하다가 사실상 붕괴하였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때 지배층의 전유물이던 양반의 용례가 지금은 “아니, 이 양반이 어디서 눈을 부라려?”와 같이 상전벽해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이 민주공화국 시대에 우리는 신분제 사회가 새로 도래했다는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일까? 대한민국은 법적으로는 평등사회일지라도 실제로는 강고한 신분제가 여전히 작동하는 ‘이상한’ 공화국인 셈이다.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용어가 회자하는 현실은 그 좋은 표징이다. 

그렇다면 조선 후기에 신분제가 동요했다고 하는데, 동요란 무엇일까? 어느 정도로 흔들리면 동요일까? 국어사전을 보면, 사회적 동요는 “어떤 체제나 상황 따위가 혼란스럽고 술렁이는” 현상을 이른다. 호수의 물결이 찰싹이는 정도를 동요라 하지는 않는다. 거룻배를 타고 위험을 느낄 정도의, 그래서 이따금 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날 정도로 거친 파도가 구조적으로 계속 쳐야 동요다. 신분제도라면, 그 제도가 마치 무너지기라도 할 듯이 술렁이며 흔들려야 동요라 할 수 있다.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 곧 정변이나 민란 또는 전쟁이나 왕조 교체와 같은 장기 격동기(1170~1418)에는 안정적인 시기에 비해 신분 이동이 상대적으로 쉽고 잦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곧 신분‘제도’의 동요일까? 신분제라는 제도는 그대로인 채 일부 사람의 면면만 바뀔 때, 우리는 과연 그것을 신분제의 동요라 확언할 수 있을까? 하층민이 출세하여 귀족이 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귀족제도의 동요라고 단순하게 풀이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 제도가 여전하다는 증거는 아닐까? 

조선 후기 18~19세기에 하층민과 다를 바 없는 빈한한 양반이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양반층 내부에서 분화가 발생한 결과이지, 사회지배층으로서의 양반지배구조 자체는 중앙이나 향촌이나 엄연하였다. 무엇보다도, 몰락한 양반 곧 잔반(殘班)이 당시 양반사회를 대표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잔반의 증가만으로 양반지배체제의 붕괴를 논한다면 일반화의 오류일 뿐이다.

안타깝지만 다소 적나라하게 비유하자면, 요즘 박사학위를 소지하고도 대학에 자리를 잡지 못해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형편에 처한 강사•연구원이 적잖다. 교원 자격증을 소지하고도 교단에 서지 못한 채 마냥 대기하는 예비교사도 상당하다. 이들은 고등학교나 대학만 마치고 일찌감치 취직하거나 창업에 성공한 일반 직장인보다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삶을 영위한다. 그렇다고 현재 한국 사회에서 교원 임용고시 ‘제도’나 박사학위 ‘제도’가 동요한다거나 붕괴했다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런 현상은 동서고금 어느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지배층의 내부 분화를 보여주는 단면일 뿐이다. 박사학위 소지자 내부의 현실적 분화이지, 박사 제도 자체의 동요나 붕괴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조선 후기 신분제 동요의 실상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호칭 인플레이션’이라는 이론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1992년 내 석사학위논문의 기본 설명 틀이기도 하다. 아무리 양반의 호칭을 취득할지라도,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실제로 양반 행세를 할 수는 없었다. 호칭은 그저 호칭일 뿐이었다. 딱딱한 얘기는 잠시 접고, 여기서는 나의 최근 경험을 통해 상식선에서 접근해보자. 

15년간의 해외 생활을 접고 귀국한 지 사흘쯤 되었을까. 학교 근처 어느 식당에 느지막이 혼자 들어섰다. 그러자 홀에 있던 중년 여성이 “사장님, 이리로 앉으세요.”라며 나를 반겼다. 혹시 내 뒤에 다른 손님이 들어왔나 싶어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나를 향한 것인 줄 알아챘다. 그러고는 나도 모르게 “저는 사장님 아닌데요.”라고 응대하였다. 그때 살짝 황당해하던 그분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날 혼자 식사하면서 나는 점원이 왜 나를 사장님으로 불렀는지 무척 궁금하였다. 내가 한국을 떠나던 1993년까지만 해도, 식당 관계자는 남성 손님을 대개 아저씨라고 불렀다. 젊은 티가 현저하면 총각으로도 불렀다. 점원도 대충 나이를 보아 아줌마나 아가씨로 불렀다. 타국살이 15년 사이 한국에서 호칭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음을 깨닫고 나는 꽤 흥미를 느꼈다. 

갓 귀국한 내게는 생소한 호칭이 의외로 많았다. 대학에서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사실상 사라졌다. 다들 교수님이었다. 인문학 분야에서만 일부에서 여전히 선생님이라 부르는 정도였다. 대학병원에서도 많은 환자가 담당 의사를 선생님이 아니라 교수님으로 불렀다. TV에서 ‘박프로’나 ‘정프로’라는 호칭을 처음 들을 때는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김대표’라는 호칭도 무척 생소하였다. 그래도 ‘김사장’보다 ‘김대표’라는 호칭의 격이 더 높음을 간파하는 데 일주일이면 충분하였다.

예전부터 있던 사장님 호칭은 용례가 꽤 변해 있었다. 이제는 흔해 빠졌다는 의미다. 가게에서는 손님을 사장님•사모님으로 대체하였다. 동네 가게 주인들도 으레 서로를 사장으로 부르며 술잔을 나누었다. 구멍가게 노파도, 철물점 아저씨도, 포장마차 아줌마도 다들 사장님이었다. 식당 점원도 호칭으로는 이미 죄다 사장님 반열에 올랐다. 사모님 호칭도 사실상 예전의 아줌마를 대신하였다. 노인이라는 단어는 어르신이라는 호칭에 거의 먹혀버렸다. 

인간의 신분 상승 욕구는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것을 성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럴 때 호칭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조선 후기에도 그랬다. 양반으로 신분을 상승하려는 욕구는 비(非)양반층이면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왕조의 통치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던 시기에는 욕구조차 변변히 표출하기 어려웠지만, 왜란과 호란 이후 통치의 강도가 다소 느슨해지던 18~19세기에는 호칭 인플레이션을 통한 신분 상승 욕구가 사회 저변에서 들끓었다. 예전에는 양반만 사용하던 유학(幼學)이나 업유(業儒) 같은 호칭이 일반 양인 사이에서도 유행하였다. 가선대부(종2품)니 통정대부(정3품)니 하는 ‘넘사벽’ 품직도 이제는 일정한 돈만 내면 가능하였다.

조선 후기의 현실에서 그들이 실제 양반으로 신분 상승을 하지는 못했어도, 호칭으로나마 양반 기분을 낼 수 있는 새로운 사회로 진화해 들어선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변화 흐름이 오래 간다면 진짜 신분제도를 무너트릴 잠재력이 있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조선 후기 신분제 동요론에 동의한다. 다만 현재 개설서나 교과서에서 말하는 붕괴 수준의 동요와는 사뭇 다르다.

현실을 보자. 21세기 한국 사회가 ‘사장님 공화국’이 되었다고 해도, 실제로는 사장님다운 경제 수준을 누리지 못한다. 사장님 공화국은 허울일 뿐, 호칭 인플레이션의 슬픈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솔직히, 예전의 주인아저씨나 현재의 사장님이나 삶이 팍팍하기는 매한가지다. 호칭으로는 사장님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해도, 양극화 사회에서 여전히 하위 계층인 사실에는 별로 변함이 없다. 진짜 사장님은 이미 호칭을 바꾼 지 오래다. 사장에서 회장으로, 회장에서 대표(이사)로 말이다. 

호칭 인플레이션이 지금도 쉬지 않고 발생하는 현실은 우리 한국 사회가 여전히 차별적 신분구조나 그런 인식에 갇혀있음을 잘 보여준다. 호칭 인플레이션이 활발하다는 것은 일견 한국이 계층 이동이 활발한 역동적인 사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유리 천장 깨기가 너무 힘든 신분제 사회의 속성이 무척 강한 사회라는 점도 동시에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현재의 양극화 신(新)신분제 사회가 단지 신자유주의의 부산물만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이 땅에 켜켜이 쌓여 뿌리 깊을 대로 깊은 신분•차별 의식의 ‘현재완료진행형’이기도 하다. 신분 해방을 위해 피 흘려 성취한 사회혁명 없이 얻은 ‘평등사회’의 역사적 후유증이기도 하다.


계승범 서강대·한국사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시아 맥락에서 보는 조선시대 정치·지성사와 한중관계사를 전공했다. 특히 양반 지식인들의 중화 인식과 유교의 한국적 특성이 결합하여 조선을 빚어낸 과정과 그 역사적 유산이 현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작동하는 양태에 관심이 많다. 대표 저서로는 『모후의 반역: 광해군 대 대비폐위논쟁과 효치국가의 탄생』, 『중종의 시대: 조선의 유교화와 사림운동』, 『정지된 시간: 조선의 대보단과 근대의 문턱』, 『조선시대 해외파병과 한중관계』,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등이 있다. 역주서로는 A Korean Scholar’s Rude Awakening in Qing China, 『북정록』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