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학적 무지는 어떻게 지구를 위기로 빠뜨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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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적 무지는 어떻게 지구를 위기로 빠뜨리고 있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0.23 0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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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학이 중요하다: 세계는 지리로 작동한다 | 알렉산더 머피 지음 | 김이재 옮김 | 김영사 | 208쪽

 

미국은 왜 아프가니스탄에서 거대한 실패를 거두었는가? 빈곤 퇴치를 위한 제프리 삭스의 프로젝트는 어떻게 사람들을 위기로 몰아넣었는가? 자율주행에 지리적 사고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은 기상이변에서 팬데믹, 전쟁, 경제적 불평등까지 격변의 시대를 헤쳐나갈 지리학적 통찰과 해법을 담았다.
지리학은 인간, 환경, 장소가 어떤 방식으로 조직되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밝혀주고, 세계를 이해하는 기초이자 당면한 복합적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우리가 직면한 여러 위기의 핵심에 지리학이 있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한 해법으로 지리적 사고력을 제시하는 이 책에서 저자 알렉산더 머피 교수는 지구 표면의 다양한 특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지리학의 정의와 목표를 설명하고, 지리학이 학제간의 성과를 융합하고 현실의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유용한 도구임을 역설한다. 

또한 지정학에 한정하지 않고 더 넓은 측면에서 지리학의 본질을 소개하고 지리적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왜 지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지, 어떻게 지리학을 활용할 수 있는지 그 의미와 가치를 알려준다.

저자는 생생한 사례를 통해 지리학에 대한 이해 부족과 편견이 세계에 얼마나 안 좋은 결과를 가져왔는지 보여주고, 지리학이 어떻게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제시한다.

미국에서 1940년대 후반 하버드대학 지리학과가 내부적 알력으로 폐과되면서 대부분의 명문대학에서 지리학과가 사라졌고, 미국의 지리학에 대한 홀대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책결정자들이 지리적 사고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미국 내 일자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멕시코산 자동차에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미국에서 조립되는 자동차 부품의 3분의 1 이상이 멕시코산이며, 멕시코산 자동차에도 미국 부품이 포함되어 있다. 트럼프의 주장은 미국과 멕시코의 지리적 연결성과 ‘국제적 생산 네트워크’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피상적이고 정치적인 주장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명성 높은 지식인들조차 지리적 지식과 이해 부족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리적 관점이 결여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이론이 미국의 대 이슬람 정책의 밑그림이 되면서, 베트남 전쟁부터 최근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철수까지 미국이 심혈을 기울였던 국제 문제에서 번번이 실패하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미국이 유일한 슈퍼파워로 전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리학적 무지로 인한 미국의 오판과 국제정책의 실패는 비단 미국뿐 아니라 세계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지리학을 간과했을 때 발생하는 결과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제프리 삭스의 ‘밀레니엄 빌리지 프로젝트’이다. 케냐 더투 지역의 빈곤 퇴치를 위해 기획된 이 프로젝트는 세계적 경제학자인 제프리 삭스가 주도했는데, 지리학적 관점을 배제한 채 현금과 인프라만을 집중적으로 투입했다. 결국 인근 이주민이 몰려들면서 교통 중심지로서 기능은 사라지고, 늘어난 인구로 인해 질서가 파괴되면서 사람들은 더 열악해진 환경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빈곤 퇴치라는 애초의 목적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얻게 된 것이다.

세계가 점점 더 연결되고, 빠르게 변할수록 지리학은 더욱더 각광받고 있다. 지리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탄생한 GIS(지리정보시스템)는 지리 정보를 시각화해줌으로써 전에는 알지 못했던 통찰력을 제공해준다. 기후 변화의 속도를 알아내는 연구에서 최첨단 자율주행에 필요한 공간분석까지 GIS는 당면한 사회적·환경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핵심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저자는 지도 자료와 최신 GIS 데이터를 통해 인문학을 넘어 산업 전반에서 다양하게 활용되면서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는 지리학의 현재와 미래를 생생히 보여준다.

지도 이면에 담긴 맥락과 관점을 인지하는 것이 바로 지리적 문해력, 즉 메타 지리의 핵심이다. 지리적 사고와 통찰은 우리가 갖고 있던 선입견을 깨닫게 해주고, 다른 나라에 대한 고정관념을 없애준다.

아무리 훌륭한 지도가 제작되더라도 지도에 담긴 의미와 통찰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독자, 즉 지리적 문해력을 갖춘 시민이 없다면 지도는 무용지물이다. 지리 문맹은 세계 각 지역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문제를 피상적으로만 인식할 뿐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다.

저자는 지리학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힘은 지리적 문해력이라고 강조한다. 지리학은 단순히 지역과 장소, 특산물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력과 통찰력을 키우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글로벌 시대에 지리적 사고력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능력이 되고 있다. 지리 문맹에서 벗어나는 것은 정부 관료, 정책결정자 같은 엘리트에게만 시급한 문제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에게도 요구되고 있다. 

기후 위기의 원인과 자연환경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민은 한파가 기후 온난화를 부정하는 증거라는 가짜뉴스를 제대로 반박할 수 없다. 지리 문맹을 탈출하는 일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고 나아가 인류 생존의 문제가 된다. 이제 지리학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복잡한 현실을 규명하는 필수불가결한 교양이 되고 있다. 격변의 21세기에 지리적 문해력은 우리의 생존을 위한 최고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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