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해명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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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해명의 과제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2.10.0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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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

얼마 전에 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있었던 일이다. 여동생, 아들, 딸, 사위가 밥 먹고 차 마시는 자리에서, 모두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요즈음 인기가 대단한 공연물 <오징어게임>만 열을 올려 이야기했다. 예사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동생은 미국에서 잠시 다니러 왔는데, 조금도 거리를 두지 않고 끼어들어 화제를 확장했다. 주위의 한인교포, 중국인인 며느리, 그 친정의 중국인들, 미국인 친지들도 <오징어게임>을 보느라고 밤새는 것이 예사이고, 만나면 그 이야기만 한다고 했다. 놀라운 일이 어디서나 벌어진다고 했다.

나는 말참견을 하지 않고 듣고만 있다가, 중요한 사실을 알아차렸다. 여럿이 함부로 떠드는 것 같은 수많은 말의 요점이 일치했다. <오징어게임>에서 “기괴하기만 한 이야기에서 전연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죽는 사람들이 모두 내 자신인 듯하다”는 것이다. 

그러자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처럼 기괴한 작품이 왜 온 세상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가? 기괴한 이야기가 더 많은 나라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왜 이런 작품을 만들지 못하는가? 제기된 문제에 대해 대답하는 것은 나의 장기이고 소관이라고 여기고, 그 자리에서 몇 마디 말을 했다. 많이 모자라므로 이 글을 쓴다.

강약이나 현우와 무관하게, 누구나 어처구니없는 게임을 하다가 뜻하지 않게 지면 죽는다는 것은 철저한 대등이다. 대등이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해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하기 어렵다. 죽음에 부딪치게 해야 놀라서 빨려들고, 생각이 달라진다. 공포와 감동이 하나가 되면, 기존의 관념을 깨는 충격이 강력해진다.

더 나아가려면, 죽음은 두 가지가 있는 것을 말해야 한다. 한쪽에는 강력한 가해자가 무력한 피해자를 죽이는 차등죽음이 있다. 다른 쪽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구분되지 않고 누구에게나 닥치는 대등죽음이 있다. 이 둘은 아주 다르다.   

돈이 없어 허덕이는 가련한 사람들에게 오징어게임에 참가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유혹하고, 게임에서 지면 죽이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만행이다. 그러나 권력이나 지략이 우월한 쪽이 열등한 쪽을 지배하고 착취하다가 살해하는 현실의 차등을 상품으로 한다고 분개할 것은 아니다. 음흉한 술책에 속아 인류가 열광한다고 개탄하면 더 어리석다. 

대등죽음을 들어 대등을 깨닫도록 하는 충격을 주려고, 결코 있을 수 없는 허구를 설정한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살다 보면 있게 마련인 작은 실수 때문에 어처구니없이 죽을 수 있는 것이 대등하다. 이런 말을 그냥 하면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으므로, 극단적인 상황을 무관심 격파의 폭약으로 삼았다. 

예술의 역사에서 전례가 전연 없는 엄청난 장난으로 인류를 놀라게 했다. 이것이 세계사의 사건인 이유와 그 의미를 해명하는 학자가 있어야 한다. 좋은 연구 거리를 준 것을 감사하면서 분발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인습을 깨고, 아주 넓은 시야와 참신한 발상을 갖추어야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줄곧 관심의 대상이 되어온 것은 차등죽음이다. 몇몇 두드러진 본보기가, 역사를 훑으면 눈앞에 보인다. 탁월한 영웅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서 신의 경지에 이르려고 하다가 참혹하게 패배하는 비극이 있다. 종교재판에서 마녀나 이단을 적발하고 화형에 처한다. 이념이 다르면 반동이라고 단죄하고 처단한다. 왕위를 차지한 왕자가 경쟁 상대가 되는 형제들을 다 죽인다. 

전쟁의 승리자가 패배자나 무력한 백성을 마구 살해한다. 이것은 어디나 있는 차등죽음인데, 중국과 일본에 특히 많았다. 그러면서 또한 무척 특이한 사례가 발견된다. 사람을 죽여 제왕의 무덤에 묻는 순장(殉葬)이 다른 데서는 다 없어졌는데, 중국은 명나라 때에도 재현했다. 엄청난 권력을 크게 두려워하라고 했다. 일본에는 다른 형벌이 없고 죄인은 모두 사형에 처했다. 사무라이는 자식이 다섯 살 되면 사형을 구경시겼으며, 자기 칼이 잘 드는지 시험하려고 시신을 난도질했다.  

한국에서는 위에 든 것 같은 차등죽음을 찾을 수 없다. 영웅은 참혹하게 패배하다가도 다시 일어선다고 했다. 마녀나 이단을 화형하는 종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유교와 불교는 상극하면서 상생하는 관계를 가지고, 유불문명을 함께 이룩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왕의 형제들은 충분한 대우를 받으며 왕보다 더 오래 천수를 누렸다. 

전쟁의 승리자가 패배자나 무력한 백성을 마구 살해하는 차등죽음이, 신라ㆍ고려ㆍ조선이 평화스럽게 교체되어 다른 어느 나라보다 적었다. 순장은 아득한 옛적 신라초에 없애고, 국왕의 무덤도 그리 크지 않게 만들었다. 조선 태조의 무덤 위에는 억새를 심어, 누구나 친근하게 여기도록 했다. 사형은 아주 드물고, 사약(死藥)을 사용해 고통을 줄여주었다. 귀양을 보내는 것이 통상적인 처벌 방법이었다.

차등죽음을 다루는 작품은 차등에 관심을 쏟고, 편을 갈라 싸우면서 어느 쪽이 정당한가 논란하느라고 죽음은 문제로 삼지 않게 한다. 차등죽음이 아주 적은 거의 유일한 나라 한국에서만, 대등죽음을 다루어 대등이 무엇인지 밝히는 작품을 내놓을 수 있다. 외국의 선례를 따르느라고 자기가 할 일을 하지 못한 잘못을 <오징어게임>이 과감하게 시정했다. 

이 작품이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키는 것은 다른 어디서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주저하지 않고 추진한 결단이 엄청난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성공이 불가능하리라고 하는 예상을 깬 것이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은 아니다. 공연예술에 관한 어떤 기존 이론의 엄호도 받지 않고, 불필요한 간섭을 일제히 타파한 쾌거가 기적을 만들어냈다. 이에 대한 이해와 평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

“기괴하기만 한 이야기에서 전연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죽는 사람들이 모두 내 자신인 듯하다.” 이것이 대등죽음을 보여주는 작품의 실상이고 본질이며, 충격이다. 차등론에서 유래한 어떤 진부한 철학의 누더기도 걸치지 않고, 죽음을 대등 그대로의 맨몸인 채로 제시한 것이 엄청난 철학이다. 대등철학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성공이 부럽다고 다른 나라에서 짝퉁을 만들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기괴하기만한 이야기를 아무리 교묘하게 엮어도, 차등죽음을 말하는 인습에 얽혀 있어 대등을 배격하면 공감을 얻지 못해 저열한 작품이 된다. 공포감이 혐오나 불러오고 마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등은 마음에서 우러나야 하고, 작전이나 기교의 소관이 아니다. 어떤 술책도 소용없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차등을 부정하고 대등을 긍정하는 전환을 <오징어게임>이 선언하는 것은 세계사를 바꾸어놓는 사건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주장을 엄청난 충격을 주는 방법으로 펴서 온 세상을 뒤흔든다. 극단의 모험이 엄청나게 성공했다. 그 공적을 평가하면서, 결함을 지적하고 비판도 해야 평가 작업을 완수한다. 너무 잔인하게 전개되고, 비관론에 치우쳤다. 죽음이 삶을 압도해 대등한 삶을 부정했다. 이런 잘못을 시정해야 한다.

죽은 사람들이 일제히 살아나는 것을 결말로 한다면 전연 달라진다. 모든 잘못을 일거에 바로잡는다. 사람을 많이 죽여 관객의 정신을 빼고 돈을 갈취하는 헐리우드 폭력물의 범죄 행위를 거의 그대로 본뜬 혐의가 있다. 이런 비난이 있는 것이 부당하다고 단호하게 선언하는 결정적인 방법이, 죽은 사람들이 모두 살아나 일제히 노래하고 춤추며 신명풀이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신명을 인류가 공유하게 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나는가?” 이런 항변은 “왜 아무 이유 없이 죽을 수 있는가?”하고 대드는 것과 같다. 인과의 논리를 깨고 넘어서야 예술이다. 과학이 미치지 못하고, 철학은 말이 막혀 물러나는 무지를 각성으로 해야 예술이 할 일을 한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아무 차등 없이 우연이 남발되는 게임이다. 이 명제가 삶에서도 관철되어야 대등론이 온전해진다. 우연한 게임의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의의를 밝히는 과제가 추가된다. <오징어게임>을 만든 사람들에게 짐을 더 지우려고 하지 말고, 이 과제 해결을 위해 모두 함께 분발해야 한다. 

예술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맡아 연구해, 예술과 학문의 성장을 함께 이룩하자.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을 누구나 자기 소관사로 여기고 총체적으로 고찰하는 대등학문을 개척하자. 이런 과업을 수행해 인류를 위해 크게 기여하려고 분발하자.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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