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들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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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와 들뢰즈?
  • 신지영 경상국립대·철학
  • 승인 2022.10.0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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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들뢰즈의 드라마론』 (신지영 지음, 국립경상대학교출판부, 268쪽, 2022.08)

 

『들뢰즈의 드라마론』이라는 제목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내가 들뢰즈라는 고전적인 철학자를 통해 TV 드라마 비평을 시도한 책이리라고 짐작하는 것 같다. 이 책에서 그런 시도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는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도 등장했던, <비극>만큼이나 오래된 개념이다. 드라마라는 단어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대개 TV에서 방영되는 장르를 가리키거나 상대가 일상적이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어!”라는 대화 정도에 등장하고 만다는 것을 보건대, 아주 오랜 시간동안 그 사용 범위와 깊이를 잃고 시들어 온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개념은 들뢰즈 사상의 핵심에 있는데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들뢰즈는 자신의 존재론을 전달하기 위하여, 차이의 시공간적 역동성 혹은 그 체계를 <드라마>라고 불렀으며 그 사례로서 직선, 배아, 유전자 등을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들뢰즈의 드라마론』이라 이름 붙이고, 직선의 드라마, 배아의 드라마, 유전자의 드라마를 각각의 챕터로 하는 책을 먼저 만들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들뢰즈는 자신의 저서의 1/3을 예술에 바쳤지만 대부분 소설, 영화, 미술에 대한 것이고, 드라마에 바쳐진 저서는 없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 단어는 작은 절 제목으로서 『차이와 반복』 4장에 등장하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말 흥미롭게도 들뢰즈는 1967년 1월 28일 프랑스 철학회 La société française de philosophie에서, 즉  당시 작성 중이던 박사학위논문 주제 발표에 다름 아닌 자리에서 <드라마화의 방법 La méthode de dramatisation>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그것은 단지 우연이었을까? 이 발표에 대하여 들뢰즈의 박사학위논문 지도교수였던 모리스 드 강디약 Maurice de Gandillac은 ‘드라마화’에 대한 보충설명을 요청했다. 그는 들뢰즈의 암시적이고 시적인 어휘 뒤에는 언제나처럼 견고하고 깊은 사유가 있으리라 짐작한다면서도, 들뢰즈가 생각하기에는 굳이 정의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을 그 드라마화라는 단어가 상당히 모호하게vague 사용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당시 이 토론에 참여했던 인물들은 강디약 외에도 페르디낭 알키에, 쟝 보프레, 미셸 수리오, 장 발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당대의 철학자들로서 데카르트, 칸트, 하이데거, 중세철학 등의 전문가들이었다. 그러나 들뢰즈의 발제는 그 철학자들에게도 그다지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던 것 같다. 

들뢰즈는 강디약이 지적한 ‘드라마화’ 개념을 다시 ‘잘’ 정의하려고 애썼다. 즉, ‘드라마화’라는 것은 전(前)질적이고 전(前)외연적이며 시공간적인 역동적 결정화이자 역학관계[혹은 역동]로서, 차이들이 배분되는 강도적 체계들이 드라마가 일어나는 장소이고, 그 역동을 겪는 것은 배아적 주체들이며, 그 기능은 이념들을 현실화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러한 보충설명을 들은 강디약은 또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그 모든 것을 말하기 위해 ‘드라마화’라는 용어를 써야 합니까?” 들뢰즈는 또다시 이렇게 설명했다. “만약 그러한 시공간적 결정화의 체계를 어떤 개념에 대응시키려고 한다면, 로고스 대신 ‘드라마’를 쓰면 될 것 같습니다... 맞아요. 우리의 일상생활은 온통 드라마들로 가득 차 있지요”라고. 

                               <배아의 드라마>

다소 전문적이어서 얼핏 곧바로 이해가 되지 않는 ‘드라마화’에 대한 들뢰즈의 보충설명은 『차이와 반복』 제 4장의 주제이다. 여기에서 들뢰즈는 배아의 발생에 대해 서술하면서 “현실적인 질과 연장, 종과 부분들보다 훨씬 깊은 곳에는 시공간적 역동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임신한 여성의 자궁에서 성장하는 배아의 발달 과정을 초음파를 통해 손쉽게 관찰한다. 처음에 작은 동그라미에 불과했던 배아는 점차 분화하여 머리와 팔-다리의 모양을 보여주며 임신 후반부에는 얼굴의 생김새까지도 얼핏 관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들뢰즈가 말하는 시공간적 역동은 이러한 현실적인 질과 연장, 현실적인 종과 부분들의 나타남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질과 부분들을 지지하는 배아 이전에 시공간적 역동을 겪어내는 배아가 있다는 것이다. 

동물의 보편 이념에 해당하는 단일한 본래적 동물이 있는가에 대한 퀴비에와 조프루아 생틸레르 사이에 벌어진 논쟁에서 제기된 ‘접기’라는 시적인 방법은 척추동물을 접어서 두족류로 이행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던 와중에 그들에게 준 영감이었다. 동물의 이념으로부터 다양한 동물의 유형들과 다양한 기관들의 발생의 역동에는 발생의 가속과 감속, 정지, 방향 등의 시공간적 요소들이 개입되며, 이를 견디는 것이 배아이고 그 절차가 드라마라는 것이 들뢰즈의 주요 논변이다. 이러한 생리학적 사례를 드라마로 부른 것은 그의 철학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Gilles Deleuze (1925.1.18 ~ 1995.11.4)

들뢰즈의 철학적 구상은 사실 스케일이 크다. 그는 철학사 전체와 싸운다. 그는 “플라톤에서 후기 칸트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철학은 사유의 운동을 가설적인 것에서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것으로 향하는 어떤 특정한 이행으로 정의했다”고 본다. 만약 선 그 자체가 없다면 학문은 가능하지 않다는 가설로부터 이데아의 영원불변성을 확증하는 플라톤, 만약 전능한 악마가 있다면 내가 보고 관찰하는 모든 것이 가짜일 수도 있다는 가설로부터 생각하는 나의 확실성에 이르는 데카르트, 만약 모든 사건이 가능하다면 우주는 무한한 수로 존재하겠지만, 신은 최선의 우주를 구현했다는 라이프니츠, 가언명령에서 정언명령으로 이행하는 칸트(실천이성비판에서)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들뢰즈는 “이러한 가설주의는 도덕주의와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그것들이 접근하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고 본다. 

그렇다면 존재는 어떻게 발견되는가? 우리는 존재를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가? 들뢰즈는 가설적 사유를 ‘문제 제기적 사유’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드라마’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문제 제기적인 절차라는 것이다. 드라마는 어떤 강렬한 강도에 의해 시작한다. 이를테면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칼에 찔려 죽어가면서도 딸을 지키기 위해 딸이 결코 문을 열고 나오지 못하도록 했던 아버지에 대한 딸의 강렬한 경험. 그 강도는 딸에게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아버지와의 어떤 관계의 망과 그 비율을 자극하고 딸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하도록 강제한다. 딸이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찾아가는 사람들과 관계 맺으면서 또한 이미 아버지와의 특정관계와 그 고유한 관계비를 가지고 있었던 자들의 역동을 자극한다. 그들의 시공간적 역동이 과연 어떤 사건을 일으키게 될지는 아무도 미리 알 수 없다. 이러한 역동과 절차들이 바로 드라마이다. 들뢰즈는 ‘드라마’라는 개념으로 철학사 전체를 아우르는 사유의 방법, 즉 가설에서 확증에 도달하는 방법을 대체하는 자기만의 사유의 방법, 즉 문제적인 것으로부터 해에 이르는 방법을 일컬으려 했으며, 이것이 바로 철학자들이 찾으려고 했던 그 진실에 다가서는 방법이라고 본 것이다. 

드라마는 물론 역사적으로 보통 비극이나 희극과 더불어 이야기된다. 『차이와 반복』 2장에서는 드라마를 이런 관점에서 해명한다. 드라마란 희극적 시간과 중간 휴지의 비극적 시간 그리고 드라마의 시간을 한데 그러모은 형식이라는 것이다. 나에게 요구되는 이미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시간[희극의 시간], 그 이미지를 깨달은 시간[중간휴지, 비극의 시간], 그리고 나를 그 이미지에 맞추어 산산조각 내는 시간[드라마]의 종합[드라마] 말이다. 이때 드라마 내내 주인공을 사로잡고 있는 그 이미지는 주인공의 진실과 관련한 문제적인 것이다. 

                                  <아서의 드라마>

영화 <조커>에서 아서는 덜 떨어진 바보 취급 받으면서 자신의 삶을 견딘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나름대로 효도하려고 노력해왔던 자신의 어머니가 사실은 자신에 대한 계부의 학대를 방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지난 삶이 사실은 웃기는 코미디였음을 깨닫고 진실에 자신을 맡겨버리고 만다. 이러한 시간들은 그에게 항상 문제적이었던 그 무엇을 중심으로, 그것을 모르는 시간, 그 해를 알게 되는 시간, 그 해를 중심으로 자신을 산산조각 내는 시간으로 배열된다. 문제로부터 강요되어 해를 찾아내는 역동인 이 드라마를 자칫 아서라는 인물에만 집중하여 드라마가 한 인물의 살인자로의 각성을 정당화시킨다고 불편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아서가 살고 있는 사회, 관계, 그들의 관계맺음의 깊이를 관통하고 있는 시공간의 역동과 동역학적 절차에 관한 것으로서, 그 사회는 이미 조커라는 인물의 각성과 그 인물에 대한 대중의 열광을 준비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드라마로 보아야 한다. 

이 책은 이러한 철학 개념인 ‘드라마’ 그리고 ‘드라마화’를 영화, 티비 드라마, OTT를 통해 오픈되는 드라마 시리즈 등을 대상으로 하여 다각도로 살펴보고자 했다. 삶의 역동과 그와 함께 드러나는 진실이 드라마로 이해된다면 철학적 사유에 접어드는 이보다 더 쉬운 길은 없을 것이다. 독자들은 이 드라마론을 통해 또 다른 수많은 드라마의 세계로 안내되기를 바란다. 수리-과학의 드라마, 정신분석 세션이라는 현장에서 펼쳐지는 드라마, 철학책을 읽는 와중에 진행되는 심리적-시공간적 역동으로서의 드라마 등, 우리에게는 탐험해야 할 무수한 드라마들이 기다리고 있다. 

 

신지영 경상국립대·철학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석사, 프랑스 리용 3 대학교에서 들뢰즈의 윤리와 미학에 관한 주제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상국립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는 『내재성이란 무엇인가』, 『들뢰즈로 말할 수 있는 7가지 문제들』, 번역서로는 『들뢰즈 개념어 사전』,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해설과 비판』, 논문으로 「들뢰즈 마르크스주의는 가능한가」, 「들뢰즈에게 주체화의 문제」, 「들뢰즈의 정치철학으로서의 구성주의적 제도이론: 흄에 대한 들뢰즈의 독해에 근거하여」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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