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카르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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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카르텔’
  • 이기홍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사회학
  • 승인 2022.10.0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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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칼럼]

법무부 장관이 자신을 ‘기득권 카르텔의 중심’이라고 지목하는 운동권 출신의 노정객에게 “이 나라의 진짜 기득권 카르텔은 운동권 카르텔”이라고 반발했다. 운을 맞추기 위해서였는지 운동권이라고 말하면 가난해 보일 것을 염려해서였는지 그 장관은 그렇게 표현했지만, 운동권(運動圈)과 기득권(旣得權)에서 ‘권’은 동음이의어고, 그래서 ‘운동권 카르텔’은 ‘역전 앞’처럼 일종의 동어반복이다. 하지만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라고 대통령이 자랑하고 ‘거침없는 스타 장관’이라고 보수 언론이 상찬하는, 더구나 법을 관장하는 ‘일국의 장관’의 언술을 놓고 사소하게 어휘의 부정확함을 따지는 것은 무례한 짓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진짜 기득권 카르텔은 운동권 카르텔’이라는 주장까지 따지지 않고 넘어갈 일은 아니다. 기득권 카르텔(영어로는 The establishment)은 현재의 지배질서에서 특권적인 지위와 권력과 이익을 나눠서 누리는 ‘정(政)관(官)경(經)언(言)학(學) 결속체’를 가리킨다는 것을 아는 데에는 많은 사회(학)적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와 대형법률회사를 회전문처럼 드나든 현직 국무총리는 이 결속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제도를 운영하고 법을 집행하는 관료들의 역할이 이 결속체에서 더욱 확대하고 있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기재부의 나라냐’는 타박을 들어가면서도 돈이 없다고 버티던 관료들이 정권이 바뀌자 군말없이 돈을 내놓는 것이 대표적인 증좌다. 이 사례는 운동권 출신의 일부 인사들이 정치인이나 ‘어쩌다 공무원’으로 변신하여 기득권 카르텔에 진입하거나 편입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그 결속체에서 ‘국외자’나 기껏해야 ‘주변인’에 머물러 있을 뿐이라는 것도 알려준다.

이 결속체에서 검찰의 위세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집권당의 유력 인사 대다수가 검찰 출신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사실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검찰은, 일제 식민통치 시기는 말하지 않더라도, 군부 권위주의체제에서 지배질서와 기득권 카르텔의 경호대로 기능해 왔다. 그 과정에서 검찰은 통치세력과 밀착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공권력을 행사하면서 (정보기관에 의한 은밀한 통제를 제외하고는) 공공적 견제와 감시조차 면제받으며 초(超)정부 ‘조직’이 되었다. 그리고 통치세력의 은밀한 통제가 약화하자 기득권 카르텔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전면에 부상했고, 마침내 검찰총장이 곧바로 대통령 후보로 등장하여 대통령이 되었다. 이제 검찰은 심지어 정부의 다른 부처의 ‘심사 과정’까지 압수수색으로 수사할 정도의 강력한 지배력을 갖고 있다.

게다가, 검찰은 공권력의 행사에 대한 공공적 견제와 감시를 면제한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을 기득권 카르텔에서 자신의 위세를 기반으로 고수함으로써 검찰의 권력을 위임받은 공권력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권력으로 오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검찰의 과거 위법한 수사 행태에 관한 문제제기에 대해 “과거 민주화운동에서 민간인을 고문하던 일이 있었다고 민주화운동 전체를 폄훼하지 않지 않으냐”는 답변으로 논점을 회피한 법무부 장관은 이 오인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터무니없는 비유나 비교로 논점을 회피하고 상황을 왜곡하는 장관의 ‘훌륭함’을 입증하는 사례는 많이 있다). 국가기관의 (위법한) 공권력 행사와 시민사회의 (불법한) 자발적 운동을 동등한 것으로 비교하는 논법은, 검찰을 국가기관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자발적 조직’으로 사사화(私事化)하고, 공권력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 아니라 검찰의 고유 권력으로 사유화(私有化)해야 성립하는 것이다. 법무부 장관의 공-사 무분별은 “검찰은 지난 20여 년간 부패정치인이나 비리 재벌, 투기자본, 깡패들에 맞서 싸워왔다”는 주장에서도 드러난다. 위법이나 불법을 처벌한 검찰의 업무를 ‘맞서 싸워왔다’며 마치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한 것처럼 자랑하는 것은, 검찰을 투기자본이나 깡패들과 대등한 ‘사적 조직’으로, 그러므로 검찰의 권력을 위임받은 권력이 아니라 검찰에 고유한 사적 권리로 인식해야 가능한 일이다 (“공식·비공식 이런 걸 어떻게 나눠야 할지 모른다”는 대통령의 부끄럼 모르는 언술도 이런 맥락에서 해독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소통령’으로 불리는 장관은 ‘진짜 기득권 카르텔은 운동권 카르텔’이라고 강변한다. 이것은 운동권 출신의 정치인들을 ‘좌파 기득권’이라고 부르면서 혐오를 유발하고 적대를 자극하는 저열한 극우 논자들의 논리를 변용하는 것으로, 공권력을 위임받은 ‘일국의 장관’이 사용하기에는 무지하거나 무모한 낙인이다. 기실, 특정 집단을 표적삼아 폄훼하고 공격함으로써 상황을 호도하고 지지를 동원하는 것은 기득권 카르텔이 지배를 유지하는 유력한 전략의 하나이다. ‘일개 장관’을 ‘기득권 카르텔의 중심’이라고 지목하는 배경도 이것이다.

 

이기홍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사회학

강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로, 강원대 교수회 회장, 한국사회학회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주 연구 주제는 사회과학철학, 사회과학방법론, 그리고 사회이론이다. 저서로 『사회과학의 철학적 기초: 비판적 실재론의 접근』, 역서로 『숫자를 믿는다: 과학과 공공적 삶에서 객관성의 추구』, 『맑스의 방법론』, 『경제,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과학으로서의 사회이론』, 『새로운 사회과학철학』, 『지구환경과 사회이론』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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