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복원해 역사를 보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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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복원해 역사를 보존하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9.13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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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존과학, 기억과 가치를 복원하다 | 강대일 지음 | 덕주 | 243쪽

 

수만 년 전 공룡 발자국과 신라시대 석굴암, 피겨 여왕 김연아의 스케이트는 도대체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이 세 가지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유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소중한 문화 유산을 보존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보존과학이다. 보존과학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병들어가는 문화재를 진단하고 원인을 규명해 치료해서 수명을 연장해주고 다음 세대까지 고이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보존과학 사례라 할 수 있는 석굴암 이야기, 2008년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 백제인의 놀라운 기술력과 예술성을 보여주는 백제 금동대향로, 뛰어난 나전 기법을 보여주는 나전칠기 등 아름다운 우리 유물의 보존처리에 대한 전문 지식을 깊이가 있으면서도 재미난 스토리텔링으로 알기 쉽게 펼쳐놓았다. 그리고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의 ‘다다익선’의 사례는 보존과학자들에게 새로운 고민을 던져줬다. 수많은 모니터로 구성된 ‘다다익선’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고장과 수리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보존과학계에서 말하는 가장 중요한 ‘원형 유지 원칙’을 깨뜨리지 않고는 보존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유물은 앞으로 보존과학자들이 어떠한 원칙을 견지해야 할지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문화재를 보존한다는 것은 선조들의 생활과 사회상을 보존하는 것이며, 이는 결국 역사를 보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접하는 역사는 기록, 더 나아가 기억과도 관련이 깊으므로 문화재를 보존한다는 것은 과거에 관한 기억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수천 년 전의 성곽이나 건물, 여러 가지 유믈들을 원래의 모습과 가깝게 보존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존과학자’라고 한다. 이들의 손끝으로 땅속에, 물속에, 먼지더미 속에 묻혀 있던 병들어가는 유물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고 수명이 연장된다. 그리고 오늘날 새겨지는 역사적 유산들을 다음 세대에까지 고이 전해주는 역할도 한다. 최근 들어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보존과학 또한 수많은 진단 기법과 치료 약제들이 개발되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병원에서 사용되던 최첨단 의료기기들이 유물 보존에 사용되기도 하고, AI나 IoT, 드론 같은 첨단 장비들도 동원되고 있다.

크게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에서는 국내 보존과학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훑어본다. 2부에서는 그동안 국내에서 이루어져왔던 굵직굵직한 보존과학 사례들을 하나씩 그 과정들을 상세히 들여다보고 문제점들을 짚어본다. 3부에서는 우리나라 보존과학이 안고 있는 과제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조망해본다. 그리고 부록에서 다양한 문화 유산 헌장과 문화유산 보존과 관련된 역사적인 인물들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이 책의 저자인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재보존과학과 강대일 교수는 문화재의 복원은 언제나 구체적이고 확실한 증거를 기반으로 진행해야 하며, 본래의 모습을 되살린다는 명목으로 문화재를 재창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오늘날 최신 기술로 무장한 분석이나 고가의 약제를 남발해 의도치 않게 원형이 손상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수리든 보수든 부분적 복원이든 그 어떤 형태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원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야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을 지나며 힘겹게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온 선조들의 소중한 자산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다. 또한 그 자산을 ‘원래 있던 그대로의 모습대로’ 먼 미래 세대까지 전해주어야 한다.

2008년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 단청을 복구하면서 값싼 화학안료 단청을 사용해, 2022년 8월 국가에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해 당시 작업을 했던 단청장과 그 제자가 국가에 수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공사 기간을 줄이기 위해 천연안료 대신 사용이 금지된 값싼 화학안료를 쓴 게 문제였다. 복구 공사가 끝난지 한 달 뒤부터 단청 박락 등의 하자가 발생했다. 문화재는 수백, 수천 년이라는 긴 세월을 견디고 우리에게 전해진 선조들의 숨결이자 발자취이다. 그것은 영리 추구나 돈벌이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들의 소중한 자산이다. 따라서 이것의 복원, 복구는 기간을 정해놓고 무턱대고 그 기간 내에 끝마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근거를 기반으로, 당대 최고의 재료와 기술을 가지고, 보존 원칙과 윤리에 입각하여 철저히 진행되어야만 한다.

문화재는 선조들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 우리 모두의 공공 자산이다. 그렇기에 문화재를 보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선조들의 생활상, 정신과 기술이 담긴 문화재를 직접 손으로 만지고 처리할 수 있기에 사명감을 가지며 일을 하지만 때로는 부담감과 압박감 속에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어르고 달래고 고뇌하는 작업인 것이다. 단순히 형태를 보존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재가 지닌 가치와 역사를 훼손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믿되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는 직업이 바로 문화재 보존처리자와 보존과학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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