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현상학으로 혐오를 해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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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현상학으로 혐오를 해부하다
  • 하홍규 숙명여대·사회학
  • 승인 2022.09.04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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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의 말_ 『혐오의 해부』 (윌리엄 이언 밀러 지음, 하홍규 옮김, 한울아카데미, 480쪽, 2022.06)

 

윌리엄 이언 밀러의 『혐오의 해부』는 로버트 버튼의 『멜랑콜리의 해부』의 전통에서 제목이 시사하는 바 그대로 혐오의 세계를 매우 미시적인 시선으로 탐구한다. 밀러는 이 책에서 인간이 삶에서 부딪치는 온갖 불쾌하고 더럽고 역겨운 것들에 대해 섬세하게 논의하며, 또한 먹고 배설하고 부패하고 죽는 기본적인 생명 과정과 인간의 불안한 관계를 자세히 설명한다. 그는 실로 감각 현상학의 방법으로 혐오를 날 것 그대로 해부하여 펼쳐서 독자들에게 보이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혐오 사회’라는 표현이 별로 낯설지 않게 된 시대에 살고 있다.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노인 혐오, 기독교 혐오, 이슬람 혐오, 인종 혐오 등 ‘혐오’는 우리 사회를 표상하는 핵심어가 되었다. 온갖 혐오의 언어들이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어디서나 난무하고 있다. 일베충, 틀딱충, 한남충, 맘충, 급식충, 똥꼬충, 난민충, 수시층, 진지충, 설명충 등 어떤 말에든지 벌레를 뜻하는 한자 ‘충(蟲)’만 붙이면 아주 손쉬운 혐오 표현이 된다. 또한 ~~녀, ~~린이 등으로 여성과 아이들을 혐오스럽게 부르고 있다. 이것은 혐오 표현이 일상 언어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특히, 온라인상에서는 많은 유튜버가 혐오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으며, 이는 또한 광범위하게 소비되고 있다. 이른바 ‘혐오 비즈니스’라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신문, TV 같은 미디어도 혐오 문제를 자극적으로 보도하면서 오히려 ‘혐오 팔이’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이것은 “혐오스러운 것이 역겨움을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마음을 끌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안타깝게도 언론, 유튜버, 정치인들은 혐오의 실타래 안에서 공생하면서 혐오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토마스 홉스의 표현을 빌어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혐오다 또는 대항해 시대라는 표현을 빌려 ‘대혐오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밀러는 “궁극적으로 모든 혐오의 기초는 우리”라고 천명한다. 그렇다. 우리가 지금 혐오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혐오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살아가고 죽으며, 그 과정은 우리 자신을 의심하게 하고 우리 이웃을 두려워하게 하는 물질과 냄새를 내뿜는 지저분한 것이다.” 사실 아무리 아름다운 존재라 할지라도 해부하고 난 뒤의 모습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밀러가 감각 현상학의 기법으로 배설물과 분비물에 대해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한 부분은 독자들의 독서 경험 자체를 혐오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 저자가 특별히 주목하듯이, 혐오가 우리 삶에서 가지는 양가적인 의미 – 아름다움은 더럽고 더러움은 아름답다 – 는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바로 우리가 혐오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이 책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혐오하는 삶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파헤쳐 보기를 권한다. 만약 누구든지 혐오의 시대를 건너고자 한다면 반드시 우리의 혐오와 마주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해부되어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는 혐오의 내용을 정면으로 마주할 경우,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혐오의 세계는 때로는 아름답고 매혹적일 수 있지만, 더럽고 악취 나는 세계요, 끈적끈적하고 들러붙고 축축한 것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밀러는 우리가 혐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선 혐오는 도덕적·사회적 위계에서 인간의 순위를 매기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혐오는 “다른 사람들을 더 낮은 지위에 속하는 것으로 확정하는, 그리하여 계급 제로섬 게임에서 자신을 반드시 더 높게 규정짓는 감정”으로, 젠더, 계급, 인종, 민족 등의 구분을 자극하는 매우 위험한 감정이다. 둘째 혐오는 사랑과의 관계에서 필수적이고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혐오 규칙은 자아의 경계를 표시하는 것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 규칙을 완화한다는 것을 뜻한다. 셋째, 우리가 혐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혐오가 도덕적 판단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 판단은 혐오의 관용구를 필요로 한다. 넷째, 혐오는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정서이며, 도덕적 판단에 동기를 부여하고 그 판단을 확증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심리학과 정신의학은 인간의 동기부여 감정으로서 혐오를 다루는 법을 잊어버렸다. 도덕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과 결별한 심리학을 다시 만나게 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넷째 필요를 위해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으로부터 사회적이고 미시정치적인 이론을 발전시키려고 애쓰는데, 이 부분은 특별히 흥미롭다.) 다섯째 우리 몸의 구멍들, 그 구멍들에서 나오는 노폐물과 배설물에 대해 적나라하고 촘촘하게 분석함으로써 가장 체화되고 본능적인 감정인 혐오에 대한 풍부한 해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혐오의 해부』를 소개하는 글의 제목을 “감각 현상학으로 혐오를 해부하다”라고 하였지만, 사실 밀러는 이 책에서 철학, 사회학, 인류학, 신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문학에 이르는 학문적 넓이를 자랑하고 있으며, 중세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천년에 걸친 서구 역사를 아우르는 긴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넓고 깊은 원천에서 길어 올린 지적 산물은 혐오라는 주제의 복잡성에 충분히 상응한다고 할 수 있겠다. 저자 윌리엄 이언 밀러가 로스쿨 교수였다는 사실은 이 책이 보여준 지적인 넓이와 깊이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의아하게 만든다. 저자는 1984년부터 미시간 대학교 로스쿨의 교수를 역임했으며, 2008년부터는 성 앤드루스 대학교(University of St. Andrews)의 역사학 명예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여기 소개하는 『혐오의 해부』뿐만 아니라 그가 쓴 다른 책들의 제목도 우리가 로스쿨 교수에게서 흔히 기대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굴욕(Humiliation)』(1993), 『용기의 신비(The Mystery of Courage)』(2000), 역할, 정체성, 그리고 진정성을 꾸미는 데 따르는 불안을 다룬 『허세 부리기(Faking It)』(2003), 노화와 쇠퇴를 다룬 『잃어가는 것들(Losing It)』(2011), 동해(同害) 복수법을 다룬 『눈에는 눈(Eye for an Eye)』(2006), 아이슬란드의 이야기들을 해석한 『아우든과 북극곰(Audun and the Polar Bear: Luck, Law, and Largesse in a Medieval Tale of Risky Business)』(2008). 사실 그는 북유럽의 영웅담인 사가(Saga)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이후로 사가에 대한 책을 두 권 더 쓰기도 했다. 『혐오의 해부』 7장 “전사, 성인, 그리고 섬세함”에서도 저자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서 혐오를 역사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거칠고, 비열하고,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들이 전문가의 탁월한 글솜씨를 통해 전달된다. 

『혐오의 해부』는 1997년 출판되어 미국 출판 협회에서 인류학·사회학 분야의 최고의 책으로 선정된 바 있다. 밀러는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혐오 시대를 살아가면서, 이 책은 혐오 연구자들 사이에서 자주 인용되는 기본서가 되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이 1927년에 쓰여져서 1929년에 출판된 아우렐 콜나이(Aurel Kolnai)의 “혐오(Der Ekel)”에서 시도된 것을 거의 완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밀러의 인용 목록에 콜나이가 빠져 있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거꾸로 말한다면 콜나이가 1920년대에 밀러의 『혐오의 해부』를 예견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홍규 숙명여대·사회학

숙명여자대학교 인문학연구소 HK 연구교수.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보스턴 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회이론과 종교사회학이 주 전공 분야이며, 현재 문화사회학, 감정사회학을 바탕으로 혐오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피터 버거』, 『감정의 세계, 정치』(공저), 『공간에 대한 사회인문학적 이해』(공저), 『현대사회학 이론: 패러다임적 구도와 전환』(공저) 등이, 역서로는 『사회과학의 방법론: 사회적 설명의 다양성』, 『종교와 테러리즘』, 『모바일 장의 발자취』, 『실재의 사회적 구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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