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알 안달루스 사회를 지배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실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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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알 안달루스 사회를 지배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실용주의’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8.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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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의 역사: 8세기부터 17세기까지의 신앙의 왕국들 | 브라이언 캐틀러스 지음 | 김원중 옮김 | 길 | 624쪽

 

이 책은 8세기 초 무슬림들이 이베리아반도에 처음 들어온 때부터 약 900년 후 17세기 초 완전히 쫓겨나갈 때까지 스페인, 특히 알 안달루스(al Andalus, 무슬림들이 점령한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를 새로운 시각과 관점 아래 서술한 것이다.

이 시기에 대한 전통적 역사서술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711년 북아프리카로부터 지브롤터해협을 건너 쳐들어온 무슬림 군대가 불과 몇 년 만에 당시 서고트인들이 지배하고 있던 이베리아반도 대부분을 정복함으로써 알 안달루스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그 전에 이곳을 지배하고 있던 기독교도들은 반도 북쪽 산악 지역으로 쫓겨났다). 이 이슬람 지배 아래, 스페인은 에미르국 시대를 거쳐 929년부터 1031년까지 우마이야 왕조 지배자들이 스스로 칼리프 신분을 자처한 ‘칼리프국’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 칼리프 체제 아래의 알 안달루스에서 무슬림, 기독교도, 유대인들은 관용과 공존, 그리고 조화 속에서 이곳을 고도의 선진 문화를 구가하는 국제적인 문화적 공존 지역으로 만들었고(이 현상을 보통 콘비벤시아, 즉 ‘공존’이라고 한다), 당시 수도 코르도바(Cordoba)는 ‘세계의 보석’으로 학자들과 지식인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계몽의 국제적 모델이었다. 그에 반해 북쪽 기독교 왕국들은 가난과 침체, 그리고 문화적 후진 속에서 존재감 없이 살면서 무슬림들의 침입에 전전긍긍하며 지내야 했다.

그러다가 1030년 이후 우미이야 칼리프 제국이 붕괴하고, 이슬람의 지배 영역이 수십 개의 소왕국으로 분열한 타이파 체제로 접어들면서 중세 스페인의 힘의 균형이 점차 북쪽 기독교 왕국들 쪽으로 기울었고, 이베리아반도의 역사는 한편으로 과거에 빼앗긴 영토를 ‘재정복’하려는 십자군적 열정에 불타는 기독교도들과 역시 투철한 근본주의적 혹은 청교도적 종교심으로 무장한 채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베르베르인 무슬림들(알모라비드파와 알모하드파) 간의 치열한 종교 전쟁의 무대가 되었으며, 결국 이 싸움은 1492년 기독교도들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그러나 스페인 무슬림들의 역사가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고 기독교로 개종한 무슬림(모리스코)들이 스페인에서 완전히 쫓겨난 것은 17세기 초에 가서였다. 사람들은 약 800~900년에 걸친 기독교도들의 이슬람 세력과의 싸움과 정복 과정을 흔히 기독교도들의 관점에서 ‘레콩키스타’(재정복)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시기의 대부분 기간 동안 스페인 역사 혹은 알 안달루스 역사의 중심에는 종교가 자리하고 있으며, 무슬림과 기독교도 국가들이 각자의 종교적 정체성과 종교 이데올로기에 의해 정의되는 싸움에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이 전통적인 설명이다.

저자는 이러한 전통적인 역사서술은 하나의 신화이고 환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껏 ‘공존’과 ‘재정복’ 중심의 이베리아반도의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종교나 이념이 아닌 인간의 본능적인 ‘실용주의’에 초점을 맞추어 이슬람 스페인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는데, 그는 이 책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무슬림과 기독교도 지배자들이 ‘공존’이나 ‘재정복’이 아니라 정치적 콘베니엔시아(conveniencia, 편의)에 따라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동맹을 이루어 같은 종교를 가진 적들을 상대로 싸우는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각 종교 지도자들이 자기 사회 내외의 다른 종교 집단에 대해 보이는 태도에는 매우 강한 현실 정치가 작동하고 있었고, 거기에서 종교는 항상은 아니지만 자주 간과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711년부터 1492년까지의 기간이 끊임없는 종교적 분쟁의 시기만은 아니었고, 이베리아반도의 무슬림들과 기독교도들은 전쟁보다는 평화롭게 지내면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으며, 서로 상대편과 싸우는 것 못지않게 자기들끼리 싸우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다.

즉 저자는 역사를 만들어가는 인간은 너무나 복잡해서 그들의 언행을 종교적인 이데올로기만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으며, 종교적 정체성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규정하는 여러 방식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무슬림 왕국들은 빈번하게 편의, 개인적 친밀감 혹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기독교 왕국들과 동맹을 맺고 동료 무슬림 세력을 상대로 싸우기도 했으며, 또한 그 반대의 경우도 빈번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저자는 중세 시대 이베리아반도 주민들은 무슬림, 기독교도 혹은 유대인으로 서로 뚜렷하게 구별된 존재로 볼 것이 아니라 종교적이기는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실용적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이익과 복지에 관심을 가진 같은 인간들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중세 알 안달루스 사회를 지배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실용주의였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 책에서 우리는 중세 혹은 근대 시대 이슬람 문명이 유럽 문명의 발전에 제공한 중요한 기여와 그 선진 문명의 전달자로서의 알 안달루스가 수행한 역할을 엿볼 수 있다. 중세 전반기 서유럽 기독교 문명은 문명의 ‘암흑기’였던 데 반해, 같은 시기 중근동 이슬람 세계(8~10세기)는 문명의 황금기였다. 무슬림들은 그리스-로마 문명의 유산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발전시켜 문명을 활짝 꽃피웠다. 특히 우마이야 왕조의 뒤를 이어 집권한 압바스 왕조 시대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유례가 드문 과학의 황금시대를 구가했다. 이 기간 동안 이슬람 세계에서는 수학, 천문학, 물리학, 공학, 의학, 화학, 철학 등 여러 과학 이론과 실용적 발명이 동과 서에서 유입되었고, 이는 다시 발전된 형태로 주변에 전해졌다.

또한 이 시기는 압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제국 전역에서 왕성한 번역 활동이 전개된 기간과 일치하는데, 그리스인과 페르시아인, 인도인들이 앞서 이룩한 과학 지식을 담은 문헌의 활발한 번역을 통해 아랍인들은 이전의 지식을 종합하고 한층 발전시켜 이 분야에서 이전의 지식을 능가하는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그리고 이 선진 지식은 9~10세기에 문화적으로 통일된 이슬람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그것은 이슬람 세계의 서쪽 끝, 즉 이베리아반도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이슬람 스페인에서 그것은 서쪽 기독교 세계의 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고, 그들에 의해 1150년부터 1250년 사이에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럽의 지적 생활의 메마른 목초지로 흘러들어가 그곳을 적시게 되었다. 덕분에 서유럽은 잊어버린 문명을 되찾기 시작해 암흑시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것을 발판으로 근대적 발전을 이룰 수가 있었으며, 결국에는 세계를 주도하는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슬람 문명이 없었다면 르네상스도, 17세기 과학혁명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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