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운영의 기본 질서 훼손을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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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운영의 기본 질서 훼손을 주목한다
  • 전국교수노동조합
  • 승인 2022.07.04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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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두 달도 지나지 않은 지난 6월 27일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오차 범위 이내이지만 대통령 직무수행에 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서는 드문 일이 벌어졌다. 새 정부가 초기부터 국정에 혼선을 빚으며 소위 ‘허니문’ 기간이 실종되는 양상이며, 단순히 몇몇 정치적 서투름이 빚어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 심각하다. 

권력을 쥔 소수 그룹이 거침없이 국가 운영의 기본 시스템을 훼손시키고 있다. 국가정보원 1급 국장 27명 전원의 대기발령이라는 초유의 사태, 검찰청장을 공석으로 둔 채 법무부장관이 주도하는 일방적 검찰 인사, 행정안전부의 느닷없는 ‘경찰국’ 설치 추진, 경찰 인사를 둘러싼 납득하기 힘든 혼선과 ‘국기문란’ 운운한 대통령 발언이 대표적이다. 고등교육 분야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터지고 있다. 교육부장관 후보자 추천의 연이은 부실함을 먼저 언급해야겠지만, 두 가지 사례만 더 들어보자. 

첫째, 대학 등록금 인상 허용에 관한 교육부의 오락가락 행태이다. 지난 6월 23일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주최 총장 세미나에서 등록금 규제에 대해 정부 내에 풀어주자는 공감대가 있고 조만간 결론이 나오리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그러나 단 하루 만에 교육부가 구체적 내용에 대해 각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관계부처와 협의해나갈 예정이라며 한발 물러섬으로써 대학가의 반발이 더 커지고 있다. 현재의 조건에서는 일부 대학 경영진만 반색할 등록금 인상을 이처럼 졸속으로 공론화한다면, 학부모, 학생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를 무시하는 짓인 동시에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며 현재 한국 대학의 심각한 위기에 너무도 둔감한 모습이다. 

둘째, 대통령이 반도체 인력 양성을 거친 어조로 교육부에 주문하면서 벌어진 소동이다. 가장 어이없는 사실은 이미 작년 5월 교육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K-반도체 전략」을 발표하고 올해부터 2031년까지 반도체 산업인력 36,000명 육성 등을 약속했다는 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6개 정부 부처와 산업계, 학계가 협의하여 성안한 대규모 종합계획이니 최소한 이 계획의 큰 허점을 명확히 지적하거나 계획 자체를 재검토하는 절차가 없다면 국정 운영의 시스템을 뒤흔든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국가 경영의 기초 질서에 대한 존중심이 없는 집권세력만 문제는 아니다. 이 과정에 편승하는 일부 학자, 교수들도 못지않다. 지난 6월 17일 서울경제의 기고문에서 서울대 모 교수는 현재 반도체 관련 대학원 정원 확대가 인력 양성으로 바로 이어지기 어려운 이유로 “서울대 공대 전기정보공학부의 경우 선발 학생이 입학 정원의 80% 수준”이고 다른 대학도 대학원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학부의 반도체 학과 정원을 확대하고 반도체 분야 교수를 우선 충원한 뒤 대학원생을 증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첨단 공학 분야에 무지한 사람이라도 이런 모호한 논리의 허술함은 쉽게 간파할 수 있다. 많은 대학의 반도체 전공 대학원이 정원 미달이라면 정확한 원인부터 규명하는 것이 순서이고, 반도체를 가르칠 교수가 부족하다면 하루 이틀에 쉽게 해결되는 일이 아니니 세심한 대책이 필요하다. 관련 학부의 정원부터 늘리자는 식의 논법은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 이런 혼란의 배후에 어떠한 현실적 이해관계가 도사리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현 정부는 고등교육 투자 확대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등록금 인상 허용을 둘러싼 오락가락 행보 외에도,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을 포함한 장기적 고등교육 투자 계획에 대한 고민 없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의 현실적인 문제를 거론하며 그 교부금의 일부를 덜어 대학을 지원하겠다고 함으로써 교육계 내부의 갈등만 부채질하는 행태가 그러한 무관심의 증거이다. 덧붙이자면, 얼마 전 교육부는 사립대학의 재정 여건 개선을 위해 재산 관련 규제의 대폭 완화를 발표했다. 대법원이 내린 최종 판결을 근거로 한 제도 변경이라서 그 자체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우리 사립대학의 현실에 비춰볼 때 교육용 기본재산의 용도 변경을 쉽게 하는 정책은 결과적으로 부패와 비리에 물든 사립대학 ‘소유주’가 재산을 빼돌리게 도와주는 부작용을 낳게 마련이다. 여기서도 사학비리 척결의 숙제나 장기적인 대학 재정 강화 방안 수립을 도외시한 채 실행하는 수동적인 땜질식 정부 정책의 실상이 선명하다.

우리 교수노조는 현 집권세력이 국정 운영의 기본 질서를 외면하는 집단임을 직시해야 한다. 섣부른 예측은 금물이지만, 이들은 권력과 이익을 서로 차지하려는 내부 다툼 속에 자멸의 길로 가면서 또다시 나라를 위기에 빠뜨릴 가능성이 높다. 그런 상황이 언제 닥치든 우리는 전국 대학의 정규·비정규교수들의 단결 위에서 현실성 있는 대안을 연마하며 국민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준비를 해야 한다.


2022년  7월  4일

전/국/교/수/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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