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길은 문화예술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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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길은 문화예술로 통한다
  •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 승인 2022.07.03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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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영 칼럼]

최근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열린음악회> 관람과 사진, 패션, 집무실 미술품 등이 언론보도 되면서, 소위 ‘문화예술을 활용한 정치적 홍보’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문재인 전임 대통령 부부의 공연 관람과 사진까지 언론에 소급되었고, 양측 사진 비교와 상대적인 ‘고품격’ 여부 논란이 뒤따랐다. 이러한 문화예술의 정치성과 미학적 위계 논쟁은 역사상 전에도 있었고 후에도 있을 것이다. ‘정치적/유희적 인간’이 본성을 버리지 않는 한 말이다.

국내외 위중한 정치경제적 현실에 문화예술을 활용한 정치적 행보들의 우선순위와 타당성 논란은 차치하고, 여론의 추세는 우리 한국인 상당수가 21세기에도 여전히 문화예술의 순수성과 엘리트주의를 선호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듯하다. 유사한 맥락에서 상기되는 사건이 있다. G20 등 세계 정상회의 때,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공간에서 개최된 초청만찬이 여론의 ‘폭격’을 맞은 일이다. 당시 한국의 얼굴인 국립중앙박물관의 “무지, 천박함, 세계 최초의 미친, 반문화적 행태”로서 맹비난되었다. 서로 다른 견해는 타당하지만, 당시 비난은 루브르와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을 포함해 세계적인 미술관에서도 전시공간 내 만찬과 리셉션이 주기적인 행사임을 간과했다. 물론 음식물이 미술품 보존에 해가 되지않는 수칙이 전제된다. 

우리는 왜 예술의 성역을 고집할까. 예술이 ‘순수의 시대’를 벗어난지 오래다. 예술 본연의 속성과 자체적 가치는 존속하지만, 그 경제창출과 정치적 활용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소위 문화강국들이 문화예술 투자를 확대하는 이유는 문화가 곧 국격이자 위상이 되는 현실 외에도,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요인이 크다. BTS의 군입대 문제가 거듭 이슈가 되는 이유다. 스페인은 고야, 가우디, 피카소, 달리, 미로 같은 거장들 덕분에 몰려오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무수한 후손이 먹고 산다. 프랑스가 <모나리자>를 40조에 판다해도 부가수익에 못미친다 하고, 위작의혹에도 ‘어쩌면’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는 5천억원 경매가를 기록했다. 뱅크시의 ‘낙서화’는 수십억 원을 호가하며, 글로벌 블록버스터 영화 한편의 창출 수익이 자동차 수백만 대 수출 수익과 비등하다. 국내 미술 투자를 가늠하는 미술품 경매 거래액만 올 상반기 1,400억원대에 달한다. 

문화예술은 또한 ‘이미지메이킹’이라는 정치적 속성을 지닌다. 예술 프로파간다는 숙청과 살상 중에 정치홍보물로 어린아이와 함께 미소짓는 사진을 활용한 스탈린 같은 유형에 국한되지 않는다. 연예계, 정계, 정부, 기업, 기관은 물론이요, 각종 단체와 대학에서도 이미지메이킹과 홍보는 생존의 필수코스가 되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이 점에서 후발주자이다. 이웃 일본은 19세기 중반부터 문화전략을 세우고 서구 엑스포 등에서 막대한 경비의 예술을 활용해 “이상적 낙원이자 문명국 일본” 이미지만들기에 성공했고, 이를 국제적 영토확장과 정치경제적 이득의 발판으로 삼았다. 일본 문화의 국제화를 위한 서양 자문위원 고용, 각국 취향에 대한 맞춤식 대응, 면밀히 계산된 국가수장 이미지 형성에 힘썼다. 서구인의 상상력 속에 당시 일본은 선진 기술산업과 탁월한 문화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나라로 자리잡았고, 이는 장기간 국익으로 이어졌다. 이상화된 일본신화에 오스카 와일드가 1891년에 서구에 알려진 대로의 일본이란 나라나 일본인들은 존재하지 않고, 일본은 “순전한 발명품, 환상의 예술작품”이라고 지적한 배경이다.

우리는 문화예술을 활용한 이미지메이킹에서 상대적으로 ‘순박한’ 수준에 머물러왔다. 재능있는 국민의 피나는 노력으로 K-컬처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지만, 정부차원에서 예술분야와 세종학당 등 지원과 활용은 여전히 문화강국들에 비해 약소한 편이다. 외국인에게 투표권이 없기 때문이라는 농담도 회자된다. 문화예술을 통한 이미지메이킹은 필수이다. 거의 모든 길이 문화예술로 통하는 세상이다. 그 정치적 활용에 대한 시대착오적 비난보다는 보다 효율적인 방법론을 모색할 때다. 그 미학적 수준은 감식안에 따라 상이할진데, 목표는 국내외 ‘고객’이다. 일부 평자의 엘리트 취향에 다소 어긋나도, 다양한 수준을 고려해 절대다수 고객의 구미에 맞추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결과는 역사가 평할 것이다.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미국 델라웨어대학(University of Delaware)에서 미술사 석사와 박사 학위 취득. 국립 스미소니언박물관 Fellow와 국제학술자문위원, 미국 국립인문진흥재단(NEH)과 루스(Luce)재단 Fellow, 중국 연변대학 객좌교수, 일본 동지사대학 국제대학원 강의교수를 거쳤으며, 국내에서 현대미술사학회 회장, 원광대 평생교육원장, 대외협력처장, 국제교류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원광대 조형예술디자인대학 미술과 교수로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위원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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