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외부성에 대한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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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외부성에 대한 사유”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7.02 2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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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의 문학 | 송승환 엮음 | b(도서출판비) | 253쪽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이름 붙일 수 없고 규정할 수 없는 ‘바깥’에 대한 사유의 실천들이다. 세월호 사건과 촛불 집회, 팬데믹처럼 단일한 의미로 정의할 수 없고 명징한 명제로 정리할 수도 없는 ‘바깥’에 대한 사유처럼 각각의 글들은 확고한 주제와 중심으로 환원할 수 없는 바깥에서 각자의 ‘바깥’ 사유를 전개한다. 

사회학자이며 철학자인 이진경은 「세계의 바깥, 혹은 세계-외-존재의 존재론」에서 그의 형형한 철학에 대한 사유와 함께 시에 대한 사랑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이진경은 우리가 세계-내-존재로서 갇혀 살지만, 그렇게 갇히기 이전에 이미 그 세계의 바깥에 있고, 갇혀서도 그 바깥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릴케, 랭보, 페소아, 보들레르, 이원, 진은영, 송승환, 김행숙, 신해욱, 황인찬, 김언희 등의 시를 읽고 바깥에서 규정되지 않은 삶의 언어를 면밀히 분석한다.

시인이자 철학자인 진은영은 「문학의 바깥, 삶의 바깥」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어떤 순간에 스스로가 지은 성스럽고 외떨어진 공간에 유폐된 듯한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게 되는지, 그로 인해 바깥을 희망하게 되는지에 대해 말한다. 그는 글쓰기를 바라보는 심리학적 시선, 상처의 바깥, 작가가 된다는 것, 짐 자무쉬의 영화 〈패터슨〉(2016)이 보여주는 문학의 바깥, 탁월성 바깥의 문학으로서 아마추어 문학 등을 성찰하고 최종적으로 삶의 바깥을 사유한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송승환은 두 편의 글 「바깥의 시학」과 「바깥의 문학 혹은 순간의 현존」에서 릴케의 사물시와 이브 본느프와의 시를 읽는다. 「바깥의 시학」은 “저편 멀리”를 지시하고 저편에서 “이따금 이쪽을 바라보는 미소”의 언어. 말할 수 없지만 말해야만 하는 언어가 출현하는 공간. 그리하여 세계의 내면 공간과 “언제나 마주” 설 때, 침묵으로 흘러넘치는 언어. 그것이 릴케의 ‘바깥의 시학’이며 도시의 사물들을 구원하는 언어라고 말한다. 「바깥의 문학 혹은 순간의 현존」은 프랑스 현대 시인 이브 본느프와의 시집 『두브의 운동과 부동에 대하여』를 읽는다. 절대에의 추구라는 무한 ‘운동과 부동’, ‘미지의 진정한 장소’와 그 실재를 담지하려는 ‘언어의 시도와 실패’를 그려내는 시. 그것이 ‘지금-여기’ 바깥으로 향하는 이브 본느프와의 언어이다.

문학평론가이자 인문학자인 최진석은 두 편의 글 「비인간, 또는 새로운 부족들의 공-동체」와 「탈인간을 위한 시-차들」에서 시와 소설을 아우르는 바깥에 대하여 질문한다. 「비인간, 또는 새로운 부족들의 공-동체」는 황정은 소설이 던진 물음들을 점검한다. 황정은 소설은 통념과는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구성하는 비인간의 욕망과 힘에 대한 기록으로서의 글쓰기. 온갖 인간적 가능성이 파국에 이르고 소진된 이 시대, 곧 사이-시간을 살아가는 방법이 황정은의 문학임을 명증한다. 

「탈인간을 위한 시-차들」은 코로나19의 대유행이 낳은 효과를 논의하면서 공동체의 연결성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양상을 살핀다. 이장욱, 원성은, 류성훈, 성윤석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인간 ‘바깥’을 보고자 하면서도 인간적인 것 ‘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 비인간에 대한 시적 탐문은, 그것이 지구 생태에 대한 것이든 정치적 공동체에 대한 것이든, 또는 사물 세계의 사변적인 것이든 인간과 비인간의 시-차들, 그 역설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음을 사유한다.

“바깥은 미명의 어둠 속이며 무한한 우주의 심연에서 존재하는 모든 존재자들의 어떤 자리(la position)이다. 바깥은 어떤 이름도 붙일 수 없고 어떤 이름도 없이 온전히 스스로 ‘있음’으로 빛나는 것들의 자리이다. 바깥은 모든 법과 주체의 동일성의 원리로 통제되는 삶에 대한 ‘죽음의 선고’이며 죽어감과 되살아남이 동시에 발생하는 무無의 장소이다. 주체와 인칭(人稱)이 죽고 ‘비인칭(Impersonnalite)’과 ‘중성(Neutre)’(모리스 블랑쇼)이 되는 지점이다. 바깥에서 이름을 지닌 존재자들은 ‘~이다’의 규정성에서 풀려나와 ‘~이 있다’는 무규정성의 존재가 된다. 바깥은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언어의 한계 속에서 마주하는 사물들의 범람이며 ‘있지 않음의 있음’, 그 사물들이 개시되는 세계이다. 의미가 비어 있는 중심이다. 일상의 기욤이 죽고 시인이 되는 시간, 기욤의 타자성이 실현되는 시간이다. “진정한 시는 법의 바깥에 있다”(조르주 바타유)는 것을 경험하는 글쓰기.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가 말하는 상태의 경험. 기욤이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불현 어떤 미결정의 목소리에 붙들려서 매혹되고 ‘나’ 너머에 잔존하는 모든 것에 의해 시가 씌어지고 시를 받아쓰는 순간의 경험이다. 세월호 사건과 촛불 집회처럼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하여 일상적 삶의 외부로 추방당하고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경험이다. 삶과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것을 균열시키는 외부의 경험이다. 그리하여 바깥으로의 이행은 완전한 무(無)의 경험과 타자성의 글쓰기이며 규정된 삶의 의미를 전복하는 미학적이며 정치적인 실천이다.” (엮은이_「책머리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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