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 사후 20주기에 발간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유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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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사후 20주기에 발간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유고집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7.02 2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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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뢰즈 다양체: 편지와 청년기 저작,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텍스트들 | 질 들뢰즈 지음 | 다비드 라푸자드 엮음 | 서창현 옮김 | 갈무리 | 432쪽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가 1995년 생을 마감한 이후 총 세 권의 유고집이 철학자 다비드 라푸자드의 편집으로 발간됐다. 2002년에 프랑스의 미뉘 출판사에서 출간된 첫째 권 『무인도와 그 밖의 텍스트들』(L'Ile deserte et autres textes)에는 들뢰즈가 1953~1974년까지 쓴 미발표 글들이 실려 있다. 같은 출판사에서 2003년에 출간된 두 번째 권 『광기의 두 체제와 그 밖의 텍스트들』(Deux regimes de fous et autres textes)에는 1975~1995까지 들뢰즈가 쓴 미발표 원고들이 수록되었다. 이번에 한국어판이 출판된 『들뢰즈 다양체』(Lettres et autre textes, 프랑스어판 출판년도: 2015)는 다비드 라푸자드가 엮은 세 번째이자 마지막 유고집으로 들뢰즈의 편지들과, 미출간 원고, 들뢰즈가 20세, 22세 때 쓴 청년기 저작들을 담고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에는 들뢰즈가 당대 지식인들에게 보낸 편지들이 수록되어 있다. 들뢰즈는 친구, 동료 철학자, 스승, 제자, 예술가, 편집자 등 여러 관계의 사람들과 서신을 주고받았다. 미셸 푸코, 펠릭스 과타리, 알랭 뱅송, 클레망 로세, 프랑스아 샤틀레, 피에르 클로소프스키, 아르노 빌라니, 조세프 에마뉘엘 보프레, 장-클레 마르탱, 앙드레 베르노 같은 동료 연구자들, 『크리티크』지를 이끌었고 미뉘 출판사에서 총서를 기획했던 장 피엘, 루마니아 태생의 시인 게라심 루카, 팔레스타인 작가 엘리아스 산바르 등에게 들뢰즈가 보낸 서신을 『들뢰즈 다양체』에서 읽어볼 수 있다.

들뢰즈가 5권의 책을 함께 쓴 펠릭스 과타리와 주고받은 편지는 그들의 공동작업 와중에 작성된 서신들로서, 두 사상가의 협업 방식, 그리고 두 사람의 주요 개념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장면들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서 ‘기계’라는 개념을 고안하는 것은 과타리이지만, 이 개념의 의미와 그것이 하나의 체계 속에서 어떻게 자리하게 될지를 결정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들뢰즈이다.

들뢰즈의 저작들과 비교하여 무척 쉽게 읽히는 이 편지들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들뢰즈의 인간적인 면면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들뢰즈는 『크리티크』지로부터 글 청탁을 수락하고 걱정을 한다. “『크리티크』지를 위한 선생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제게 큰 기쁨이지만 걱정스럽기도 합니다”(장 피엘에게 보낸 편지). 들뢰즈는 진로에 대해서 조언을 요청한 클레망 로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같은 직업에서는(예를 들면 연구라는 관점에서) 3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고 또 그러한 사실로부터 불확실성이 나옵니다.”(클레망 로세에게 보낸 편지)

2부는 들뢰즈가 그린 다섯 개의 특이한 그림으로 시작된다. 이 그림들은 1973년 칼 플링커가 『들뢰즈 푸코. 혼합물』이라는 제목으로 발행한 두 권의 소책자에 인쇄되었던 것들이다.

그림들에 이어서 들뢰즈가 문학 잡지 『까이에 뒤 쉬드』(Cahiers du Sud), 학술지 『철학 연구』(Les Etudes philosophiques) 등 여러 지면에 발표했던 글들, 「세 권의 책: 브레이에, 라벨, 르 센느」, 페르디낭 알키에의 <초현실주의 철학>, <데카르트, 인간적 면모와 작품>에 대한 리뷰 등이 이어진다. 「흄에 대한 강의 (1957~1958)」는 1953년에 철학자 흄에 대한 저서 『경험주의와 주체성』을 출판하기도 했던 들뢰즈에게서 흄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해 준다. 그 외에도 들뢰즈와 과타리가 레이몽 벨루와 함께한 「『안티 오이디푸스』에 관한 대담」, 학술대회 발표 원고의 초고(「음악적 시간」), 프란시스 베이컨에 관한 책 『감각의 논리』의 영어판 서문 등이 2부를 이룬다.

특히 레이몽 벨루와의 1973년 대담은 들뢰즈와 과타리의 책 『안티 오이디푸스』는 들뢰즈와 과타리가 공저한 ‘자본주의와 분열증’ 시리즈의 첫 번째 권이다.(제2권은 『천 개의 고원』이다.) 이 대담에서 저자들은 『안티 오이디푸스』의 핵심 논점들을 분명히 하고, 책의 집필 동기를 밝히며, 책이 출간된 이후의 사회적 반응에 대해 논평하고, 이해하기가 까다로운 몇몇 개념을 부연 설명한다. 들뢰즈와 과타리는 대담의 여러 곳에서 『안티 오이디푸스』의 논지를 명확히 하는데, 들뢰즈는 “정신분석 체계는 그 안에서 아무것도 일어날 수 없게 만들어진 체계입니다.”라고 단언한다.

3부에는 들뢰즈가 20~22세 때 쓴 글들이 실려 있다. 첫 번째 글 「여성에 관한 묘사」는 들뢰즈가 20살이 되자마자 출간한 최초의 텍스트로, 성숙한 들뢰즈 사상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조금 낯선, 청년기 시절 들뢰즈의 글쓰기 스타일과 사유 방식을 보여준다. 그 밖에 3부에는 들뢰즈가 21살에 발표한 것으로 맑스의 청년기 저작을 연상시키는 「그리스도에서 부르주아로」를 비롯하여, 「말과 외형」, 「보편학, 과학, 철학」, 그리고 22세의 들뢰즈가 드니 디드로의 『수녀』에 부친 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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