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반도체 인력 양성' 정책 드라이브 ... 야권, 지역균형발전 등 고려 '신중론'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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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 '반도체 인력 양성' 정책 드라이브 ... 야권, 지역균형발전 등 고려 '신중론' 제기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6.23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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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부, 인재양성팀 신설 '반도체 행보' 활발
- '반도체 인력 양성 방안 이대로 괜찮은가' 국회 토론회
- 김정호 카이스트 교수 “전국 국립대학에 반도체 학과 설립하자”

 

윤석열 정부가 국정 초기 핵심 육성 산업으로 반도체 활성화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국회에서도 관련 입법 활동을 위한 움직임이 분주하다. 반도체는 인공지능(AI), 이차전지와 함께 미래전략산업이다. 반도체산업지원특별위원회를 띄운 국민의힘은 14일 반도체 특강과 입법 세미나를 동시에 개최하면서 대대적인 입법 지원을 예고했다.

이날 특강에 앞서 국민의힘은 ‘반도체 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토론회도 열었다. 발제자로 나선 김성재 서울대 교수는 반도체 학과의 증원 뿐 아니라 군복무와 연계한 인력 양성제도, 정부-산업체-대학의 유기적인 교육 생태계 구축과 협업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전문 인력 배출을 위한 인프라가 절대 부족하고 유학 후 귀국하는 인력 공급이 한계에 도달했다”며 “국내에서 최고 기술을 교육 받은 학사·박사급 인력이 모두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내 반도체특위도 출범을 앞두고 있다. 특위 역시 절대적인 반도체 인력 부족 문제를 핵심 의제로 삼고 설비투자 지원, 덩어리 규제 해소 방안 마련에 몰두하겠다는 방침이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 의장은 이날 의총에서 “정·관·산업계가 함께 하는 모델로 반도체 특위를 준비하고 있다”며 △반도체 인력 △R&D(연구개발) △인프라 △세제 지원을 중점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전문인력 확보 안건은 심도 있게 다뤄질 전망이다. 반도체 특위에 참여가 예정된 의원들에 따르면 지난 5월 정부와 반도체 업계 만남에서 업계는 1순위 애로사항으로 전문인력 부족을 꼽았다. 반도체학과 개설 및 정원 확대와 같은 인력 양성책이 빠르게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단순히 반도체 분야 인력 숫자를 확대하는 것을 넘어 탁월한 인재 양성을 목표로 전문교수와 실습용 장치 확보 대책도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 우수인재 영입과 국내 핵심기술자 유출을 방지하는 업무환경 마련도 필요하다.

이 같은 변화는 최근 입법 상황에서도 나타난다. 올해 1월 의결된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 특별법'의 경우 정부의 인력양성사업 추진과 함께 산업교육기관 계약학과 설치, 특성화대학 설치, 전략기술전문인 유출 방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달에는 해당 법안의 개정안을 통해 전략기술 관련 대학의 특화단지 내 설립과 이전을 허용하고 각종 부담금을 감면하는 등 지원방안이 발의됐다.

정부도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전문인재 양성에 관심이 커지면서 교육부는 연일 반도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관계부처와 연구기관이 모인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재양성 특별팀'을 신설했다. 반도체 관련 전공에 마이크로·나노 디그리(학위)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마이크로·나노 디그리는 세 과목 정도를 들으면 작은 학위를 주는 것으로 윤 정부 국정과제에도 포함된 내용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3년간 학사급 반도체 실무중심 인재 양성을 목표로 '반도체 전공트랙사업'을 추진 중이다.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열린 '반도체 인력 양성 방안 이대로 괜찮은가' 주제 정책토론회

▶ 정부가 반도체에 집중하는 데 야권은 신중론을 주문하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부 등 관련 부처에 반도체 인력 양성을 주문하자 수도권 대학 정원을 늘리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에 지역 대학들은 수도권과 격차가 더 심해질까 우려하고 있다.

이에 민주당은 반도체 인력 양성은 필요하지만, 수도권 대학 반도체 학과 정원 확대 등은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여기에 국가 교육이 기업 발전에 종속돼서는 안된다는 우려도 제기 중이다. 

윤석열 정부의 ‘수도권 대학 반도체 학과 정원 확대’ 방안을 점검하는 정책토론회 <반도체 인력 양성 방안 이대로 괜찮은가?>가 22일(수)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주최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려면 지방 국립대학에 학과를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 인력 양성 방안에 문제가 많다며 지방 국립대학에 반도체 학과를 개설하거나 전국에 반도체 대학원을 설립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발제자로 나선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2020년 조사 기준 국내 반도체산업에서 부족한 인력이 1,510명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인력 부족의 주요 이유로는 '해당 분야 구직지원자 부족' '현장투입이 가능한 숙련된 인력 부족' 등을 꼽았다. 이어 안 전무는 “반도체산업인력 및 부족률이 광역지역별로 격차가 클 뿐 아니라 직무, 학력, 전공 등에서 상이하다”며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세밀한 인력 양성 방안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정호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국립대에 관련 학과를 설립하고 지역 산업과 연계해서 인력을 배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정부의 반도체 인력 양성 추진 전략을 놓고 "인재들이 서울로 집중되면서 (지방)국립대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면서 "수도권 정원 조정을 해서 (반도체 인력 양성을) 한다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현재 정부 추진 전략의 문제점으로 △ 학생 배출과 사회 수요 불일치 △ 수도권 정원 조정 등 제도 변경 필요성 △ 4~6년 소요되는 학부생 배출 기간 △ 석‧박사 배출에 10년 소요 등을 꼽았다.

김 교수는 "수도권 정원 규제에 대한 법률을 조정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면서 "지방 거점 대학에 반도체 관련 학과를 만들고 그 다음으로 수도권 규제를 풀어 인력난을 해소하는 것이 단계"라고 설명했다.

이에 김 교수는 "가능한 전략부터 먼저 추진하자"면서 "지방 국립대는 TO(정원) 제한이 없으므로 전국 국립대학에 반도체 학과를 설립하자"고 제안했다.

예를 들어 5개 대학에서 정원을 100명씩 잡는다면 500명의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정부는 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대학에는 시설과 운영비를 지원하면 된다.

또 김 교수는 현재 정부의 지원을 받는 인공지능(AI) 대학원이 전국에 10곳이 있는 만큼 전국에 10개 반도체 대학원을 설립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아울러 정부 지원으로 단기 아카데미를 확대하거나 산업체 박사 인력을 강사 내지는 겸직·산학협력 교수로 활용하는 방안 등도 내놓았다.

아울러 김 교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4대 과학기술원(과기원) 산업체가 공동으로 '반도체 인재양성 협의회'를 운영하는 것도 거론했다.

이를 통해 계약학과를 포함한 반도체 학과를 설립하고, 반도체 산학협력 교육과 연구 프로그램을 확대하며, 공동 연구 인프라 투자를 통해 반도체 전문 인재를 육성하자는 방안이다.

 

좌장을 맡은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반도체 인력을 적극 양성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환영하지만 교육부 장관도 부재한 가운데 성급히 추진돼서는 안 된다"며 "학계 및 산업계 현장의 구체적인 목소리를 반영하는 일부터 수도권‧비수도권 격차 문제까지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추진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단기적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수립한 첨단산업 인력 양성 계획을 안정적으로 이어가면서 중장기적으론 기초학문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 지원, 지역 국립대 중심의 첨단산업 정원 확대, 기자재‧교원 포함한 인프라 확대를 병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날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강득구, 강민정, 권인숙, 서동용, 윤영찬, 이용빈 의원 공동주최했고, 토론자로는 김두환 덕성여대 교수, 이문석 부산대 교수, 과학기술정부통신부 권기석 원천기술과장, 교육부 정상은 인재양성 정책과정이 참석했다.

김두한 덕성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학부를 신설할 수 있도록 수도권 대학 정원을 묶어놓은 현행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에 반대한다"며 "(관련 정책의) 단순히 기계적인 효율성만 따져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문석 부산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반도체 관련 학과들은 지방 거점 대학에서도 충분히 (인력 양성이) 가능하다"며 "현재 반도체 계약학과를 진행하려는 수도권 공대들과 비교해 (학생들의 실력이 뒤처지지 않은데) 왜 계약학과를 수도권에 집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한편, 수도권 대학에 반도체관련 학과를 개설하는 등 윤석열 정부가 반도체 인력 양성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정작 업계 및 학계에서는 실무형 인재를 키우는 ‘속성 대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반도체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학교 내 반도체 계약학과를 신설하고 해당 학과 정원을 늘리는 등 대책 마련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조중휘 인천대 임베디드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정부 부처가 학계, 산업계와 인력양성 방법을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국가적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선 현장형, 실무형뿐 아니라 기초과학에 전념하는 기초형 인재도 필요한데 우리 제도는 엔드(현장) 중심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반도체(계약)학과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며 “종합적인 반도체 기술을 위해선 화학, 물리에서부터 전자, 자료, 기계 등 다양한 전공자들 능력을 조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학생들이 일부 대기업 취업을 보장하는 계약학과에 들어갈 경우 다른 연구활동에 대해 동기부여 및 잠재력이 제한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도 “학생들을 계약학과라는 좁은 울타리에 넣어 제한된 커리큘럼으로 인재를 만든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됐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인텔, 엔비디아처럼 고급 엔지니어가 키워져야 하는데, 반도체계약학과에서 이 같은 인재가 키워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진단했다. 궁극적으로 대학은 기업 현장 투입을 위한 엔지니어 육성이 아닌,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고급형 인재 양성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안 교수는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 반도체 중소기업을 위한 인재 확보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 대학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부족한 인력을 먼저 입도선매하려는 경쟁에 빠져 있다”며 “소재·부품·장비 회사의 경우 인력부족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인력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 이와 함께 기업 측에서도 정부여당의 이 같은 정책에도 불구하고 당장 닥친 반도체 인력부족을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아무래도 반도체 인재를 양성하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현재 정책이 도입된다 하더라도 그 효과를 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내 주요 반도체 대기업 관계자도 “반도체 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는 일반 생산직보다는 반도체 개발과 설계 등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고급 인력”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석⋅박사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 기간이 6년에서 더 많으면 10년 가까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 결과를 보기에는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인재를 양성할 만한 교수진도 부족한 실정이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는 15일 교육부에서 진행한 회의에서 주제발표를 진행했는데, 그 자리에서 “반도체 인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반도체 계약학과를 설립하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하지만 가르칠 교수가 없어서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반도체 산업에 대한 취업준비생의 시각도 긍정적이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세계적인 반도체 인력난에 대해 “IT기업은 4년만 공부하고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반면,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석⋅박사 과정까지는 거쳐야 한다”며 “그만큼 시간도 많이 들여야 하고 종사하기에도 어렵다는 인식이 대중에게 강하게 깔려 있다”고 보도했다.

결국 정책 추진에도 당장 인력난을 해결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반도체 인재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정책 마련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반도체 산업에 대한 충분한 비전을 대중에게 심어 줄 필요도 있다. 

여기에 반도체 인재 양성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도 함께 가져야 한다. 반도체 산업은 소재⋅부품⋅장비 부문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따라서 해당 시장이 함께 확대해야 반도체 시장 확대를 뒷받침할 수 있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반도체 산업도 성장하기 어렵다. 따라서 더 넓은 시각으로 반도체 산업과 인재 양성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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