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의 위기는 어디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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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의 위기는 어디서 오는가?
  •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 승인 2022.06.0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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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남 칼럼]

진보정당과 그 지지자들에게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는 매우 참혹하다. 정의당, 진보당, 녹색당, 노동당, 기본소득당 등 연합정치를 내건 진보정당들은 단일후보인 김종훈 진보당 후보의 울산시 동구의 단체장 당선을 제외한다면 광역·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전멸한 셈이다. 광역의회 선거를 보더라도 진보당에서 지역구 의원 3명, 그리고 정의당에서 비례대표 의원 2명이 당선되는 데 그쳤다. 기초의회 선거에서는 진보당에서 지역구 의원 17명, 정의당에서는 지역구 6명과 비례대표 1명이 당선되었다. 특히 자치의원 당선인 29명 중 6명만 광주·전남·전북이 아닌 지역에서 당선되었을 정도며, 충남·대전·세종·제주를 비롯하여 영남지역에서는 단 1명의 당선인도 배출하지 못했다.
 

왼쪽 그림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공하는 2022년 지방선거 개표현황을 내가 재구성한 것인데, ‘광역의원 비례대표 선거에서 진보정당들이 얻은 유효득표율’의 합을 나타낸다. 광주 등 4개 지역을 제외하면 시도별 3개 또는 4개 정당 득표율의 합임에도, 대부분 8%를 넘지 못했다. 오히려 보수정당이 분열되었던 지난 2018년 지방선거와 비교하더라도 서울의 경우 10.79%에서 4.84%로, 부산의 경우 6.83%에서 3.49%로, 대구의 경우 5.93%에서 3.94%로, 대전의 경우 9.42%에서 5.08%로, 울산의 경우 13.98%에서 7.52%로, 세종의 경우 12.85%에서 5.69%로, 경기의 경우 12.68%에서 4.43%로, 강원의 경우 8.66%에서 4.68%로, 충남의 경우 9.55%에서 4.49%로, 충북의 경우 9.87%에서 4.93%로, 경남의 경우 9.79%에서 6.13%로(경북은 예외인데 4.85%에서 5.05%로 유사함), 전북의 경우 15.17%에서 11.32%로 그리고 제주의 경우 20.17%에서 10.49%로 급락하였다. 도대체 이런 위기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보통 시민들에게 큰 선거로 인식되는 대통령선거가 지방선거 직전에 치러진 점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긴 하나, 거대양당이 번갈아 가며 정권을 차지하는 모습을 정상적인 정치 관행으로 인식하는 무딘 감수성이 우려스럽다. 다시 말해 거대양당에 의한 반복적인 정권 교체를 민주주의의 정상적 풍경으로 받아들이는 안이함이 걱정이란 말이다. 이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보수정당에 의해 구축되는 양당정치의 고착을 바람직한 헌정질서로 수용하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 

정당은 국민을 위해 그리고 국민에 의해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을 형성함을 목적으로 하는 자발적 정치결사체다. 따라서 국민의 다양한 이익과 의사를 반영한 다양한 정치결사체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 더욱이 대한민국은 그 헌법 제8조에 의해 복수정당제를 보장한다. 복수정당제는 단지 일당 독재를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치적 다양성을 보장하는 데 본질이 있다. 따라서 자유롭게 정당을 설립할 수 있다는 헌법의 명문 규정을 실제로 지역단위에서도 구현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국민의 다양한 정치적 이익과 의사가 그대로 다양한 정당의 정강과 정책에 반영되는 질서를 확보하여야 한다. 즉, 국민의 정치적 견해가 다양하듯 그 정당의 다양성도 보장되어야 하며 그러한 다양성은 더욱이 정치 현실 속에서 확보되어야 한다. 따라서 복수정당제는 결코 양당정치의 반복적 행태에 갇혀서는 안 된다. 복수정당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소수정당인 진보정당들이 거대양당인 보수정당을 충분히 그리고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대안적 정치력을 갖춰야 한다. 사실상 양당제를 연상시키는 복수정당제라는 용어를 대신할 다당제의 실체를 구상하고 실천할 때인 셈이다.

이번 ‘광역의원 비례대표 선거’에서 광주와 전남지역 진보정당들이 얻은 유효득표율은 2018년 선거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광주의 경우 18.5%에서 17.24%로 다소 하락, 그리고 전남의 경우 13.37%에서 14.44%로 다소 상승하는 정도다. 다른 지역의 진보정당 득표율 추이와 비교하여 이런 결과를 야기한 정치적 변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광주-전남 그룹’의 정치적 상황과 운동의 흐름을 ‘나머지 그룹’과 비교하면 ‘이번 진보정당의 위기’가 어디서 오는지를 살피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연구나 분석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기에 당위의 안목에서 ‘그 위기’의 뿌리를 잠시 언급하고자 한다.

진보정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외면받은 그 위기의 근원은 무엇보다도 진보 정치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진보 정치의 부재란, 진보정당이 진보적 정치 의제를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거나 관련 정책을 구현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그 부재’는 진보정당이 지방자치의 주체인 ‘주민’을 정치와 실천의 중심으로 세우는 데 결정적으로 실패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진보정당 자체의 역량 문제도 아니요, 진보정당 안의 민주주의에 커다란 문제가 발생했다는 지적도 아니다. 바꿔 말해서 진보정당과 주민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적절하게 개입할 두 가지의 실천적 조건을 고려할 수 있다.

먼저, 정치교육이 일상화되어야 한다. 건강한 사상과 이념, 그리고 실천을 위한 상시적 정치교육이 필요하다. 국가와 대자본 그리고 그 지지 세력들의 이념공세로부터 주민의 정치적 의식을 보전하여야 하는데, 정치교육은 바로 이런 목적을 가진 주민과의 직접적 소통이다. 그다음으로 ‘살아 있는 시민사회’가 구축되어야 한다. 민주적 노동조합을 포함하여 자치·자립·자급을 위한 소규모 공동체가 지역마다 동네마다 직장마다 자라나서 민주주의의 성과와 전통을 지켜나감으로써 순망치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건강한 시민사회 없이 진보정당의 지속성을 결코 담보할 수 없는 까닭이다.

진보정당은 건강한 시민사회의 생태계가 이끄는 지속적인 정치교육을 수행할 때 주민과의 직접적·일상적인 정치 결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 속도는 더디겠지만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향해 진솔한 장정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나 역시 한 명의 주민으로서, 진보정당들의 발걸음에 응원을 보낸다.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인제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전국교수노조> 부울경지부장 및 <경남교육연대>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민주법학> 편집위원장이며, 전공은 계약법으로 교육법, 인권법, 주택법, 법여성학 등에도 관심이 많다. 저서로 『여성과 몸』(공저, 2019), 『대학정책, 어떻게 바꿀 것인가』(공저, 2017), 『민법사례연습』(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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