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대립은 언제 끝날 것인가…과연 관계 개선은 가능할까
상태바
한일 대립은 언제 끝날 것인가…과연 관계 개선은 가능할까
  • 이원덕 국민대·일본정치
  • 승인 2022.06.04 23: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책을 말하다_ 『한일관계사』 (기미야 다다시 지음, 이원덕 옮김, 에이케이 커뮤니케이션즈, 320쪽, 2022.04)

 

이 책의 저자 기미야 다다시 교수는 일본을 대표하는 한반도 및 한일관계 전문가로 도쿄대학에서 한국학 연구와 교육을 주도하며 한반도 문제에 관한 수많은 저서와 논문을 집필한 바 있다. 저자는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고려대학교 대학원으로 유학하여 한반도 문제를 천착하기 시작했다. 그가 대학원생으로 한국 연구에 첫발을 내디딘 해가 1986년이고 이 책이 출간된 것이 2021년이니 이 책이야말로 35년간 그가 진력해온 한국 연구의 귀중한 성과와 축적을 압축적으로 담은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구한말부터 150년간의 한일관계사를 시야에 두고 집필되었으나 주된 분석 대상은 1945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약 75년간의 한일관계이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75년간의 한일관계를 네 개의 시기로 구분하여 검토하고 있는데 이러한 시기 구분의 기준점은 한일을 둘러싼 국제정치 구조 변화이다. 즉, 저자는 한일관계의 다이나미즘을, 국내 정치 변수와 더불어 냉전과 데탕트, 탈냉전과 미중 전략경쟁, 그리고 남북한 관계 등의 국제정치적 변수를 동시에 복합적으로 조망하며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제1기는 1945년부터 1970년까지의 25년간으로, 냉전이라는 국제 체제에서 한일이 미수교 상태로부터 국교를 정상화하여 본격적인 양자 관계로 이행된 시기이다. 제2기는 1970~1980년대의 20년간으로, 냉전체제가 데탕트로 완화되면서 한일이 비대칭적인 협력을 추구했던 시기이다. 제3기는 1990-2000년대의 20년간으로, 냉전체제가 종언을 고한 후, 한일관계가 대칭적인 관계로 전환된 시기이다. 제4기는 2010년대 이후 미중 관계가 본격적인 전략경쟁으로 돌입하면서 한일이 대칭적인 관계 속에서 갈등과 마찰을 심화시키는 시기이다.

네 시기에 걸친 75년간의 한일관계 전개 과정을 분석하면서 저자가 채용하고 있는 핵심적 키워드는 다름 아닌 대칭과 비대칭의 개념이다. 한마디로 한일관계는 해방 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비대칭의 관계에서 점차 대칭적인 관계로 이행하는 과정을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일관계가 비대칭적이었던 냉전 시대에 한일은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매우 긴밀한 공조와 협력관계를 유지했으나, 1990년대 이후 한일이 대칭적인 관계로 변모하면서 오히려 갈등과 마찰이 격화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2010년대 이후 한일의 파워가 상대적으로 균등해지면서 역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마찰은 현저하게 확대, 심화를 겪게 된다.

나는 최근 한일관계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마찰을 설명하기 위해, 한일이 경제, 기술, 외교, 문화 등의 영역에서 수직적인 관계로부터 수평적인 관계로 이행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양자 관계의 구조 변화를 주목해왔다. 아마도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비대칭에서 대칭으로의 변화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수교 후 한일 간 파워관계 변화 추세를 보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를 방불케 한다. 1965년 수교 시 한일 GDP 격차는 1대 30이었으나, 1990년에는 1대 10으로 좁혀졌고 2010년에는 1대 5가 되었다. 2020년에는 1대 3으로 더욱 간격이 좁혀졌다. 한일 인구는 5,000 만 대 1억 2,600 만이므로 1인당 GDP의 한일 간 차이는 별로 없다. 2019년 평균 임금으로만 보면 한국이 4만 2,300달러, 일본은 3만 8,600달러로 한국이 앞섰다. 2021년 방위비 지출만 보면 한국과 일본이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향후 디지털 시대의 경제, 산업, 기술 역량으로 보면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을 날도 먼 미래의 일이 아닐지 모른다. 

저자가 한일관계 분석에서 보여주는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관점은 한국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 어린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최근 일본에서는 그야말로 혐한론이 범람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와 징용 문제가 한일관계의 심각한 악재로 부상한 이후,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국’ ‘국제법과 조약을 무시하는 한국’이라는 프레임이 일본의 미디어와 여론을 지배하는 한국 담론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러한 일본의 특수한 상황에 굴하지 않고 한국 발 주장과 논리의 배경과 근거를 편견 없이 검토하고, 존중하는 자세로 평가하는 균형감을 보여주고 있다.   

한일관계는 2010년대 이래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악화를 겪고 있다. 특히 2018년 이후에는 징용,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문제 뿐 아니라 수출규제를 비롯한 경제문제, GSOMIA를 포함한 안보 영역에서도 갈등이 불거져 나오는 등 그야말로 전후 최악의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한일 간의 대립과 마찰은 상호 인식에 있어서 오해나 무지에서 오는 측면도 있다고 진단한다. 한편으로는 미중 신냉전 구도 속에서 한일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경쟁과 반목을 벌이고 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따지고 보면 저자도 강조하고 있듯이 아시아 지역 전체를 볼 때 한국과 일본은 정치적으로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체제, 경제적으로는 선진 자본주의 시스템을,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다양하고 자유로운 시민사회를 공유하고 있는 소중한 양자 관계이다. 미중 신냉전 질서 속에 끼어있는 존재로서 이념과 가치를 공유하며 전략적인 이익을 함께 하고 있는 한일 양국관계의 속성을 고려하면 현재와 같이 협력과 공조보다는 갈등과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은 이해하기 어렵다. 한일이 한편으로 경쟁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긴밀한 협력을 통해 전략적인 이익을 도모하는 길로 나아가는 데 무엇보다도 양국 리더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저자는 한일관계사의 궤적을 통해 실증하고 있다. 


이원덕 국민대·일본정치

국민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마친 후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했다. 연구 분야는 일본 정치외교, 한일관계이다. 도쿄대학 객원연구원, 객원교수, 현대일본학회장을 역임했으며,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국회 외교안보통일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민주평통 등 정부 기관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한일관계와 일본정치 외교에 관한 다수의 저작과 논문을 집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