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은 “의지와 열정과 생각의 완벽한 공감”
상태바
우정은 “의지와 열정과 생각의 완벽한 공감”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5.30 14: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라일리우스 우정론 | 키케로 지음 | 김남우 옮김 | 아카넷 | 156쪽

 

이 작품은 로마 귀족들의 상식을 기반으로 우정을 칭송하고 우정과 행복한 삶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화편이다. 작중 화자인 현자 라일리우스는 스키피오를 회상하며 두 사위 판니우스와 스카이볼라에게 우정의 본질과 계율을 일러준다. 라일리우스의 세 강연은 우정에 대한 일반의 견해들을 검토하고, 우정이 어떻게 생겨나는가를 설명하며, 어떻게 우정을 지켜갈 수 있는지 조언하는 순으로 이어진다. 키케로는 스키피오와 라일리우스의 우정을 기리는 형식으로 집필된 이 작품을 평생지기인 아티쿠스에게 헌정했다.

인류 역사상 서너 쌍이 되지 않은 우정의 쌍이 있었다고 전제하는 키케로에게 라일리우스와 스키피오는 진정한 우정의 대표적 사례이다. 라일리우스 집안은 선친 때부터 스키피오 집안과 인연이 깊었고, 라일리우스는 당시 집정관이던 소(少)스키피오와 함께 제3차 카르타고 전쟁에 참여했으며, 이 둘은 로마의 농지 개혁에도 입장을 공유했다. 기원전 2세기 ‘희랍 문화 수용’의 구심점이던 ‘스키피오 동아리’도 스키피오와 라일리우스의 활동 시기와 때를 같이한다. 키케로는 선한 사람들에게만 가능하다는 단서를 붙여 이들의 진정한 우정을 “의지와 열정과 생각의 완벽한 공감”이라고 정의한다.

‘사랑(amor)’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하는 ‘우정(amicitia)’은 애정과 호의에 따른 개인 사이의 친밀한 교제를 의미한다. 로마에서 우정은 정서적 연대보다는 상호 호혜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는데, 후원자인 유력인사들과 그들의 호의를 받은 시인들의 관계가 우정으로 이해되었고 ‘친구(amicus)’는 로마와 친교를 맺는 외국 정부나 그 수장을 일컫는 말이었다. 키케로는 지혜를 논외로 한다면, ‘신들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선물 가운데 우정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말하고 ‘우정이 아주 많고 아주 큰 유익을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우정의 가장 큰 유익은 ‘커다란 희망으로 미래를 밝히며 용기를 주고 의기를 북돋워’ 개인으로 하여금 불행을 견디고 행복한 삶으로 이끈다는 점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키케로는 우정이 인간 본성에서 유래하며 사랑 감정을 동반한 영혼의 연결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으로 유익에 대한 고려에서 생겨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우정이 결핍에서 생겨나지 않고 필요에 영향을 받지도 않는 것은 인간 본성이 바뀔 수 없는 만큼이나 참된 우정도 영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키케로가 책에서 다루는 인간의 본성적인 애정,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 새로운 친구와 오래된 친구에 대한 논의, 우월성에 따른 우정에 대한 논의 등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정관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며, 우정이 유용성을 좇는 일을 경계하는 대목은 에피쿠로스주의에 비판적이던 키케로의 입장을 여실히 드러낸다.

키케로에게서 우정의 상대인 친구에게 어떤 대가를 바라는 일도 우정의 본령에서 벗어나는 일이 된다. 모든 이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그저 자신이 소중하기 때문이며 우정에도 자신을 사랑하는 일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때라야 참된 우정을 찾을 수 있다고 키케로는 강조한다. 곧 “친구는 말하자면 또 다른 나”라는 것이다. 또 친구에게는 선한 것들만을 청하고 무절제함을 피하며 충고도 진정성 있게 하라는 등 삶의 계율로 삼아도 손색없는 가르침을 전한다.

우정이 삶에서 중요하게 논의되는 것은 그것이 곧 행복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사회 정치적으로 정의(正義)가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는 하나의 축이라고 할 때, 사적 영역에서 윤리 도덕적으로 우정(友情)은 행복 실현의 또 다른 축이다. 로마 공화정 말기를 살았던 키케로에게 국가는 포기할 수 없는 행복의 중요한 근간이었지만 시골 별장에 모인 친구들의 모임이 이 시기에 키케로가 집필한 다수의 철학적 대화편의 배경이 된다는 점은 키케로가 행복한 삶과 우정을 연관시킨다는 인상을 준다.

『라일리우스 우정론』은 격조 높은 문장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키케로의 대화편이다. 스키피오의 죽음, 그라쿠스 농지 개혁으로 야기된 로마 사회의 혼란, 대중 선동가들에 맞선 참된 정치가들의 대결 등에 관한 대화 내용은 역사적 상황의 가상적 배치와 실제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생생하다. 또 우정에 관한 일반의 견해를 검토하는 대목에서 인용하는 속담이나 학파의 주장은 ‘우정은 세월을 필요로 한다’는 지고의 가치를 확인하게 한다. 옮긴이는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의 회상』에서 우정을 다룬 대목을 우리말로 옮겨 키케로의 ‘우정론’과 비교할 수 있도록 부록으로 실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