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자유와 공동체: 헤겔 자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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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자유와 공동체: 헤겔 자유론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5.15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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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연단 강연]

■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제4강_ 나종석 연세대 교수의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 헤겔 자유론」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아홉 번째 시리즈 ‘자유와 이성’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자유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자기실현의 원리라고 할 수 있으며, 그간 인류가 걸어온 길은 자유 실현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합리성의 증대는 자유의 신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섯 섹션 총 4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고전 시대로부터 근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자유 담론을 검토함으로써, 자유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확장하고 미래 사회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열어보고자 한다. 자유의 이념과 지향에 관한 동서양의 지적 자산을 통시적으로 고찰하는 첫째 섹션 ‘자유의 이념과 지향’ 제4강 나종석 교수(연세대 국학연구원) 강연의 일부를 발췌 소개한다.

정리   편집국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 헤겔 자유론


나종석 교수는 “전체주의 사상가로서의 헤겔이라는 신화”를 넘어 “헤겔의 자유론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그를 위하여 우선 헤겔 자유론의 “핵심을 이루는 인륜적 자유론의 기본 특성”을 살펴보며, 그 인륜적 관계에 대한 이론이란 다름 아니라 헤겔이 “사회계약론적 자유주의 이론의 대안으로 제시한 것”으로서 오늘날 그같은 “대안적 자유론”은 ‘사회적 자유론’(theory of social freedom)이라고 불리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헤겔이 “왜 사회계약론적 자유에 대한 인식을 자유에 대한 부적절한 이해라고 보는지”를 알아본 뒤, 대체 “헤겔의 사회적 자유론의 내용”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본다. “달리 말하자면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가능하게 한다고 여겨지는 인륜적 삶의 세 가지 형태들, 즉 가족,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의 성격을 좀 더 상세하게” 살피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때 논의의 주 대상으로 삼는 것은 “시민사회와 국가에 대한 헤겔의 자유론적 이해”가 되며, 마지막에는 헤겔 자유론의 한계를 짚어본다. 

 

지난 4월 23일, 나종석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자유와 이성>의 4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 나종석 교수의 강연 중 5장 ‘헤겔의 근대적 국가론’과 6장 ‘헤겔 자유론의 한계’ 부분을 발췌 소개한다.


Ⅴ. 헤겔의 근대적 국가론

고대인의 자유와 근대인의 자유의 종합

국가는 “구체적 자유의 현실성” (§260/7, 406)이다. 이는 시민사회에서의 분열을 극복하는 데 필수적인 자유와 행복/복지의 통일은 국가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자유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있다는 것이 의미를 지니려면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국가는 가족과 시민사회의 독자적 권리를 허용해야 한다. 둘째, 국가는 자립적인 개개인들의 주관성의 권리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시민사회에서 발생하는 내적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 달리 말하자면 시민사회가 초래하는 보편성과 특수성 사이의 극단적 분리 현상을 극복하여 전체 사회의 수준에서 다시 인륜적인 통일성을 회복시켜야 한다. 이러한 인륜적인 통일성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국가는 결코 이성적이고 자유로운 공동체일 수 없다. 

헤겔이 보기에 다양한 결사체들이나 직업단체 사이에 이익 갈등이 발생할 수 있고 때로는 시민사회의 자발적 결사체들은 집단적 이기심에 빠질 수도 있기에 이런 문제를 시민사회가 모두 해결할 수 없다. 시민사회에서 발생하는 부와 빈곤의 대립과 분열로 인한 “혼란 상태는 단지 이를 제어하는 국가에 의해서만 조화에 이를 수 있다.”(§185 Z/7, 343) 이제 인륜적 총체성을 완전히 회복하는 과제는 국가의 중요 과제로 등장한다. 이런 점에서 헤겔은 국가를 시민사회의 “참다운 근거”(§256A/7, 397)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국가가 자유를 최고의 수준에서 실현하는 공동체라는 점에서 국가에서 비로소 자유는 “그 최고의 권리에 이른다.” (§258/7, 399)

그런데 헤겔은 국가라는 개념을 이중적인 방식으로 사용한다. 그는 넓은 의미에서의 국가와 좁은 의미에서의 국가를 구별한다. 넓은 의미에서의 국가는 가족과 시민사회를 포함하는 “현실적이고 유기체적인 한 민족의 정신”으로 이해된다. (§33/7, 88) 『세계사의 철학에 대한 강의』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Weltgeschichte)에서 헤겔은 민족이 “자체 내에서 분절화되어 있고 하나의 유기체적인 전체인 한” 그 민족을 “국가”로 명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달리 엄밀한 의미에서의 국가는 “본래의 정치적 국가와 그 헌법”으로 규정된다. (§267/7, 413) 

 

그러나 헤겔은 공적 시민과 사적 개인 사이를 양자택일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둘 사이의 결합 가능성을 모색하려고 했다. 그는 과학과 기술의 진보와 결부되어 진행되는 노동의 분업, 산업 및 상업의 발달 그리고 이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이해관계의 다양화로 특징 지워지는 근대 세계에서 고대 아테네 및 로마 공화정의 정치적 자유의 이념이 어떻게 재건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였다. 그 모색의 결과는 바로 고대적 공화주의와 근대적 자유주의의 변증법적 종합으로서의 인륜성 철학이었다.

헤겔에게 있어 근대는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사상의 자유 및 종교적 관용을 허용하면서 경제적 활동 영역이 국가로부터 독립되어 사회적으로 해방된 개인들이 각자의 목적을 스스로 선택하고 추구하는 자유를 보편적 권리로써 승인하는 국가가 형성되는 시기이다. 그리하여 헤겔은 근대에 이르러 “주관성의 원리”가 시대의 근본원리로 등장하게 되었고, 이런 점에서 다른 시대에 비해 근대는 더 고차적이라고 평가한다. 마찬가지로 근대적인 주관적 자유의 원리를 자체 내에 수용하는 근대적인 국가는 “보다 고차적인 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19, 228) 

그런데 헤겔의 국가론은 근대 자유주의적 국가관과 다르다. 국가의 시민으로 활동하는 것이 더 고차적인 자유 실현의 방식이라는 것이 헤겔 국가론의 핵심 주장이다. 헤겔이 국가의 성원이 되는 것을 각 개인의 최고의 의무로 규정하게 되는 근거이다. (§258/7, 399). 이 주장은 국가의 공적 업무에 대한 참여 없이는 국가와 일체감을 형성할 자유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헤겔의 국가론은 정치적 공동체 속에서 비로소 구성원들이 서로를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면서 자신들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고 또 그런 한에서 정치적 질서에 대한 참여야말로 자유의 최고의 형태임을 강조한다. 이처럼 헤겔은 정치적 사회에 대한 참여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정치 공동체의 공동선이 개인의 사적인 이해나 권리 주장보다 앞선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헤겔이 “정치적 자기규정(자치) - 공동체의 정치적 자기규정”을 “공동체의 공공선의 최고의 계기”로 설정하고 있기에 그를 “공화주의자”로 보는 것도 설득력이 있다.

 

시민의 덕성, 연대 그리고 정치사회

헤겔의 국가론의 공화주의적 요소 중 하나는 그의 애국심 이론이다. 그에 따르면 애국심, 정치적 심정의 근원은 인륜 공동체인 국가와 시민 사이의 일체감이다. (§268/7, 413) 그러므로 시민은 국가의 독립과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개인의 생명이나 재산을 국가를 위해 기꺼이 헌신해야 한다. (§324/7, 491) 물론 헤겔이 이해하는 애국심은 자신이 속한 국가에 대한 비합리적 열광은 아니다. 애국심은 자유로운 국가의 제도와 그것으로 가능한 개인의 평온한 일상생활의 영위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268 Z/7, 413)

헤겔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유주의적 권리 공동체 역시 시민들의 연대성을 요구한다. 그리고 정치 공동체를 통한 자유의 실현은 그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형성·발전해 온 특정한 문화를 배경으로 한다. 그것이 바로 민족(Volk)정신이다. 헤겔에게서 민족과 국가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그는 “특정한 한 민족의 헌법”은 그 “민족의 자기의식의 방식과 도야”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특정한 민족정신과 같은 것으로 이해되는 국가, 즉 “한 민족의 정신으로서 국가”는 “법률, 관습 그리고 민족 구성원의 [소속] 의식”을 포괄한다. (§274/7, 440) 

그러므로 헤겔에 따르면 문화적·역사적 정체성 형성에 토대를 둔 정치체제만이 시민들에게 국가와의 일체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애국심을 시민의 정치적 덕성으로 강조하는 것은 동료 시민들에게 더 특별한 의무가 있음을 전제한다. 헤겔에 의하면 자유로운 국가도 시민들의 공동체적 연대성, 즉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에 의존한다. 그리고 이런 공동체 의식이란 역사적인 고난과 성공을 같이 경험하면서 이루어진 운명공동체 의식처럼 그 공동체가 계속하여 번영하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간절한 마음이다. 이러한 깊숙한 사회적·문화적 소속감에서 기인하는 연대 의식이 바로 특정한 자유로운 국가의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또 다른 버팀목이라는 것이 헤겔의 생각이다. 

그리고 민족정신에 뿌리를 둔 공동체적 소속감과 정치사회의 내적 연관성에 대한 헤겔의 사회적 자유 이론은 오늘날 찰스 테일러의 “사회성 테제”(the social thesis), 즉 인간의 권리는 특정한 종류의 사회에 “소속할 의무”(an obligation to belong)를 전제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에 따르면 공유된 소속감으로서의 사회적 연대 의식이 정의의 원칙을 수용한 자유주의 사회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도 자유주의는 개인의 권리에 대한 우선성을 주장하면서 개인의 자율성을 행사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제공해주는 특정한 공동체의 의미를 간과함으로써 자유로운 사회의 가능 조건인 사회적 전제를 스스로 허물어뜨리는 역설에 빠지게 된다. 

 

Ⅵ. 헤겔 자유론의 몇 가지 한계들

군주권을 혈통에 의해 정당화하는 세습군주제 이론이나, 일부일처제의 부르주아 가족 형태를 이상적 가족 형태로 바라보는 관점, 더 나아가 가부장적 가족제도 내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복종하고 집안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여성에 어울리는 것으로 보는 관점(§§166, 167) 등도 시대착오적으로 비판받아야 할 지점이다. 

자율성이 자연으로부터의 해방을 통해서만 가능한 사회적 기획으로 이해하면서도 가족 이론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을 자연성에서 구하는 역설과 모순은 근대적 인륜 세계의 유한성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또한 헤겔은 공화주의에 대한 호의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시민 구성원이 공동으로 공적인 사안을 심의하고 결정하는 민주적인 공적 자유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론을 전개하고 있지 못하다. (§273; §308) 특히 개인과 국가의 관계에서 지나치게 국가 위주로 사유한다. 달리 말하자면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했을 경우 시민이 국가를 상대로 침해된 기본권을 구제할 제도적 장치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더 나아가 헤겔은 동물의 권리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인한다.

그러나 이런 한계 이외에도 필자가 주목하고자 하는 문제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결합하고 있는 근대의 이성적 국민국가의 한계와 관련된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연동하고 있는 근대 국민국가는 인종·젠더·민족의 차별과 배제를 동반한 것이었는데, 이런 구조적 배제가 헤겔의 자유론에도 비성찰적 방식으로 고스란히 들어 있기 때문이다. 

 

헤겔 시민사회 이론에서 식민지 문제

헤겔의 시민사회 이론은 근대 산업 사회와 식민 지배 체제 사이의 내적 연관성에 대한 모호하고 불충분한 인식을 보여준다. 헤겔은 그의 시민사회 이론에서 식민주의 및 노예무역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다. 그런데 그런 문제를 회피하고서는 근대 자본주의 시장사회의 구조적 문제나 국가 폭력의 문제를 충분하게 성찰할 수 없다. 헤겔은 노예노동 및 노예무역을 동반한 근대 자본주의 세계와 노동을 통한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상호인정이 실현되어 있다는 그의 시민사회 이론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철학적 사유의 과제로 삼고 있지 못하다.

헤겔은 자유 전개의 필연적 발전단계로 근대 부르주아 자본주의 세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그 만만치 않은 부정적 결과의 필연성을 동시에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것은 여전히 노예무역 및 노예제 그리고 식민 지배에 대한 망각 위에서 전개되고 있다. 물론 헤겔은 실업과 대량빈곤과 같은 사회 해체의 경향들을 산출하는 자본주의 시장사회의 내적 한계를 극복할 방법의 하나로 식민지를 거론한다. (§247/7, 391-392) 헤겔은 근대 부르주아 시장사회가 태생적으로 식민 지배 및 노예무역과 함께 작동하는 근대 자본주의/식민체제였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 지배 및 아프리카 흑인 노예무역 그리고 광범위하게 운영된 노예제도는 근대 유럽 자본주의 사회의 내적 모순을 외부화하는 데에만 이바지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자본주의의 탄생과 더불어 형성되었고 그 성장을 가능하게 한 강력한 동력이었다. 

식민지 및 노예무역과 함께 성장해온 근대 부르주아 시민사회의 폭력성에 대한 문제 인식의 불철저성, 간단하게 말해 헤겔 철학의 유럽중심주의의 맹목성은 근대에 대한 그의 철학적 성찰의 한계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더구나 근대 부르주아 시민사회의 식민주의 및 노예제도가 지니는 문제점을 체계적으로 은폐하거나 정당화하는 지적 작업은 20세기의 대량 학살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 

나치즘과 스탈린 전체주의로 상징되는 유럽 근대의 폭력성은 그것이 처음부터 식민 지배 및 노예제에 토대를 둔 폭력적 체제였다는 점에 대한 성찰의 부재 내지 불충분함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헤겔 철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근대 유럽 전체, 사상적으로는 근대 유럽 계몽주의의 내적 한계에 관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헤겔의 노예제에 대한 이중적 태도

식민주의의 역사에 대한 성찰은 단순히 피식민지 경험을 한 지역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다. 또한 식민지 시대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고 하지만 식민주의의 유산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한다. 따라서 식민지 시대 이후, 즉 포스트 식민지적(postcolonial) 상황에서 식민주의 유산을 극복하려는 탈식민적(decolonial) 사유는 매우 중요한 철학적 사유의 과제로 남아 있다. 

헤겔은 식민지의 해방이 식민지 모국에 대해 이롭다는 주장과 비서구 사회가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은 세계사의 발전 과정에서 필연적이며 정당하다는 주장을 동시에 한다. 마찬가지로 그는 노예제도에 대해서도 아주 양가적 태도로 일관한다. 헤겔에 의하면 노예제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인간을 그 본질인 자유로운 정신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단순한 자연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다. (§57/7, 122 이하) 그렇지만 자연은 어떤 정당성의 기초를 제공해주지 못한다. 헤겔은 노예제도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법철학의 시초를 이루는 “자유 의지의 관점”은 노예제도를 긍정하는 식의 “참되지 못한 관점”을 넘어서 있다고 강조한다. (§57 A/7, 123 이하). 

물론 헤겔은 아메리카 토착민이 유럽인에 의해 가혹하고 처참한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도 거론한다. 그러나 그는 역설적으로 그렇게 야만적인 대우를 받았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그 책임을 돌린다. 그는 1817~18년 강의에서 “어떤 민족도 결코 부당함을 겪지 않는다. 오히려 그 민족은 자신이 고통을 겪었던 것을 당연히 받을만했다.”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런 그의 입장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엔치클로페디』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속과 폭정은 민족의 역사에서 필연적인 단계이며, 그리하여 각각의 사정을 고려하여 정당화된 것이다. 노예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게 결코 절대적 부당함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를 얻기 위하여 생명을 내걸 용기를 지니지 못한 사람은 노예로 살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만일 한 민족이 [......] 한갓 상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자유를 향한 열정적 의지를 갖고 있다면, 어떤 인간적 폭력도 이 민족을 한갓 괴로움에 시달리는 피지배의 예속에 붙잡아 둘 수는 없다.”

노예제가 자연적 상태에서 자유로운 정신적 세계로의 이행기에 속하는 역사적 필연성이어서, 그런 노예제는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서 “타당하다.” (§57 Z/7, 126) 그렇다면 헤겔은 여기에서 무의식적으로나마 노예제와 식민 지배에 의존하고 있는 근대 유럽의 이른바 자유로운 정신세계의 양면성을 서술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노예제도를 한편으로는 “즉자대자적으로 부당한” 제도라고 보고 그 비인간성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노예제도가 폐지되기 위해서는 먼저 노예의 인간적 성숙이 전제되어야 함을 그가 역설하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셈이다. 그는 근대 유럽의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역사적으로 승인하면서도 식민 지배와 노예제가 마치 문명화된 근대 유럽 세계의 외부에 놓인 비서구 사회의 야만성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강변하고 그 책임을 비서구 사회에 전가한다.

 

헤겔의 아시아관과 오리엔탈리즘 

아프리카 흑인사회와 아메리카 토착민에 대한 타자화와 마찬가지로 헤겔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문명을 야만의 것으로 보았다. 헤겔이 주장하듯이 동아시아 사람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자각이라곤 전혀 지니지 않고 있는 문명, 노예적 굴종과 비굴한 감정만을 양산하는 문명, 정신의 본성인 자유로운 인간성에 대한 아무런 인식이 없는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들이 스스로 자율적 주체로 성장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12, 124) 그렇다면 아시아는 어떻게 더 나은 발전단계로 상승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당연히 유럽과 같은 발전한 문명에 의한 식민 지배를 통해서라는 것이다. 

이 명제는 문명화의 사명을 띤 선진 문명의 폭력적인 해외 팽창의 역사적 불가피성을 옹호하는 명제로 이어진다. 그래서 그는 “영국인들은 전 세계에서 문명(Zivilisation)의 전도사라는 위대한 사명을 떠맡았다.”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문명화 사명의 관철은 때로는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현상을 동반하는데 그런 불행과 희생은 역사의 목적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이해된다. “세계정신의 발전단계”를 대변한다고 여겨지는 민족의 활동 앞에 거칠 것이 없다. 그것은 제한 없는 정당성을 허용받는다. 따라서 선진 문명을 이룩한 민족의 권리 앞에 다른 민족은 아무런 “권리도 없는 것”이라고 헤겔은 단정한다. 이제 헤겔은 아프리카나 인도 등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이 유럽의 식민지로 되는 것이 “필연적 운명”이었듯이 중국과 동아시아도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헤겔 철학이 제국주의 및 식민주의를 정당화하는 이론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비판해도 그런 비판이 오랫동안 자유주의자들이 헤겔 철학을 비판한 것과 다르다는 점이 언급될 필요가 있다. 카시러는 헤겔 철학이 “무자비한 제국주의적 국가주의를 옹호”했다고 맹공을 가했다. 그러나 그가 간과하는 것은 자유주의와 제국주의 사이에도 깊은 연관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자면 존 스튜어트 밀(J. S. Mill) 정도의 대표적 자유주의 사상가가 보여주듯이 유럽의 자유주의 사상은 압도적으로 제국주의를 찬양했다. 그러므로 헤겔 철학이 제국주의를 옹호한 까닭은 그의 사상이 비자유주의적이었기에 그렇다고 한다면 그러한 주장은 오류다.

 

근대 유럽의 자본주의 세계체제 및 그와 연동해 움직이는 국민국가의 폭력성을 이성적으로 정당화하는 헤겔 철학의 한계는 아마 그의 낙관적인 정신철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헤겔은 세계사를 “도살장”(Schlachtbank)으로 비유하면서도 (12, 35), 동시에 그것을 “자유의 의식에서의 진보” 과정이라고 보았다. (12, 32) 세계사가 “도살장”이지만, 그런 살육과 무자비한 현실 속에서 아무런 동요 없이 자신을 실현하는 신적 이념인 이성의 무한한 힘에 대한 낙관적 믿음을 헤겔은 끝까지 견지했다. 그러므로 그는 세계사가 비록 무수한 어리석고 광기 어린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음에도 철학의 과제는 “신적 이념의 현실성을 인식하는 것이고 경멸받아 마땅한 현실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철학에 대한 그의 규정은 화해의 철학과 다름없다. 화해란 다름 아니라 “이성을 현재라는 십자가 속의 장미로 인식”하려는 헤겔 자신의 사변 철학이기 때문이다. (7, 27)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헤겔적인 화해 철학의 한계도 아울러 알게 된다. 그의 화해 철학은 세상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와 같은 이른바 추상적인 도덕적 당위의 물음을 던지지 말고 세계의 이성적 성격을 파악하라고 권하면서, 실상 그런 주장을 통해 헤겔 자신의 철학이 철저하게 정치적이라는 점을 숨기고 있다. 더 나아가 헤겔의 화해 철학은 이성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이성의 형이상학에서 우러나는 지나친 낙관주의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낙관주의 속에 은밀하게 스며들어 있는 도덕적 무감각과 현실적 지배 권력의 폭력성을 승인하면서 이와 공모하는 위험한 태도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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