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적인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재탄생한 고대의 민족과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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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인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재탄생한 고대의 민족과 국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5.08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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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동아시아의 민족과 국가 | 이성시 지음 | 이병호·김은진 옮김 | 삼인 | 528쪽

 

저자 이성시 교수는 고대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한국 고대사 연구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시도해온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는 정밀한 실증 연구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고대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체하며 국가 단위의 민족사를 넘어 역사학의 지평을 넓혀왔으며, 역사가 과거의 객관적 재현이라는 전통적 인식을 비판하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민족과 국가, 동아시아사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주었다.

저자는 『만들어진 고대』(2001)와 『투쟁의 장으로서의 고대사』(2019)를 통해 한·중·일 각국의 고대사가 현대의 관점, 민족과 국가의 관점에 맞춰서 ‘만들어진’ 역사라고 설파해 한국 학계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민족사는 100년 남짓한 시기 동안 만들어졌으며, 고대사는 “언제나 새로운 사상과 낡은 사상이 투쟁하는 장소”라는 것이다.

이 책은 고구려, 신라, 발해의 국가 형성과 고대 동아시아 국제관계에 대해 발표한 논문들을 3부 14장으로 구성한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대 동아시아 각 민족의 역동적인 모습과 국제관계에 대한 정교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여,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고대국가 형성기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동아시아 지역의 각 세력권은 고립된 영토에서의 변화와 갈등뿐 아니라, 국제적인 상호 관계 속에서 이동하고 결합하며 발전을 거듭해나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고대 동아시아의 민족과 국가가 천년에 걸쳐 어떻게 형성되어갔는지 비로소 전체적인 상을 그려볼 수 있으며, 동아시아라는 지역적인 관계 속에서 각 지역을 새롭게 재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가 그려내는 ‘동아시아 문화권’은 민족이나 왕조 간의 관계나 비교가 아니라 국가와 ‘민족 집단’을 교차시키며,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를 주역으로 한 역동적 행위들로 재구성되는 공간이다. 단일 영토 국가라는 근대적 관점이 아닌, 지역 권력의 상호 관계를 통해 동아시아 공간에서 민족과 국가의 형성을 논했다는 점은 고대사 연구의 새로운 시도와 전망을 제시한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 또한 내적인 요인뿐 아니라, 외적인 교류와 자극을 발전의 주요한 동력으로 파악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저자는 민족과 국가 단위의 역사 개념을 근본에서부터 재검토하고 있으며, 근대 국민국가의 관점에서 형성된 기존의 고대사 패러다임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저자는 고대국가 간의 이동과 교류를 통해 고대 동아시아문화권이 형성되는 과정을 실제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민족과 국가라는 근대적 개념의 하부를 드러내준다. 사료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밀한 분석은, 역사학자가 사료를 어떻게 대하고 이로부터 무엇을 해석하고 복원할 것인가 하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전해주고 있다.

 

이 책의 1부 ‘낙랑군 설치와 고구려의 국가 형성’에서는 고구려의 국가 형성을 중심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2부 ‘신라 국가의 역사적 전개’에서는 6세기 이후 신라의 국가 발전에 주목해 정치, 사회, 문화(종교, 사상) 등 각 분야에서 신라의 독자적인 ‘율령국가’ 체제와 그 성립 과정을 살펴본다.

3부 ‘동아시아 여러 국가 사이의 국제관계’에서는 중국 왕조들과의 국제적 긴장 속에서 고구려, 신라, 발해가 주체적인 모습으로 중국, 일본과 교류하는 모습을 살펴본다. 저자는, “동이 여러 종족은 중국 문명을 각자의 조건에 맞추어 수용하였고, 복잡하고 밀접한 교섭을 유지하는 한편 상호 영향을 미치며 독자적인 국가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면서 고대 동아시아의 외교 관계에 개입해 있는 중국과 한반도 간의 복잡한 대립과 갈등 가운데 국가의 형성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특히, 기원전 108년 한무제에 의한 낙랑군 설치로 동이의 여러 민족이 중국 문명과 접촉하게 된 것이야말로 동아시아 문화권 형성에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낙랑군 설치는, 7~8세기에 걸쳐 형성된 동아시아 고대국가에 문명화의 계기와 율령국가 체제를 갖추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이후 중국 동북지방, 한반도, 일본에서 천년에 걸쳐 형성된 고대국가 및 민족 형성의 시작으로 볼 만하다는 것이다.

이어서 저자는 특정 민족 집단이 외래문화를 수용하면서 어떻게 주변 여러 지역에 대한 정치적 통합을 이루어갔는지 꼼꼼히 살펴보는데, 이 과정에서 ‘사람’이나 ‘물건’의 이동이나 여러 민족에게 나타난 사회변화와 민족 상호 간의 영향 관계에 대하여 상세히 규명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고대 한반도를 중심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가 각각 주체적으로 펼치는 외교 관계 속에서 중국과 일본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중국의 다양한 사료들을 기반으로 동시대 중국의 왕조나 일본과의 관계 속에서 고대 동아시아사를 살펴봄으로써, 근대적 국경 개념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국제관계와 국가 형성의 과정을 고찰하고 있다. 이렇게 고대 동아시아 지역의 ‘민족 집단’의 이동과 교류, 그 역동적인 움직임 속에서 유동하는 고대 동아시아가 등장하게 되며, 그 역학 관계 속에서 동아시아라는 광역적인 지역에서 국가가 형성되어간다. 고대 ‘동아시아 문화권’은 민족사의 ‘외부’를 통해 그 방대한 공간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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