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소설과 비평”을 통해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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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소설과 비평”을 통해 기억된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4.23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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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과 형식: 소설과 비평, 반시대적 글쓰기 | 최진석 지음 | 그린비 | 448쪽

 

문학평론가 최진석의 평론집으로 최근 한국소설에 나타난 새로운 경향과 현상에 주목하여 그 의미와 가치를 조감해 보고, 미래적 전망을 타진한다. 최은영, 황정은, 이장욱, 김숨, 최진영, 이기호, 윤이형 등 현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세월호, 미투, 표절, 혐오, 예술가의 노동 같은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은 언제나 지금-여기를 뜨겁게 사유하면서 지금은 들리지 않는 미-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비평은 소설이 포착한 진실이 계속해서 사건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불쏘시개를 댄다. “소설과 비평은 서로 다른 주파수를 발신하되 동일한 운명을 공유하는 반시대적 글쓰기”의 형식들이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한국사회에 세월호는 거대한 트라우마가 되어 지금까지도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저자 최진석은 “이 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2014년 4월 16일이라는 날짜를 수형번호처럼 (무)의식에 새겨 넣고 말았다”고 이야기한다. 지난 10년 동안의 한국소설을 분석하는 이 책이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소설은, 그리고 비평은 사건을 사건으로 만든다. 

“모든 것이 변했다”라는 말에는 소설과 함께 우리 자신도 포함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변할 것인가? 소설비평을 비롯해 비평에 대한 성찰, 우리 시대의 문화예술정책에 대한 고찰 등을 담아내고 있는 이 책은 소설창작과 그에 대한 비평활동을 시대의 지배적 정서나 관행, 예술규정에 반하는 글쓰기 행위라 선언하며, 우리 시대의 문학과 문화에 대한 통찰적 독서로 우리를 안내한다.

이 책은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돌아보는 예술과 시간성의 문제로 시작한다. 지금 이 시대를 격동시키는 사회적 사건의 의미와 문제성을 발판삼아, 예술이 무엇을 듣고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지, 그 시야의 지평을 열고자 한다. 저자는 시간적 인과성의 한 요소인 ‘미래’를 넘어서, 파열적 사건성을 띄며 육박하는 ‘미-래’의 즉흥성과 힘을 직시할 것을 주문한다. 미-래의 목소리는 사실 그 자체로는 기록될 수 없다. 그것은 의미가 확정될 시간이 알려지지 않은 낯선 소음이다. 예술이 기대하고 예견해야 할 것은 바로 미-래로부터의 응답이며, 이는 재현 불가능한 목소리와 그에 대한 응답을 만들어 내는 문답의 순간을 구성하는 작업일 것이다. 

가령 최은영의 「미카엘라」는 가족이 아닌 타자들 사이에서 생성되는 동일시의 순간에 주목한다. 이는 먹고살기 위한 돈벌이나 가족의 이해관계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실 세계 ‘너머’의 사건이다. 여기서 우리는 감정에 대한 기존의 정의를 벗어나 무의식적인 신체성의 감각으로서 감응(affect)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현시대를 지배하는 다양한 장르적 규칙들, 사회적 제약들을 이탈하는 새로운 미학적 형식을 창안하는 사건의 힘이다.

감응은 타자와의 관계를 새로이 구성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감정이 감각을 특정한 이름에 결박시킴으로써 옳고 그름을 미리 정해 버린다면, 감응은 특정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변화와 이행을 나타내며 우리를 낯선 타자의 세계로 데려간다. 가족, 민족, 국민이라는 정체성 너머의 공동체를 위해서는 이러한 감응의 사유를 끌어들여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황정은, 이장욱, 최진영, 김숨에 대한 평론을 통해 문학이 한 시대의 여러 양상들을 그저 재현하는 기술적 장치가 아니라, 감응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공동체와 사회적 감수성, 미-래적 지향을 담아내는 표현적 장르임을 밝히고 있다. 

공동체가 더 이상 불가능한 시대에 어떻게 공-동적 삶을 형성할 것인가(황정은), 주체가 부정당하는 근대 이후의 시대적 지형에서 어떻게 우리는 주체로서 자신과 타자를 만날 것인가(이장욱), 지나간 것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어떤 식으로 자신의 기억을 직시하여 미-래적 삶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최진영), 피해자 의식에 갇히지 않은 채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과거(위안부 경험)를 지금-여기의 타인들과 공유하고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김숨). 이 질문들에 소설이 답하는 여러 경로들을 모색하고, 독자의 답변은 무엇인지 저자는 촉구하고 있다.

문학은 사회적 공유지대이자 공유자산이라는 명제는 우리 시대의 첫 번째 금언이다. SNS로 대변되는 글쓰기 플랫폼은 작가나 비평가의 전통적 구분이 더 이상 작용하지 않으며, 모두가 작가이자 비평가로 거듭나는 시대상황을 증언한다. 그렇다면 비평가와 그의 활동은 더 이상 무의미해진 것인가? 비평은 이제 소멸해야 할 시점인가, 혹은 다른 자기의식과 역할을 떠맡아 새로운 모험에 나서야 하는가? 4부에 실린 네 편의 글은 근대의 끝자락에서 비평이 처한 위기의식을 검토하고, 그 위기를 자기창안적 성찰과 글쓰기의 실행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출구를 찾고 있다. 비평 또한 창작과 마찬가지로 글쓰기의 아방가르드가 되어야 하며, 이는 어떤 장르에서라도 모두 공통적인 글쓰기의 운명이자 과제라 할 수 있다.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두 편의 글은 문화예술정책에 대한 저자의 인문학적 성찰이다. 글쓰기 행위를 사회적 노동에 동치시키고 일반 노동행위에 동등하게 대우하라는 작가들의 요구는 정당하다. 그러나 문학이 예술적 장르의 하나인 이상, 노동가치론이 지배적인 가치이론으로 작동하던 근대적 노동의 의미와 문학창작이 정확히 동일할 수는 없다. 공장과 회사에서 이루어지는 임노동과 작가의 글쓰기는 동일한 기준으로 동일화시킬 수 없는 상이성을 갖는 것이다. 

저자는 문학이 갖는 독특한 가치생산의 과정과 논리를 입안하여, 예술의 가치이론을 새로이 구축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사회 안의 예술’로서 존재하던 근대 예술을 사회 일반의 노동행위와 유비적인 가치생산의 활동인 ‘사회적 예술’로 재정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근대성 이후, 모든 가치창조 활동의 양상과 형태, 인정의 규칙들이 변모하고 있는 우리 시대에 예술을 바라보고 감상할 뿐만 아니라 인식하고 가치평가하는 모든 해석적 이론들도 변화해야 한다. 예술의 가치생산이론은 지금-여기에 부재하는 것이기에, 문학장에 속한 이들의 노력을 통해 구현해야 할 미-래적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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