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의 밈(Meme)…젓가락을 알면 우리의 미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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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의 밈(Meme)…젓가락을 알면 우리의 미래가 보인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4.17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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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 이야기: 너 누구니 (젓가락의 문화유전자) |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328쪽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의 최후의 역작, 마지막 혼이 새겨진 책이다. 저자 자신이 ‘백조의 곡’으로 여겼던,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이는 백조가 일생 동안 울지 않다가 죽을 때 한 번 우는 것에 빗대어, 자신의 많은 저작 중의 백미이며 혼신을 기울인 후기 대표작임을 비유한 것이다. 저자의 사후에 출간된 첫 번째 유작이기도 하다.

‘한국인 이야기’는 한국인의 문화유전자와 민족적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한국인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끝없는 생명과 문화의 순환을 조감하며, 그 시간과 공간의 너울에서 낯설고도 친근한 이야기들을 건져낸다. 그렇게 이어령의 독창적인 시각은 역사적이고 영웅적인 관점의 히스 스토리(history)를 마이 스토리(my story)로 바꿔놓는다. ‘그’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이야기인 것이다.

익숙한 의·식·주의 생활문화가 천·지·인 삼재의 심오한 사상으로 변신하는 순간, ‘한국인 이야기’는 저자는 물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살아있는 한국인의 총체극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아울러 오늘날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문화의 시원과 미래, 그에 더해 동양 문화의 정수까지 전 세계인에게 제시하는 회심의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동양사상과 아시아의 생활양식을 한국의 젓가락 문화로 함축하여, 그것으로 한국인 특유의 문화유전자를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젓가락이라는 도구 자체가 인간 문화의 소산이며 문명의 출발이다. 단지 나무를 꺾어 두 막대기를 만드는 것으로, 서양의 나이프 포크 문화, 중동과 인도의 수식 문화와 구분되는 동양의 독특하고 오랜 젓가락 문화가 생겨났다. 그리고 동양의 전통에 비추어 보아도 한국의 젓가락 문화는 독창적이다. 숟가락을 같이 쓰고, 재질을 금속으로 하는 한국의 젓가락은 우리의 국물 문화, 짝 문화와 통하며, 그것들은 조화의 정신과 포용의 자세로 이어진다. 한국인에게는 두 유전자가 있다. 하나는 생물학적 DNA고, 다른 하나는 문화적 유전자(Meme)이다. 한국인의 역사와 삶, 그리고 미래가 담긴 문화유전자를 저자는 젓가락에서 탐구한다. 작은 젓가락으로 시작된 저자의 문화유전자 이야기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생명공감이라는 미래상까지 이어진다. 

 

그는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하는 비밀들을 천년만년을 이어온 생명줄처럼 담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역사도 이론도 아니며, 우리의 생명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계승되어온 ‘문화유전자(Meme)’다. 이야기 속에 서고(書庫)에 잠들어 있는 지식보다 깊은 인간의 진실과 생명의 본질이 담겨 있음을 알기에, 저자는 스스로 21세기의 패관(稗官)을 자처한다. 저잣거리와 술청과 사랑방과 드나들며 이야기들을 기록해 온 조선시대의 패관처럼, 저자는 온갖 텍스트와 인터넷에 떠도는 집단 지성을 채록하고 재구성하여 이제까지 누구도 들려주지 못했던 ‘한국인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 책의 표지 그림은 젓가락이 지구를 들어올리는 모습이다. 비유지만, 한편으로 매우 사실적이다. 이 책에서 이어령은 작은 젓가락 한 벌로 한국을 집어 들고, 동아시아를 집어 들고, 마침내 세계를 정확히 집어 그 문명의 본질을 풀어 놓는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젓가락의 지렛대 원리 때문이 아니다. 작은 사물이지만, 그것에는 우리가 계승하고 발전시킨 상징체계의 유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문화유전자, 젓가락의 밈(Meme)이다.

‘밈’은 본디 인간의 문화유전자를 지칭하는 학술용어였다. 몸 안의 DNA에 따라 인간이 조금씩 다른 겉모습을 가지듯, 밈의 학습에 의해 사람은 문화적 개성을 지니게 된다. 저자는 말한다. 한국인이 되기 위해 한국인의 생체유전자를 갖고 있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한국인의 문화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야 한국인이 된다. 곧 ‘DNA보다 밈’이다.

저자는 젓가락 안에 숨겨진 밈이 얼마나 한국인들의 정신과 맞닿아 있는지를 풍부한 지식과 독창적인 분석으로 풀어내며, 왜 젓가락이 한국인의 과거와 미래와 맞닿아 있는지 증명한다. 작은 사물로 세상 만물을 풀어내는 데 저자가 탁월한 역량을 지녔음을 우리는 재확인한다. 반대로 말하면, 『너 누구니』는 인류 문화가 하나의 사물에 어떻게 아로새겨져 있는지를 고찰하는 작업이다. 우리에게 친숙하기 이를 데 없는 젓가락이라는 소품을 이용해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거대한 문명사적 통찰까지 한데 녹여낸 문화-기호학적 탐구라고도 하겠다. 매크로-하드에서 마이크로-소프트로의 전환을 이루는, 적소위대의 정신이 여기 있다.

물론 우리의 문화유전자가 깃들어 있는 소품은 젓가락만이 아니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문화를 이야기하는 수단이 꼭 젓가락일 필요는 없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젓가락만큼 ‘우리가 누구인가’를 설명하기에 적절한 도구도 또 없음을 동시에 발견하게 된다. 저자의 소망대로 21세기 문화강국으로 거듭난 한국. 역시 저자의 소망대로, 인류의 정신사적 전환을 젓가락의 감각으로 이루어낼 한국인의 미래를 이 책을 읽으며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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