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열풍, 새로운 현실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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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열풍, 새로운 현실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 이진 한양대학교·영상미디어학
  • 승인 2022.04.03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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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메타버스(metaverse)는 문학적 상상력에서 태동했다. 1992년, 미국의 SF 작가 닐 스티븐슨(Neal T. Stephenson)은 자신의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서 메타버스(metaverse)의 개념과 그 구체적인 형태를 최초로 제시했다. 아바타와 더불어 현실 세계에 부합하는 인터넷 기반의 3D 가상세계를 메타버스라고 명명했다. 『스노우 크래시』 속의 메타버스는 고글과 이어폰을 통해 접속하는 실감나는 가상세계다. 이후 2003년, 린든랩의 창업자 필립 로즈데일(Philip Rosedale)은 『스노우 크래시』의 메타버스에 영감을 받아 가상세계 서비스인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를 세상에 내놓았다.

<세컨드 라이프>는 MMORPG와 같은 게임형 가상세계와는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생활형 가상세계의 아이콘으로 주목받았다. <세컨드 라이프>에서 사용자는 자신의 아바타를 커스터마이징하고 다른 사용자들과 교류하며, 저작 툴을 통해 만들고 싶은 아이템을 제작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아이템을 판매해서 획득한 인 게임 머니를 현실 세계의 화폐인 달러로 환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모바일 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세컨드 라이프>를 중심으로 한 메타버스 열풍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마이클 하임(Michael Heim)은 『가상현실의 철학적 의미』에서 ‘가상세계(virtual world)’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구분한다. 가상세계가 컴퓨터로 조절된 입출력 장치를 이용하여 참가자들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가상현실은 가상세계에 참여함으로써 참여자가 실제로 다른 세계에 있다고 믿는 문제라는 것이다. 즉, 가상세계가 가상의 기술적·물리적 측면이라면, 가상현실은 가상의 경험적 측면이다. 사실상 그렇지 않으나 마치 그런 것 같은 경험이 가상의 본질이라고 마이클 하임은 본 것이다.

코로나19(COVID-19)로 인한 팬데믹은 같은 물리적 공간 안에 있지 않지만 마치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처럼 일하고, 공부하고,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가상세계 나아가 메타버스에 대한 논의를 다시금 촉발시켰다. 그렇다면 지금의 메타버스에 대한 논의는 과거의 논의에서 얼마나 나아갔는가. 대안적 플랫폼, 경제적 가치, 기술적 구현 등 메타버스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기대가 가득한 지금의 논의는 가상세계를 넘어 가상현실을 상상하고 있는가. 
 
최근 한 기업의 메타버스 서비스에 대한 자문을 하면서 담당자와 나눈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잔뜩 기대를 가지고 최근 주목받고 있는 국내 메타버스 서비스에 접속을 했다고 한다. 본인과 꽤나 비슷하게 아바타를 만들고 들어선 공간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라 한참을 서성이다 나와 버렸다는 이야기였다.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의 경험이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메타버스에서 공간, 혹은 공간을 구현하는 기술에 집중한다. 기술이 인간에게 새로운 세계의 지평을 제시하는 것은 사실이다. 새로운 세계의 편리함과 안락함이 주는 매혹은 인간을 매료시키고 기술에 매몰되게 만든다. 더 빠르고, 정확하고, 고도화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술의 수직적 발달은 곧 정체기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기술의 수직적 발달에 골몰하는 것은 눈부신 발전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듯하지만, 결국 기술 그 자체에만 머무르는 제자리걸음이다.

기술은 인간의 유의미한 경험으로 이어질 때 지속가능성을 획득한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경험과 현실을 상상하는 인간의 상상력에서 비롯된다. 새로운 현실과 세계에 대한 상상력은 기술에 방향과 구체적 형태를 제시한다. 메타버스가 허구적 상상력에서 태어난 오래된 미래였듯이 말이다. 닐 스티븐슨의 메타버스가 1990년대의 기술을 바탕으로 상상한 디지털 시대의 미래였다면, 2022년의 메타버스는 지금의 기술적 역량을 통해 상상할 수 있는 새로운 현실이자 세계다. 그렇기에 메타버스에 관한 논의는 기술을 넘어 어떠한 경험이 가능하고, 어떠한 현실을 꿈꾸는가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진 한양대학교·영상미디어학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이화여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에서 디지털미디어학석사, 융합콘텐츠학과에서 문학박사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모바일 게임 스토리텔링』(2020), 『게임사전 』(공저, 2016),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이해 』(공저, 2015)가 있다. 논문은 “메타버스 개념과 유형에 대한 시론”(2021), “게임 IP 활용에 대한 미디어 산업 종사자들의 인식 연구”(2021), “숏폼 동영상 콘텐츠의 유형 연구”(2020) 등이 있다. 웹 콘텐츠와 트랜스미디어, 메타버스를 키워드로 연구 분야를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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