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이코노미쿠스에서 호모 엠파티쿠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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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이코노미쿠스에서 호모 엠파티쿠스로
  • 엄국화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철학
  • 승인 2022.01.3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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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책, 나의 테제_ 『다산의 공감 연습: 정약용, 《논어》로 공감을 말하다』 (엄국화 지음, 국민출판사, 272쪽, 2021.11)

 

현재를 ‘혐오의 시대’라고 규정하곤 한다. 그러나 인종, 민족, 연령, 젠더 등 여러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에 대해 아직 뚜렷한 대안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특히 팬데믹 상황은 남을 생각할 수 없는 이기적인 상태로 우리를 몰아간다. 200여 년 전에 살았던 정약용(1762~1836)은 그 누구보다 ‘혐오’를 절실하게 경험했다. 천주교를 신봉했다는 이유로 셋째 형은 참수를 당했고, 둘째 형과 자신은 유배를 갔다. 종교적 관용이 허락되지 않았던 불행한 시기에 너무 앞서 나갔던 것이 죄였다. 다행히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18년이나 유배 생활을 할 줄은 몰랐다.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저술에 몰두하게 해 주었던 둘째 형 정약전마저 유배 16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정약용은 ‘공감’을 주장했다.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이지만 우리는 근본적으로 ‘공감하는 존재(homo emphaticus)’이다. 그래서 필자는 정약용 연구자로서 정약용의 글을 통해 혐오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현생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규정한 과학적 명명의 방식을 따라 인간의 사회적 특성을 나타내는 다양한 이름이 만들어졌는데, 그중 가장 많은 호응을 얻은 것은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이다. ‘경제적 인간.’ 자본주의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제는 가장 큰 절대적인 관심사이며, 따라서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가장 적확하게 드러내는 명칭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경제적인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단순히 많이 벌고, ‘플렉스’를 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대척점에 있으면서도, 인간이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한 본질을 나타내는 명칭이 ‘호모 엠파티쿠스’ 즉, ‘공감하는 인간’이다. 나 혼자 많이 버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버는 것이 행복하고, 혼자 ‘플렉스’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누리는 것이 행복한 것이다.
 
동양고전 중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은 단연 《논어(論語)》이다. 조선시대에도 압도적으로 많은 주석서가 만들어졌고, 현대에도 《논어》는 가장 많은 번역서와 해설서를 양산되었다. 그럼에도 필자가 《논어》에 관한 해설서를 다시 쓴 것은 아직까지 정약용의 《논어》는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논어》를 비롯한 사서(四書)가 ‘서(恕)’ 한 글자에 대한 해설서라고 주장했는데, 그 주장에 근거하여 《논어》를 ‘공감’이라는 주제로 다시 소개하고자 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공감(共感)이라는 한자어는 어느 동양고전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서양의 ‘심파씨(sympathy)’를 번역하며 만든 용어이다. 동양고전에서 ‘공감’에 해당하는 용어는 《맹자》에 나오는 ‘측은지심’, ‘역지사지’ 정도이다. 그런데 공자가 자공에게 ‘서’ 한 글자를 전수하며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아야 한다(己所不欲勿施於人).’라고 설명했으니 시대적으로 ‘서’가 ‘측은지심’보다 앞서게 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말에 ‘서’가 들어간 단어는 ‘용서’뿐이어서 본래 ‘서’의 의미를 곡해하게 한다. 그렇다고 정약용이 주장한대로 ‘추서’라는 용어를 그대로 쓰면 낯설어서 쉽게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서’에 대한 번역어로 ‘공감’이 가장 적절하다. 의미적으로도 그렇고 시대적으로, 사회적으로 매우 적실하다.

《논어》에 등장하는 공자의 제자 중 자공(子貢)은 우리의 현실적 모습과 이상적 모습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와 ‘호모 엠파티쿠스’를 동시에 보여준다. 자공은 공자에게 직접 ‘서’를 전수받은 제자인데, 본래 상인 집안 출신이고 그래서 누구보다 경제적 관념에 밝은 제자였다. 사마천이 지은 《사기(史記)》의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도 소개될 만큼 큰 부를 축적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공자 사후에 ‘공자학단’, 또는 ‘유가(儒家) 학파’가 형성되는 데 자공의 재력이 큰 기여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동안 자공은 높게 평가되지 않았을 뿐더러, 공자의 제자들 중 안연, 자로, 증자보다 인지도도 낮다. 그러나 정약용의 관점은 달랐다. 정약용은 공자가 가장 아꼈던 안연에 필적하는 유일한 제자가 자공이라고 보았다. 근거는 다른 것이 아닌, ‘서’를 전수받은 제자이기 때문이다.

 

강진 다산초당

그래서 《다산의 공감 연습》 3부는 그동안 《논어》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자공의 대화를 중심으로 엮었다. 《논어》는 약 500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 자공은 이 중에 40회 정도 등장하며, 공자와 대화를 하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자공의 어록을 무심하게 볼 때는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정약용이 《논어》가 ‘서’에 대한 해설서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염두에 두고 보면 자공과 공자의 대화는 ‘공감의 방법’으로 의미화할 수 있다.

또한 《논어고금주》를 보면 정약용이 별도로 ‘서’에 대한 해석이라고 명시한 문장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어려운 일을 먼저 해결하고 이득은 나중에 취한다(先難而後獲).’라는 문장이다. 그런데 ‘공감[恕]’과 ‘어려운 일’이나 ‘이득’과 무슨 관계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이것은 우리가 공감을 단순한 ‘연민’ 또는 ‘동정’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정약용이 말하는 공감은 정치 지도자들에게 요구하는 ‘정치적 공감’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정책을 펼칠 때 국민적 공감을 얻으려면 먼저 국민의 어려움에 공감해야 한다.

이는 정치 지도자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공감은 조직을 이끄는 모든 리더에게 필요한 자질이다. 한때 ‘섬김의 리더십’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바로 ‘공감의 리더십’이다. 단순히 소비자의 심리를 잘 파악하는 경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직원 또는 구성원들의 어려움에도 공감하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제 1 존재 목적이 이윤추구라고 하지만, 좋은 기업은 직원들에게 공감하는 기업이고, 좋은 리더는 직원들에게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익은 그 이후에 따라온다.

그동안 정약용은 《목민심서》의 저자로 많이 알려져, 청렴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정약용이 공직윤리에 대해 《목민심서》에서만 제시한 것도 아니고, ‘청렴’만을 그 핵심으로 주장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정약용의 저술 중에서는 《목민심서》가 가장 많이 재생산되고 있고, 정약용의 《논어》에 관한 해설서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는 그 학술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된 해설서가 한 권도 출간되지 않았다.

이지형 선생님의 노고로 《논어고금주》 번역주해서가 발간되었음에도 새로운 해설서가 나오지 않은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 번째는 《논어고금주》 자체가 《논어》 전체를 다룬 책이기 때문에 분량이 많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많은 분량에 비해서 정약용의 철학을 적절한 분량으로 추출해 내는 것에 많은 수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약용이 여러 번 《논어》를 비롯한 사서가 ‘서’ 한 글자에 관한 해설서라고 강조했지만, ‘서’ 중심으로 정약용의 《논어》 철학을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恕)’는 여러 가지 용어로 번역되었는데, 현재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단어는 ‘공감’이다. 이는 여러 연구자들이 주장한 바이며 필자도 그 의견에 동의하여, ‘서’를 과감히 ‘공감’으로 번역하고 이를 주제로 삼아 정약용의 《논어》를 풀고자 노력했다. 물론 ‘공감’이라는 용어 자체는 동서양 학계 양쪽에서 다소 논란이 있다. 그리고 철학, 정치, 상담학, 예술에서 말하는 공감은 각각 의미상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감정에 공통적인 부분이 있으며, 동시에 감정을 공유할 수도 있고, 이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기반하여 서로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사회가 되는 길에 이 책이 기여할 수 있다면 더 큰 행복은 없을 것이다.


엄국화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철학

숭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약용의 소사학(昭事學)에 대한 연구: 추서(推恕)와 회(悔)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의 공동연구원으로 우정과 시민성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다산 연구자로서 정약용의 관점으로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고 우리 현실 속에서 유의미하게 되살리는 작업을 평생의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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