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없는 기본소득, 과연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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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 없는 기본소득, 과연 가능한가?
  • 홍순만 연세대학교·정책학
  • 승인 2022.01.2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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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조세와 재정의 미래: 지속 가능한 복지를 위한 증세 방향』 (홍순만 지음, 문우사, 400쪽, 2021.11)

 

지난 2020년 대한민국의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사상 최대치인 112조를 기록한 데 이어, 국가채무는 올해 사상 처음으로 1,000조 원 벽을 넘을 예정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여야 대선후보들은 선거를 앞두고 세금 퍼주기 경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의 국가재정 상황은 이러한 공약들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할까? 국가채무는 과연 우려할 만한 수준인가? 

필자가 집필한 신간, <조세와 재정의 미래>는 일반인들이 가질 수 있는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하고자 한다. 대한민국이 향후 30년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재정적 어려움을 설명하고, 왜 증세가 불가피한지 그리고 현명한 증세 방향은 어떠한 특징을 갖는지를 설명한다. 

한국의 2020년 기준 합계출산율은 0.84에 불과하다. 출산율이 낮아지면 고령인구비율이 증가하고, 인구구조의 변화는 정부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줄 수 있다. 우선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의 재정건전성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연금 보험료를 납부하는 가입자 수는 계속 감소하는데, 연금수급자는 급격하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고령인구비율 증가는 공적연금 외에도 기초연금, 건강보험 등 여러 복지지출 증가와 연관되어 있어서 재정건전성이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 

한국의 현재 국가채무비율은 아직 선진국 평균에 비해서 현저히 낮다. 그러나 고령인구비율이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한 2020년부터는 선진국과의 격차가 매년 빠르게 좁혀지고 있고, 머지않은 미래에 국가채무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국민연금 등 일부 공적연금이 고갈될 때, 그 부족분을 정부가 지원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증세가 필요하다. 

많은 정치인들이 지출 구조조정(축소)을 통해 재정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현실성이 부족하다. 앞서 언급한 국회예산정책처 분석결과는 정부지출이 향후 매년 1.6%씩 증가한다고 가정하였는데, 사실 이 가정도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해외 선진국의 경험을 보면, 고령인구가 증가하며 새로운 복지지출이 생겨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지출 증가율을 1.6%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을 수 있다. 참고로 한국의 정부지출은 2014년부터 5년간 평균 6%씩 상승한 바 있다.

 

만약 정부가 세금을 더 많이 거둬 재정건전성을 추구해야하는 상황이라면, 바람직한 증세방향은 어떠한 모습일까? 이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는 조세와 복지를 포함하는 한국 재정의 특징에 대해서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재정은 다른 선진국 대비 소득재분배 기능이 약한 편인데, 이는 조세와 복지제도가 소득재분배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재정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약하다는 사실만을 보면, 정부가 부자증세를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한국의 조세는 이미 부자세금에 상당히 가까운 편이다. 전체 조세수입에서 상속세와 증여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고, 법인세와 소득세 세율은 매우 누진적이다. 여기서 세율이 누진적이라 함은 소득이 증가할수록 납세자가 직면하는 세율도 증가한다는 뜻이다. 

부자세금에 가까운 조세제도로는 강력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할 충분한 재정수입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참고로 OECD 회원국 중 소득세율이 가장 누진적인 나라는 멕시코이다. G7 선진국 중에서는 프랑스의 소득세율이 가장 누진적인데, 높은 세율에도 불구하고 소득세 수입은 크지 않다. 반면 관대한 복지로 유명한 북유럽 국가들은 중산층부터 최상위 소득자에게 동일한 소득세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수입을 거둬 강력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었다.

상속증여세, 부유세 등 부자세금이 부정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부자세금은 부의 대물림 해소와 사회정의 확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대부분의 부자세금은 정부재정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자증세를 통해 미래 재정적 난관을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이다. 참고로 2019년 기준 한국의 전체 조세수입 대비 상속증여세 수입은 1.59%였는데, 이 수치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정부가 대규모 재정수입을 얻고자 할 때는 소득세, 부가가치세, 사회보험료의 3가지 ‘무기’를 활용할 수 있다. 최소한 이 3가지 세목에 대해서는, 많은 수의 국민들이 조금씩 부담을 나누어 갖도록 설계해야 다가올 미래의 어려움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이 3가지 세목을 부자세금처럼 만들어 버리면, 무기가 녹스는 것과 같아 충분한 재정수입을 거둘 수 없게 되고 건전한 재정을 유지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소득세와 사회보험료의 누진성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강화되는 현재의 상황이 우려되는 이유이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의 중요성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신간 <조세와 재정의 미래>에서 복잡한 조세와 재정문제를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였다. 이 책이 대한민국의 현재 재정상황과 미래 재정적 어려움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새로운 관점에서 정부 정책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으로 기대한다. 


홍순만 연세대학교·정책학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사,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책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외교통상부 한미FTA협상단 행정사무관과 맥킨지앤컴퍼니 컨설턴트 역임. 하버드대학교 최우수 논문상(Enel Endowment Prize)과 미국 행정학회(PMRA), 경영학회(AOM) 최우수 논문상 수상. Journal of Public Administration Research and Theory의 편집위원 역임. 연세대학교 언더우드 특훈교수로 임명되었으며 행정대학원 부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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