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화(士禍)는 왜 일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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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화(士禍)는 왜 일어났을까?
  • 방상근 고려대학교·정치학
  • 승인 2022.01.16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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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 책을 말하다_ 『성종의 국가경영』 (방상근 지음, 지식산업사, 436쪽, 2021.11)

                      

이 책은 사화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다만 성종시대의 태평성세가 어떻게 가능했는가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성종의 정치리더십을 조명하고 있다. 그런데 성종의 리더십과 국가경영을 탐구하는 것은 성종 사후에 왜 사화가 일어났는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함의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화의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하나의 화두로 제기해보고자 한다. 

그런데 이 질문은 어쩌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대략적으로 그 해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해답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고려 말의 권력투쟁에서 혁명파 사대부가 정권을 장악하고 조선을 건국했다. 이때 패배한 온건파 사대부들은 지방을 근거로 세력을 키워나갔다. 이색-길재-김숙자-김종직-김굉필-조광조로 이어지는 사림파의 계보가 여기에서 등장한다. 사림파는 성종시대에 이르러 김종직의 추천으로 언관직에 등용됨으로써 중앙정계에 진출하였고, 당시 기득권층이었던 훈구파와 대립하기 시작했다. 그 대립과 갈등이 첨예해지는 가운데 연산군과 중종시대의 사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설명은 과연 신뢰할 만한 것일까? 


1. 이른바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

필자는 김종직의 추천으로 중앙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한 사림이 정치적 파벌을 형성하여 훈구파와 대립하고 있었고 그 대립이 후에 사화를 초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다. 오히려 사화라는 정치적 탄압을 받으면서 사림파가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성종시대에 가문이 좋은 고위 관료의 자손인 문과 출신이 언관에 제수되는 경향이 현저하였고, 사림의 출신배경은 훈구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기존 연구에서는 사림파의 특징과 관련하여, 향촌에 기반을 둔 중소 지주로서 유향소나 향청 등을 통해 지방 사족의 이해관계를 대변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중소 지주층인 영남 지역의 사림파가 김종직을 필두로 유향소를 다시 세우려는 운동 등을 통해 중앙의 훈구파와 대립했으며, 중앙집권에 맞서 향촌 자치를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림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김굉필, 정여창, 김일손, 이황, 이이 등은 중앙과 지방 각처에 걸쳐 많은 노비와 전답을 보유한 부호들이었다. 이 사실은 그들이 재지사족이라기보다는 부재지주의 성격을 더 강하게 띠고 있었다는 반증이 된다. 또한 영남 사림이 당시 중앙의 훈척 집안들과 빈번하게 혼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도 사림파의 정의와 잘 부합하지 않는다. 

 

2. 대간제도와 정치적 정립구도

국내 학계에서 정설처럼 되어 있던 사림파 관련 통설은 하버드대학의 와그너교수에 의해 비판받았다. 그는 사화를 계층 간의 알력이 아니라 대간(臺諫)이라는 제도 때문에 발생한 결과로 설명했다. 성종의 불교식 장례(1494)에 격렬하게 반대하다가 처벌받은 성균관 유생 24명, 기묘사화(1519)때 처형당한 8명, 현량과 출신 28명 등 대표적 사림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인물들이 대개 서울의 명문거족 출신임을 증거로 삼아, 당시 사림으로 불린 집단이 동시대의 다른 집단들과 구별될 수 있는 특징은 성리학적 정치원리와 윤리규범에 철저했던 것 외에는 없다고 지적했다. 

토지 소유에서 훈구와 사림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와그너의 견해는 설득력이 있다. 당시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의 구성원은 언제나 유동적이었고 유망한 관원들은 거의 대부분 삼사를 거쳐 대신으로 승진하였으며 관서의 인사이동이 빈번했다. 이러한 논거에 의거해서 성종시대의 정치를 정치세력 간의 대립이라는 측면보다는 국왕·대신·대간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해설한 연구도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 설명은 국왕·대신·대간의 대립구도가 성종 이전에도 존재했다는데 문제가 있다. 성종시대에 홍문관이 언관화되어 사헌부와 사간원과 함께 대간의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그 이전과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만약 대간제도 때문에 사화가 발생했다면, 그런 충돌이 왜 연산군과 중종시대에 비로소 발생했으며 그 이전에는 없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아직 이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제시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 대립구도 속에서는 행위자들이 지녔던 이념이 드러나지 않는다. 


3. 교화의 정치와 리더십

사화의 원인이 이질적인 세력 간의 대립이 아니었고 대간제도로 인해서 발생한 것도 아니라면, 성종에서 중종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존재했던 정치적 갈등의 본질적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에서 필자는 주자학 정치론의 핵심인 ‘교화’의 문제가 정치무대에 전면적으로 등장했다는 데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 이는 정치적 갈등의 초점이 권력투쟁이나 제도화의 문제를 넘어서 정치가의 내면(심성)으로 이동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자학에서는 백성을 다스리는 치인(治人)의 두 가지 방법으로 정(政)과 교(敎)를 강조한다. 전자는 법도와 금령으로 외물을 제어하는 것이고, 후자는 도덕과 제례로 마음을 가지런히 하는 것을 말한다. 주자학은 제도나 법령을 통해서 질서를 세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치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이 내면의 변화를 통해 성인이 되는 것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서 위정자가 먼저 자신을 되돌아보고 모범을 보일 것을 요구한다. 필자는 세종의 시대가 국가운영의 틀을 제도화해가는 수성의 시기였다면, 《경국대전》이 완성된 이후 펼쳐진 성종의 시대는 제도화 단계를 넘어서 교화의 시대로 이행했던 시기였다고 본다. 

그런데 이처럼 개인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 교화의 정치가 등장했다는 것은 정치의 발전이면서도 위험성을 내포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람의 내면은 알기가 어려운 것인데, 단지 심성이 바르지 못하다는 이유로 교화라는 원칙을 내세우며 처벌한다면 누구도 그러한 심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교화의 정치는 끊임없는 정치적 분쟁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내면의 선악을 문제 삼는 정치’는 교화의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어떻게 정치적 파국을 막을 수 있는가가 군주의 리더십에서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 책은 이 딜레마에 초점을 맞추어서 성종의 리더십을 진단하고 평가한다. 

성종의 재야사림 등용정책에 따라 출사했던 신진관료들은 그들에게 부여된 간쟁과 탄핵의 권한을 통하여 훈구들의 전횡과 비리를 문제 삼으며 비판했다. 그들이 사용한 ‘군자와 소인을 분별’하는 논리는 이후의 사림에게도 계승되었다. 이러한 논쟁과 비판은 연산군과 중종시대를 거치면서 사화라는 극단적인 정치 갈등과 비극을 야기하였다.

그렇다면 교화라는 동일한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었던 성종시대가 다른 어느 시대에 견주어도 정치적 안정과 태평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에서 필자는 성종이 훈구대신들을 적절히 기용하여 그 기득권을 보장해 주었고, 사림들 역시 그들의 이상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도록 언로와 신분을 보장해 주었기 때문에 사생결단으로까지 치닫는 극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즉 성종은 교화의 정치가 야기할 수 있는 위험성을 자각하고 대신과 대간의 대립을 중재하며 정치적 안정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세종시대와 구별되는 성종시대의 ‘새 정치’, 즉 교화의 정치가 새로운 세력의 등장이라는 외재적 요인이 아니라, 성종의 주도적인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오늘날 우리는 조선시대 최고의 군주로 세종을 뽑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정(政)·교(敎) 분리의 원칙을 기본으로 하는 현대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문물을 창조하고 제도화를 이루어갔던 세종의 업적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의 본질이 제도의 문제보다는 교화의 실현에 있다고 생각하는 주자학의 관점에서 보면, 세종보다 성종이 더 유교적인 성군이 아니었을까? 


방상근 고려대학교·정치학

고려대학교 일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평화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고려대 법학연구원 정당법연구센터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정치와 법치의 관계, 정치사상과 정치가, 정치가로서 군주의 리더십 관련 문제들이다. 주요 저서로는 『민의와 의론』(공저), 『제도적 통섭과 민본의 현대화』(공저), 『역사화해의 이정표 1, 2』(공저), 『청소년을 위한 정치학 대안 교과서』(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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