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과 고구려, 끊어진 연결고리 찾는다…길림성 통화시 만발발자 유적 전면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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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과 고구려, 끊어진 연결고리 찾는다…길림성 통화시 만발발자 유적 전면 분석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12.26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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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신간]
- 동북아역사재단, '中 길림성 통화시 만발발자 유적 보고서' 재해석
- 고조선과 고구려의 계승, 고구려 문화 기원 밝히는 ‘미싱링크’

■ 『고조선과 고구려의 만남: 길림성 통화 만발발자 유적』 | 강인욱·강현숙·이종수·이후석·김상민 외 2명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21. 10 | 308쪽

 

동북아역사재단은 고조선과 고구려의 계승 관계, 고구려 문화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고조선과 고구려의 만남』을 발간했다. 

 

고조선 주민의 향방과 고구려 문화의 기원을 밝혀줄 대형 유적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중국 길림성(吉林省) 통화시(通化市) 만발발자(万发拨子) 유적은 고조선과 고구려 문화가 상하 순서로 퇴적된 채 처음으로 발견된 대형유적이다. 1990년대까지 왕팔발자王八脖子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6천4백여 제곱미터가 넘는 발굴 면적 내에서 신석기시대 말부터 고구려 시기의 주거지와 무덤이 발견됐다. 

고조선의 물질문화인 세형동검, 점토대토기 등이 출토됐고 적석시설을 한 고인돌, 고구려 적석총의 이른 형태인 무기단적석묘 등이 한 유적에서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우리 학계는 고조선 멸망 후의 문화 변동, 고구려 국가 성립, 고구려 문화의 기원 등과 관련해 이 유적을 주목해 왔다. 다시 말해 우리학계는 고조선 멸망 후 주민의 향방이나 고구려 적석총의 기원문제 등을 풀 수 있는 핵심 유적으로 고조선과 고구려의 계승관계를 풀어줄 미싱링크가 될 것으로 주목해 왔다. 

유적이 발견된 것은 1956년이다. 이후 60여년이 흐른 2019년에야 발굴보고서가 나왔다. 보고서는 이 유적이 중국사적 시각에서 해석되고 중국사 중심으로 구성됐다. 이에 고조선과 고구려 전공 학자가 출토자료를 꼼꼼히 분석하고 주변 고고학 유적과 비교, 검토했다. 

만발발자 유적은 1980년대와 1990년대 몇 차례에 걸쳐 조사와 발굴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발굴정황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다. 1999년에 중국 10대 발굴로 선정됐고 2001년에는 국가중점문불보호단위(全國重點文物保護單位)로 지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굴보고서는 간행되지 않았으며 1988년에 발표된 개략적인 보고가 전부였다. 이 사이에 만발발자 유적 관련 개별적인 주제에 대한 중국학자의 연구물이 간헐적으로 발표됐다. 

 

고조선·고구려대신 한(漢)·당(唐) 강조

2016년에는 유적 바로 앞에 통화 장백산민속박물관이 개관했고, 2017년에 통화시박물관이 정식 개관했다. 2018년에는 만발발자 유적이 위치한 곳에 만발발자유적 민속공원[萬發撥子遺址民俗公園]이 조성됐다. 민속박물관은 장백산 일대의 만주족, 조선족, 몽고족 등의 문화와 풍속 관련 전시를 하고 있다. 통화시박물관은 통화지역에서 출토된 선사시대부터 청대까지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유물 가운데에 통화시 만발발자 유적과 고구려 유적 등에서 출토된 유물이 있다. 그런데 전시 설명을 보면 기자를 예맥의 시조로 묘사하고 있어 역사왜곡이 상당하다. 유적공원에는 광장, 민속 풍경 거리, 호수 등이 마련돼 있는데, 만주족 문화 일색으로 구성돼 있다.

위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중국 정부는 유적공원과 박물관 설립을 통해 중국 동북지역의 소수민족에 대한 소위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선전과 역사 대중화를 본격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만발발자 유적이 압록강 중상류 지역의 대표적인 유적이라고 선전하면서 이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고조선이나 고구려 대신 만주족을 내세우고 있다. 포스트 동북공정은 사실상 고조선과 고구려의 역사를 삭제하는 수순에 들어섰음을 시사한다. 

 

중국사적 시각에서 자료를 정리 및 선전

그동안 우리 학계는 중국 학계에 발표된 글과 언론 보도 외에는 유적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와 정황을 알 수 없었다. 개별로 답사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 때문에 국내 학계의 관련 연구에서도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9년 9월 종합 보고서가 길림성 문물고고연구소와 통화시 문물 관리실에 의해 발간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발굴 종료 후 2012년 1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동북사범대학 위징余靜이 2차로 진행된 발굴 자료를 정리했다.(보고서는 다음의 이름으로 간행됐다.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通化市文物管理辦公室, 2019, 『通化萬發撥子遺址考古發掘報告』, 科學出版社)

그러나 1956년 첫 발견 후 60여 년이 훨씬 넘었고, 발굴 후 2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발굴 당시의 기록 중 일부가 소실됐다. 유물도 일부는 부패하거나 분실됐다. 1985년에 진행된 2차 정밀 조사 및 1987년에 진행된 발굴 조사 내용에 대해서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됐다.

종합 보고서가 출판된 이후 보고서의 개략적인 내용과 이 유적의 중요성이 국내에 소개됐다. 동북아역사재단도 동향 보고서를 발간하고, 학계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여 학술회의를 갖기도 했다. 유적은 이미 중국사적 시각에서 해석됐고, 보고서의 내용도 중국사 중심으로 구성된 상황이었다. 유적과 유물을 실견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이것이 만발발자 유적에 대한 우리 학계의 종합적인 분석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동아시아의 공존과 평화를 위한 역사 읽기 필요

중국은 고조선사와 고구려사 지우기에 나선 듯하다. 최근 개정된 중국의 역사교과서에도 고구려사는 사라졌다. 대중을 상대하는 박물관은 유물 설명판에 고조선이나 부여 대신 한漢으로, 고구려 대신 수隋나 당唐으로 표기하고 있다. 

역사 지도에 국경선을 잘못 그린 것이야 시시비비를 가려 수정할 수 있다. 사실관계의 혼란은 학술적 논의를 거쳐 바로잡을 수 있다. 시간이야 걸리겠지만 충분히 해볼 만하다. 그러나 언급 자체가 안 되는 것은 어찌할 것인가? 망각시키려는 의도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

통화왕팔발자유적보도

중국은 자국사 중심으로 동아시아사를 새롭게 재편하고 있다. 중화中華를 내세운 예전의 방식이 아니다. 다민족을 내세운 통일적 다민족국가론統一的 多民族 國家論이다. 그들은 선진의 중화가 주변을 문명화했다는 예전의 중화주의적 담론을 버렸다. 

대신 다지역·다민족의 문화가 수렴되어 중화가 되고, 중화가 다시 주변으로 확산됐다는 신중화주의를 들고 나왔다. 동아시아를 대상으로 하는 이 역사서술의 틀은 다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을 집결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동아시아의 공존과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현재 일고 있는 중국의 애국주의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식에서 벌어진 중국인들의 폭력, 캐나다 토론토대 중국 유학생의 집단행동(2019년 토론토대 학생회장에 티베트인이 당선되자 중국 유학생이 집단행동에 나선 사건) 등도 맥을 같이한다.

역사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상호작용interaction한 기록이다. 문화는 이 상호작용의 총체다. 역사와 문화는 홀로 성립하지 못한다. 동아시아가 상호작용한 결과로서의 ‘역사 읽기’로 중국의 편협하고 시대착오적인 역사서술을 극복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 

집필진들은 만발발자 유적이 고조선-고구려의 상호 계승관계를 살필 수는 있으나 자료의 한계가 많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조선-고구려의 계승성이나 고구려 문화의 기원을 찾는 본격적인 연구는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다. 향후 유사한 자료가 많이 축적된다면 고조선과 고구려의 계승 관계를 보다 명확히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책을 펴낸 박선미 박사(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는 “고구려는 고조선을 계승했노라고 스스로 밝힌 문헌기록이 전해지고 있지는 않지만 여러 고고학 자료를 통해 둘의 계승성을 밝힐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단편적인 기록이지만 여러 사서에서도 둘의 계승관계를 찾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책에서 살핀 여러 고고학 자료가 고조선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가 고조선 멸망을 기점으로 하여 고구려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더불어 만발발자 유적과 같은 시기의 고고학 자료를 더 많이 우리학계의 시작으로 검토해야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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