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휴머니즘은 어떻게 우리 시대의 철학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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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휴머니즘은 어떻게 우리 시대의 철학이 되었나?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12.07 0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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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적 포스트휴머니즘: 포스트휴먼 시대를 이해하는 237개의 질문들 | 프란체스카 페란도 지음 | 이지선 옮김 | 아카넷 | 440쪽

 

포스트휴머니즘은 우리 시대의 철학이자 핵심 개념이 되었다. 저자 프란체스코 페란도는 이 책에서 포스트휴머니즘과 그 주변부의 다양한 이론적 실천적 흐름의 맥락을 꼼꼼하게 비교하면서 되짚는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고유한 입장을 트랜스휴머니즘, 안티휴머니즘, 신유물론, 객체지향 존재론 등 포스트휴머니즘이라는 포괄 용어로 지칭되는 다양한 사조들과 구별해서 “철학적 포스트휴머니즘”이라 부른다.

특히 저자는 포스트휴머니즘이 트랜스휴머니즘과 구분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트랜스휴머니즘에 따르면 포스트휴먼은 미래에 도래할 기술에 의해 향상된 인간의 상태를 일컫는다. 그것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사건이지만, 현 인류가 지향하고 결국 미래에 도달하게 될 지점이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이는 여전히 인간주의적이고 인류중심적인 이해 방식이다.

책은 포스트휴먼과 관련한 다양한 용어와 학파들의 계보, 유사점, 그리고 접점을 추적함으로써 그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를 드러낸다. 본문이 시작되기 전에 237개 질문 목록을 길잡이 도구로 소개하고 있어 포스트휴먼 담론의 입문서이자 심화용으로도 접근할 수 있다. 이 질문의 목록은 포스트휴먼 담론을 이해하는 지적 네비게이션 역할을 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는 주제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제시된다.

1. 철학적 포스트휴머니즘이란 무엇인가?
2. 포스트휴먼은 어떤 “인간”의 “포스트”인가?
3. 인간은 항상 포스트휴먼이었는가?

첫 번째 질문 “철학적 포스트휴머니즘이란 무엇인가?”는 철학적 포스트휴머니즘에 대한 역사적, 계보학적 고찰에 해당하며, 포스트휴머니즘을 다른 사상의 조류와 비교하는 내용이다. 포스트휴머니즘이라는 용어의 최초 등장에서부터 1990년대를 거쳐 그리고 핵심 텍스트인 캐서린 헤일스의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1999)의 출간에 이르기까지, 문예비평 영역에서 나온 비판적 혹은 문화적 포스트휴머니즘의 최신 문헌의 내용을 소개한다.

두 번째 질문 “포스트휴먼은 어떤 인간에 대해서 포스트(post)인가?”는 역사적으로 인간의 지위에 대한 인식에 규칙적인 기복이 있었음을 보여주며, 인간 개념에 대한 포괄적이고 “인정적인” 접근의 필요성을 묻는다. 저자는 반복적으로 비인간화되어 온 인간들(의 “범주”)은 어떻게 자신들의 인간다움(humanness)을 다루어 왔는가?,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부인된 지위를 재정립했는가? 등의 질문을 던짐으로써 모든 인간 존재가 “인간”이라는 명칭하에 동등하게 취급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세 번째 질문 “인간은 항상 포스트휴먼이었는가?”에서는 철학적 포스트휴머니즘과 관련된 두 가지 주요한 문제, 즉 탈-인류중심주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탈-이원론이란 무엇인가?를 다루며, 나아가 “비오스(bios)”의 영역, 즉 생명과 생물학, 생명윤리와 후생인류의 생명공학적 진화를 탐구한다.

저자는 동물 및 비인간 존재물들의 생명인 조에(zoe)보다 인간적인 생명인 비오스(bios) 에 특권을 부여한 인류중심적 선택은 “생명” 자체가 배타주의적 영역임을 보여주며, 궁극적으로 포스트휴머니즘은 존재의 물리학에 대한 양자적 접근을 통해 활성적인 것과 비활성적인 것 사이의 경계를 흐리면서 생물중심주의, 감각중심주의, 생기론 그리고 특히 생명의 개념 자체에 도전한다는 것을 명시한다. 그럼으로써 세 번째 질문을 보다 구체적인 존재론적 질문으로 연장시켜, 즉 양자물리학과 초끈이론을 신유물론의 구도에서, 특히 페미니스트 이론물리학자인 캐런 버라드와 그녀의 관계적 존재론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물질의 역동적이고 다원론적인 자연문화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시작한다. 이 구도 안에서 인간은 하나의 단일한 행위자가 아니라 기호적이고 물질적이면서 다차원적인 연결망의 부분으로 간주된다는 점을 드러낸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이미 포스트휴먼이다.

한편 이 책에는 스피노자, 니체, 하이데거, 푸코, 들뢰즈, 버틀러 등의 저작이 자주 인용되며 초끈이론과 다중우주 개념 등 자연과학의 논의가 적지 않게 소개된다. 이는 프란체스카 페란도의 저술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책의 서문을 쓴 브라이도티의 언급에도 보이듯이 “저자가 인문학적 소양에서 과학기술의 소양으로 능숙하게 전환하고 또 그러면서도 과학과 인문학의 이분법을 피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독서 경험”을 제공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또한 젠더, 여성주의, 퀴어, 인종, 탈식민 연구와 문화 이론, 영화, 텔레비전, 그리고 매체 이론 등을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자신의 “철학적 포스트휴머니즘”을 유연하고 경쾌하게 전개하고 있어서 포스트휴먼과 관련한 지식과 지성의 만찬을 펼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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