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지정학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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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지정학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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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다가오는 유럽의 위기와 지정학: 브렉시트, 유럽연합의 와해 그리고 독일 문제의 재부상 | 조지 프리드먼 지음 | 홍지수 옮김 | 김앤김북스 | 408쪽

 

“21세기의 노스트라다무스”라고 불리기도 하는 저자 조지 프리드먼이 지정학과 현실주의에 기초해 유럽이 앞으로 직면하게 될 분열과 위기를 분석·예측하는 책이다. 프리드먼은 묻는다. 1492년 콜럼버스가 대항해를 시작한 이래 유럽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는가? 1914년부터 1945년 사이에 대략 1억 명의 유럽인들이 전쟁, 집단학살, 의도적으로 야기된 기아 등으로 사망했다. 프리드먼은 다시 묻는다. 도대체 유럽에 어떤 결함이 있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 유럽인들은 과거의 악몽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국가들의 주권을 자발적으로 제한하기로 했고, 그렇게 유럽연합이 탄생했다. 프리드먼은 마지막으로 묻는다. 유럽은 이제 유혈의 역사를 극복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느 지역에서 갈등의 불씨가 다시 타오르게 될 것인가? 이 책은 이 3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저자는 유럽연합이 궁극적으로 와해되거나 유명무실하게 될 것으로 본다. 독일 통일 이후 독일이 내부 통합에 에너지를 쏟아 붓고,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가 나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동안 유럽연합은 잘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그 성공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유럽은 다시금 독일과 다른 여러 유럽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현실과 다시 돌아온 러시아라는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이 두 가지 현실이 만나면서 퇴치된 줄 알았던 지정학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미국이 더 이상 유럽의 안보를 떠맡지 않으려 하면서 지난 500년 동안 유럽을 갈라놓았던 지정학이 다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산맥과 강, 해협으로 갈라진 유럽은 결코 정복으로 통일될 수 없었다. 유럽인들은 끝없이 서로 경쟁하고 싸워야 했다. 그들은 그 과정에서 대항해 시대를 열었고 세계를 지배했다. 하지만 어느 유럽 국가도 유럽 전체를 지배하지는 못했고 갈등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그 갈등은 ‘31년 전쟁(1914-1945)’을 초래했고, 미국이 개입해 독일을 분단시키면서 끝났다. 하지만 1989년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1990년 독일은 44년 만에 재통일되었다.

저자에 의하면 유럽의 지정학적 불안정은 언제나 독일의 불안감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지정학적으로,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있는 경제 강국은 반드시 강력한 무장을 하게 되고, 이는 이웃나라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유럽인들은 이러한 독일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유럽에 평화가 자리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했다. 그들은 강력한 경제공동체로 유럽 국가들을 결속시켜 어느 나라도 평화를 깨거나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게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 1992년 유럽연합이 출범했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주권의 통합이 아니라 주권을 보유한 국가들의 경제적 통합일 뿐이었다. 구성원들을 결속시킬 공동 운명의 의식도, 이탈을 막을 강제력도 없는 조직은 서로의 이익이 충돌하면 분열하고 와해될 수밖에 없다. 브렉시트가 그 시작이다.

이 책의 관점에서 보면 브렉시트는 영국이 유럽연합을 이탈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원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영국은 유럽이라는 자유무역 지대가 필요한 것이지 통합된 유럽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영국은 더 이상 독일이 지배하는 유럽연합에 끌려 다닐 생각이 없어졌고, 그럴 필요도 없어졌다. 미국이 유럽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은 자신의 전통적 세력 기반인 북해 연안과 미국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자신의 지정학적 공간을 재편하게 되고, 그에 따라 유럽의 분열을 촉진하게 된다.

한편, 소련이 붕괴되면서 러시아는 극도로 취약해졌다. 러시아에겐 오직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원자재만 남아있고, 이 원자재는 최대 시장인 독일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러시아는 안보와 경제적인 이유로 벨로루시와 우크라이나 같은 완충지역을 다시 장악해야 하고,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까지 통제력을 확대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러시아는 팽창하려는 게 아니라 자국을 방어하기 위해 서쪽으로 진출하게 된다. 그 시점이 문제일 뿐이다.

러시아의 힘이 다시 서쪽을 향하면 이제 공은 독일에게 넘어간다. 독일은 러시아와 동맹을 맺을 수 있고, 경계지역에 있는 동유럽 국가들을 지원함으로써 러시아의 서진을 견제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실효성을 가지려면 독일은 실질적인 재무장을 해야 한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드러났듯이, 유럽 제1의 경제 강국인 독일은 다른 여러 유럽 국가들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있고, 그로 인해 독일은 시기와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리고 언제가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역량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독일이 재무장을 하게 된다면, 독일 문제의 재부상이라는 유럽인들이 그토록 피하고 싶은 현실이 찾아오는 것이다. 독일은 지정학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고, 피해자라는 인식마저 갖게 되면, 독일이 어떤 행동을 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독일이 러시아와 동맹을 맺든, 러시아를 무력으로 견제하든,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있는 경계지역들은 화약고가 되며, 어쩌면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경계지역들마저 화약고가 될 수도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유럽이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고, 두 차례의 대 전쟁을 통해 몰락하게 되었는지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또한 유럽인들은 과거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유럽 통합을 추진해왔으나 그것이 왜 좌절될 수밖에 없는지도 알게 된다. 그리고 유럽을 가르는 수많은 경계지역 중 어디에서 갈등의 불씨가 다시 타오르게 될지 예측하게 된다.

사실 이 책은 단순히 유럽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근대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몰락했는지, 그리고 처참한 유혈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자 하는 인간의 역사적 실험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것을 가로막는 지정학적 현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을 통해 크고 작은 나라들이 끊임없이 각축할 수밖에 없는 유럽의 지정학에서 우리는 동아시아 지정학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으며, 21세기 유럽과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안정에서 미국이 갖는 전략적 의미도 이해하게 된다. 그리하여 오늘날 유럽의 지정학을 보면서 한국의 지정학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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