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자본주의, 이제는 '감정화'로 읽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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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자본주의, 이제는 '감정화'로 읽어낸다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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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감정화하는 사회 | 오쓰카 에이지 지음 | 선정우 옮김 | 리시올 | 312쪽

 

이 책은 플랫폼 자본주의가 사회와 문화에 초래한 거대한 변화를 '감정화'라는 키워드로 분석한다. 인터넷은 자아를 표출할 공간을 만인에게 개방했으며, 끊임없이 나를 드러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을 발산하는 것이다.

요즘 평범한 누구라도 플랫폼의 ‘유저’가 되어 '나'를 표출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이른바 '플랫폼 자본주의'는 일차적으로 경제 영역의 현상이지만 이를 통해 우리의 문화와 삶, 사고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수용자 입장에서도 복잡한 사고를 요구하지 않고 즉각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를 점점 더 선호하게 된다. 이 책은 새로운 유형의 자본주의가 도래해 감정화가 전면화되고 ‘반지성의 쾌락’이 사회 전 영역을 압도하고 있는 현실을 문제 삼는다. 그리고 감정의 밖에서 현실을 바라보고 새로운 공공성을 구축하기 위한 비평 언어를 촉구한다.

사회 전체가 감정화에 잠식된 상황에서 이 책이 특히 주목하는 영역은 문학이다. 저자는 ‘감정 노동’과 ‘플랫폼’ 개념으로 감정화하는 현대 일본 사회를 조명한 후 문학에 시선을 집중한다. 우선 그는 문학을 흔히 ‘순문학’이라 불리는 문단 문학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고급 문단 문학과 상업 대중 문학의 위계적 구분을 인정하지 않으며,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활발하게 창작되는 오늘날의 라이트노벨을 문학의 중요한 일부로 평가하기도 한다. 상업적 성공을 중요시해서가 아니라 문학을 향유하는 민중의 존재를 우선시하는 민속학자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저자는 20세기 문예 비평가 에토 준의 문체론을 참조해 오늘날 문학의 문체의 상실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문체란 작가와 사회 사이의 알력이 발하는 불꽃’이다. 그런데 감정화한 사회에서는 이런 알력이 불편함이나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며, 문학 역시 그 영향을 받았다. 

문학의 감정화는 역사의 감정화와도 조응한다. 저자는 그 사례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근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분석하며 이 소설이 현재 일본을 뒤덮고 있는 역사 수정주의에 편승하는 알레고리 소설이라고 비판한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에서는 교양 소설의 구조를 차용했지만 이때의 교양·형성이 실은 ‘국민의 형성’에 불과하며 나아가 가해의 역사를 부인하고자 하는 현재 일본의 욕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다양한 면모를 한눈에 보여준다. 콘텐츠 플랫폼이 문화에 끼친 영향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일본 사회의 보수화와 천황제에 대한 비판도 서슴치 않는다.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이 문학의 창작과 수용에 가져올 미래도 과감하게 예측한다. 저자는 문체의 소멸과 기능성 문학의 범람이 낳을 가능성과 위험을 한층 증폭시킬 매개로 AI에 주목한다.

문학 자체에 관한 한 저자는 자신이 예감한 미래를 전적인 디스토피아로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본이 전쟁을 거치며 제대로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입장이다. 저자는 ‘근대와 민주주의의 재실행’ 가능성을 신자유주의, 플랫폼, 감정화가 가로막고 있다며 이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설적이게도 이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 문학이며, 그는 비평의 불가능성을 감지하면서도 비평으로 맞서는 방법을 택했다.

오쓰카는 일본 대중문화와 비평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비해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고 저평가된 인물이다. 게임, 만화 등 일본 서브컬처의 대표적 비평가로 불리는 그는 직접 소설을 쓰고 만화 편집자를 지냈다. 저자는 한국에서 만화 원작자이자 작법서 작가로 유명하지만 일본에서는 그 이상으로 정치, 문학, 서브컬처를 가로지르는 전방위 비평가로 독보적 입지를 지켜 왔다. 오타쿠가 사회적 논쟁의 대상으로 떠올랐을 때 편견과 맞서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가까스로 수명을 연장하고 있는 순문학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또 전후 민주주의의 지지자로서 헌법과 천황제에 대해서도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왔다. 무엇보다 사회의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독창적인 사유로 개입 지점을 마련해 왔다. 2000년대 이래 한동안 민속학과 이야기론에 집중했던 저자는 2016년에 출간한 이 책에서 한층 예리해진 문제 의식으로 일본 사회와 문학의 현실을 비판한다. 나아가 그가 활용한 ‘감정화’라는 비평적 틀은 우리 사회와 문학을 진단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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