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현대사의 흐름을 간결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입문서
상태바
중국현대사의 흐름을 간결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입문서
  • 이영옥 전남대·역사교육과
  • 승인 2021.11.22 07: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책을 말하다_ 『중국 현대사: 혁명국가에서 경제대국으로』 (이영옥 지음, 책과함께, 288쪽, 2021.09)

 

지난 반세기 동안 국제 사회에서 중국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고, 그것을 지켜본 한국인의 감정은 미묘하다. 중국은 죽의 장막 뒤에 가려진 폐쇄된 사회주의 국가에서 세계로 자국의 힘을 과시하는 나라로 바뀌었다. 그사이 한국인은 지난 금융위기 전까지 중국을 경시하는 태도를 갖고 있다가, 차츰 급속도로 성장하는 기세에 경계심을 갖게 되었다. 

한국인이 성장, 발전하는 중국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역사, 그중에서도 현대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책이 필요하다. 현재 중국의 정치와 외교 상황은 과거 중국이 걸어온 역사의 흔적들을 통해서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현대사의 흐름을 간결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입문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일반 독자들이 접근하기에는 지나치게 양이 많거나 학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더구나 그 책들도 대부분 미국이나 일본의 책을 번역한 것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중국사를 강의하다 보니, 중국현대사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학생들에게 번역서를 참고하라고 할 때마다 자괴감을 느꼈다. 그래서 현대사가 나의 주요한 전공 분야는 아니지만 입문서 정도라면 저술을 시도해봐야겠다고 결정하였고, 코로나19로 발이 묶인 1년의 시간을 이용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를 정리하였다. 

중국현대사의 서술 대상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부터 시진핑 시대 이전까지로 잡았다. 국내학계에서는 반세기 가까이 중국현대사를 신해혁명이나 5·4운동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이전까지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타이완으로 옮기기 전까지의 중화민국시대는 이미 현재로부터 먼 과거가 되어가고 있고, 지금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더욱 그렇게 느끼고 있다. 따라서 중국현대사의 시작을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까지 끌어내렸다.

중국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일반인들이 가끔 현재 중국을 보면서 중국공산당의 존재나 사회주의국가라는 사실을 잊거나 자본주의국가나 다름이 없다고 오해할 때가 있다.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을 움직이는 중심에는 중국공산당과 그 당을 이끄는 지도부가 있다. 일반인들이 그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원고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이 주도하는 국가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이상의 고민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중국현대사』(책과함께, 2021)는 모두 10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은 중국공산당이 중국국민당에게 승리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는 과정을 담았다. 1921년 7월 창당 이후 중국공산당은 코민테른의 도움을 받았고, 코민테른의 지시로 중국국민당에 협력함으로써 세력을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1927년 4·12쿠데타로 중국국민당과 결별하여 독자노선을 걷게 되었고, 국민정부의 탄압을 받으면서 노동운동과 혁명 활동을 지속했다. 1935년 10월, 국민정부군의 포위 공격에도 대장정을 거치며 생존했고,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국민정부를 견제하는 유일한 정당이 되었다. 1937년부터 8년 동안 일본의 침략에 맞서 국민정부에 협조하여 항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1949년 10월, 국민정부와 무력대결에서 승리했고, 마침내 중국대륙의 가장 강력한 정치집단으로 우뚝 섰다. 

2·3장은 건국초기 중국공산당이 당·국가체제를 확립하고 당의 통치를 제도화하는 방식, 냉전체제가 형성되는 과정의 위기와 기회를 살펴보았다. 중국공산당은 중국에서 새로운 왕조가 들어설 때마다 그랬듯이 그 권력을 유지하고 사용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대륙의 인민이 주인인 나라이다. 공산당은 인민을 위해, 인민을 받들고, 인민의 나라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공산당의 통치를 제도화해나갔고, 인민민주독재를 명문화하였으며 당·국가체제를 확립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냉전체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위기와 기회에 직면했다. 과거의 구舊중국과 단절을 선언한 신新중국이 등장한 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맞닥뜨린 것은 혁명과는 다른 어려움이었다. 외부의 도움이 부족한 상황에서 소련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한국전쟁은 체제의 결속과 중국공산당의 주도권을 완전하게 확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4·5·6장은 마오쩌둥 시대의 비극으로 거론되는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과정, 그리고 두 사건이 가져온 변화의 움직임을 서술했다. 1950년대 초·중반 중국공산당의 강력한 지도 아래 중국은 빠르게 안정되었고 활기 넘치는 사회가 되었다. 반대세력은 한국전쟁과 반(反)우파투쟁을 거치면서 힘을 잃었고, 마오쩌둥의 권위는 높아졌으며, 당의 권력기반은 탄탄해졌다. 이제 중국공산당과 중앙인민정부는 당원과 인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새로운 중국의 거대한 도약과 전진, 즉 대약진大躍進에 착수했다. 하지만 중앙은 성급하였고, 지방은 중앙의 눈치를 살피며 상황을 은닉하였다. 그 결과, 수천만 명이 기아에 허덕이는 파괴적인 참극을 초래하였다.

1960년대 초반, 중화인민공화국은 류사오치가 주도한 조정정책을 통해 대약진의 악몽으로부터 차츰 경제적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대내외적으로 거대한 위기에 직면한 사회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린뱌오와 사인방은 마오쩌둥의 목소리를 키웠다. 전국은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혁명동지들 사이의 갈등은 권력투쟁으로 비화되었고,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인민의 분노를 자극했으며, 분노한 인민은 거리에서 무리를 이루었다. 국제관계는 국내정치의 도구가 되었다.

 

7천인대회(1962)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의 실패가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린뱌오와 사인방은 마오쩌둥의 잘못을 비판하기보다 그를 떠받들었다. 그들은 조정정책에 매진하던 류사오치 국가 주석에게 반기를 들었고, 마오쩌둥의 뜻을 받들어 사회주의를 지켜야 한다면서 학생들을 선동하여 거리로 나가게 만들었다. 거리의 문화대혁명은 1969년에 끝났다. 하지만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마오쩌둥을 숭배하던 인간들은 혁명이 계속되기를 희망했고, 그들은 마오쩌둥의 이름을 빌어 권력을 사유화하였다. 

7·8·9장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혁명세대와 그 시대가 끝나고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여가는 과정을 담았다. 중국공산당, 중국혁명, 중화인민공화국을 자신의 분신分身과 같이 여겼던 마오쩌둥이 세상을 떠난 뒤에 인민들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 권력의 세계에서 심장의 박동이 끝난 인물에 대한 애도의 시간은 짧았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권위를 빌어 권력을 차지하려던 화궈펑을 밀어내고, 중화인민공화국의 개혁개방을 설계하였다. 

 

11기3중전회(1978)

덩샤오핑은 확고하게 권력을 장악했고, 경제발전이라는 목표가 분명했으며, 유연한 외교정책을 통해 대외관계도 원만한 상태였다. 하지만 위로부터의 경제개혁이 급속히 추진되고 경제체제가 바뀌는 과정에서 인민의 목소리는 억눌렸고, 경제의 주도권, 투자 과열, 물가상승, 분배 등의 문제가 쌓여갔다. 

 

12기 3중전회(1984)

개혁개방 10여 년 동안 쌓인 불만은 톈안먼사건으로 표출되었고, 이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에서 뼈아픈 상처로 남았다. 일부 학자들의 부정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개혁개방의 흐름은 끊기지 않았다. 덩샤오핑을 비롯한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자본주의의 ‘시장’이라는 요소를 들여와서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 확고한 의지는 부유한 삶을 열망하던 인민들과 확실한 태도를 요구하던 국제사회에도 전달되었다. 그 뒤, 중화인민공화국은 한 세대 동안 세계의 경제, 정치 무대에서 거침없이 질주했다. 

10장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인민들의 앞에 놓인 미래에 대한 간단한 전망을 담았다. 중국공산당과 중화인민공화국은 성장 위주의 시대와 다른 경제, 정치, 외교 그리고 사회·문화적인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변화된 환경 속에서 과거처럼 절대적인 권위를 통해 억압적인 방식으로 통치하는 것은 한계에 부딪힐 수도 있다. 농민과 노동자들은 경제발전을 위해 희생해왔다. 사회주의국가로서 그들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고 소득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중국공산당은 과거 중국대륙의 왕조와 국가들이 주변국에게 어떤 모습이었고,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뒤돌아보아야 한다. 중국공산당은 국제사회의 경제적 번영과 평화로운 질서를 위해 책임 있는 국가로서 행동해야 한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상황은 중국과 현대라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얽히고설키면서 만들어낸 사건들을 더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의 수립, 반우파투쟁,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개혁개방, 톈안먼사건 등이 일어났을 때 정치집단들은 어떤 의도를 품고 있었고, 일반인들은 그 사건들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아쉽게도 『중국현대사』는 그 사건들을 깊이 있게 다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지만, 여러 가능성들을 상상해보는 일은 현대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더 즐겁게 해주었다. 이 작은 책이 중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영옥 전남대·역사교육과

고려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베이징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남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로 청나라 이후 중국의 정치구조가 변하는 과정과 그 의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중국근대사』, 『견제받는 권력』이 있고, 공저로 『중국번속이론과 허상』, 『한중 외교관계와 조공 책봉』이 있다. 번역서로 『타인들 사이의 중국인』, 『근대 만주와 대한제국』, 『중국의 황태자 교육』, 『중국의 동북변강연구』, 『그들의 바다』,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