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예술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상태바
세상에 없던 예술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11.15 02: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깊이 읽기_ 『아트인문학: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 현대미술의 거장들에게서 혁신과 창조의 노하우를 배우다』 (김태진 지음, 카시오페아, 416쪽, 2021.08)

 

이 책은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을 주제로 현대미술의 거장들, 즉 세잔, 마티스, 폴록, 워홀, 뒤샹, 백남준 등 ‘자기만의 미술’로 시대의 아이콘이 된 창조자들이 ‘해체하고 붕괴시킨 질서’와 그 자리에 들어선 ‘새로운 예술’에 대하여 말한다.

2016년 1월,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WF)에서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제4차 산업혁명의 시절이 도래했다’고 선언했다. 같은 해 봄, 인공지능 알파고와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의 대국에서 알파고는 단 한 번의 대국을 제외하고 인간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대다수의 언론은 머지않아 수많은 일자리가 인공지능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으며, 인공지능으로 대신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미래에는 없어질 직업은 아닌지 되돌아보며 크고 작은 불안을 느꼈으리라. 여기에 더해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는 인류의 일상과 지금까지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어놓았다. 이런 격변의 시기 앞에서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급변하는 세태에 압도되어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들과 시대의 변화를 기민하게 포착하고 기왕의 질서를 뛰어넘어, 새로운 삶의 양식을 제시하는 사람들로. 그리고 우리는 후자를 ‘창조자’들이라고 부른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메타버스, 블록체인 기술 등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온 변화의 물결은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깊숙이 파고드는 중이다. 이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거나 압도당하지 않고, 그 파도 위에 기꺼이 올라타서 그 흐름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시대를 앞서는 과감한 기획력과 틀을 깨는 상상력이 필수다. 

이때 우리에게 꼭 필요한 능력은 독창성이 된다. 남다른 발상,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사고가 새로운 길을 열어가게 해주는 것이다. 이 지점이 바로 우리가 미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미술 중에서도 현대미술은 마치 전쟁터처럼 독창성의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진 장이다. 독창성의 사유를 배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교과서인 셈이다.

“전 세계적인 감염병 사태를 맞아 우리는 정보화 시대에 반강제적으로 내던져졌다. 원격수업과 재택근무에 이미 적응하고 있으며, 사람과 접촉하지 않는 서비스에 더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기업들은 로봇과 인공지능의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제 변화를 걱정하고 있을 때도 지났다. 마치 다른 차원이 펼쳐진 듯 세상이 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선택은 여전히 지난 세기의 방식에 머물러 있다. 미래는 알 수 없어 두렵기에 익숙한 과거로 뒷걸음질하게 되는 것이다. (…) 이런 상황에서 모두에게 꼭 필요한 역량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독창적 사고력, 즉 ‘틀 밖에서 생각하는 힘’이다. 이를 갖출 수 있다면 우리는 나다움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차별화를 지속하기 위한 강력한 무기를 가진 셈이 될 것이다. 쉽지 않은 것을 배워야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멋진 성공 사례를 많이 접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현대미술은 가장 좋은 교재임이 분명하다.”
(‘프롤로그, 언제부턴가 우리는 홈에 빠진 채 걸어왔다’ 중에서)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예리하게 파고든 이 책은 ‘현대미술에서 배우는 창조성의 비밀’을 키워드로 붙잡고 집필한 책이다. 세잔, 마티스, 폴록, 워홀, 뒤샹, 백남준 등 이미 만들어진 길을 걸어가지 않고 ‘자기만의 미술’을 선보이며, 그 자신이 결국 시대의 아이콘이 된 예술가들의 삶을 조망한 이 책 속에는 새로운 시대를 돌파해나갈 혁신과 창조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이 책의 미덕은 약 100여 년에 달하는 현대미술의 역사를 그저 시대적으로 나열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현대미술의 창조자들이 벗어던진 과거의 낡은 틀은 무엇이었는지, 이들에게 찾아온 사고의 도약은 어떤 것이었는지 독자들에게 보다 더 쉽고 일목요연하게 전달하기 위해 현대미술사의 여러 장면들 중에서도 특별히 20세기 문화예술의 지형을 혁신적으로 뒤바꿨다고 할 수 있는 25개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세밀하게 포착해낸다. 

 

저자는 그 순간들을 ‘생성점’이라고 일컬으며 ‘새로운 미술이 생겨난 순간’으로 명명한다. 그 점들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면 다섯 갈래의 선이 그려지는데, 이 다섯 갈래의 선은 곧 현대미술이 과거의 미술을 해체하고 붕괴시킨 과정이자 그 자리에 새로운 예술양식을 도입해온 경로이다. 25개의 생성점과 5개의 경로선은 고스란히 이 책의 뼈대가 되었다. 

“점을 이은 선들. 이는 현대미술을 다룬 이 책의 뼈대를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이 책은 20세기 예술가들이 벌인 놀라운 모험을 추적한다. … 새로운 미술이 생겨난 순간, 즉 '생성점'들이다. 우리는 이 순간으로 찾아가 현대미술의 창조자에 이름을 올린 예술가들을 만나볼 것이다.
… 다섯 갈래로 나뉘어 현대미술이 거쳐온 경로를 선명히 보여줄 이 선들을 나는 '경로선'이라 이름 지어보았는데, 이들을 이 책의 가이드라 불러도 좋으리라.
…이 책의 화두는 '틀 밖에서 생각하기'다. 앞으로 경로선들을 따라 모두 25개의 생성점을 찾아갈 텐데, 그곳에서 이 화두를 다시 떠올리게 될 것이다.
"어느 날 한 예술가가 깨닫는다. 그간 남들 뒤만 따라왔다는 것을. 그는 벽을 기어올라 홈에서 탈출한다. 드넓은 세상과 마주해 감격한 그는 영감에 휩싸여 과거에 없던 미술을 창조한다. 이로써 미술의 지평을 넓힌 그는 미술의 지도에서 빛나는 하나의 점이 되었다."
(‘프롤로그, 언제부턴가 우리는 홈에 빠진 채 걸어왔다’ 중에서)

이러한 경로를 따라 생성점들을 밟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현대미술의 얼개와 흐름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큰 목차에 딸린 작은 목차에는 각 장마다 5명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일화가 소개된다. 메이저에 가까운 작가들로 구성됐는데 야수주의 앙리 마티스(Henri Emile-Benoit Matisse, 1869~1954)부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iv, 1946 ~)까지, 아직 생존해있는 작가도 소개한다. 일화 다음으로 그들이 가져온 시사점과 작가의 의견을 덧붙여 현시대에 맞춘 인사이트도 담겨있다. 

1부 ‘미술, 홈에서 빠져나오다’에서는 미술이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살펴본다. 19세기까지의 미술은 원근법에 기반해 대상을 똑같이 그리고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러한 재현으로서의 미술이 파괴된 것이 이 시기였다.
 
1장은 야수주의·입체주의·오르피즘·절대주의·액션페인팅에 이르기까지 형과 색 사이의 고질적인 고민 끝에 원근감과 공간감의 굴레에서 탈피해 '환영의 재현'을 거듭하지 않고자 했던 화가들의 이야기다. 마치 무대의 한 장면을 캡쳐하듯 연출된 화면을 만들어온 이전과 달리, 이 시기에 회화는 평면의 캔버스에 물감의 물질성만이 남아 입체를 모방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평면'의 시초가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1장에서 앙리 마티스에서 잭슨 폴록에 이르는 경로선은 이전 미술을 형식적으로 파괴한 생성점들을 이은 것으로, 원근법이 해체되어 캔버스 너머의 공간이 붕괴되고 완전한 평면에 이르는 여정을 보여준다.

2장은 다리파·청기사파·초현실주의·색면회화·영국 표현주의의 내용을 통해, 평면에서 점점 형태가 해체되어가며 구상이 추상에 이르는 과정을 안내한다. 이 시기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것은 구상회화에서 추상회화로 넘어가는 변곡점이다. 잭슨폴록의 액션페인팅 이후로 캔버스 위에는 물감이 가진 고유한 물질성 외엔 어떤 것도 더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에른스트 키르히너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에 이르는 경로선은 재현이 아니라면 무엇을 그려야 하는가에 대한 모색을 보여준다. 보이는 것 너머를 추구함으로써 과거의 미술을 주제의 차원에서 파괴한 생성점들을 이은 것이다.

 

2부 ‘미술, 드넓은 세상에 펼쳐지다’에서는 고전미술에서 완전히 해방된 미술이 부단히 자신의 지평을 넓혀가는 과정을 살펴본다. 구축주의·미니멀리즘·팝아트·신사실주의·대지예술·비디오 아트로 묶이는 여기에서는 '매체'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변화하고 다양해지는 미술이 등장한다. 이때부터 현대미술은 첨예한 '새로운 것!'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4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매체가 충분히 발전하고 개발되고, 뉴미디어가 등장하기 시작하며 작가들은 비로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완전한 자유에 이르른 것이다. 

마르셀 뒤샹에서 플럭서스의 백남준에 이르는 경로선은 1부에서 탄생한 여러 성과마저도 부정하고 미술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는 시도를 통해 탈권위의 미술을 보여주며(3장), 블라디미르 타틀린에서 비디오아트의 백남준으로 이어진 경로선은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방식의 예술이 쏟아지며 탈형식으로 나아가는 과정들을(4장), 그리고 앨런 카프로에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에 이르는 마지막 경로선은 개념 및 행위가 중시되는 예술이 대두되는 장면들을 통해 결과물로서의 작품을 뛰어넘는 탈물질의 경향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5장). (‘20세기 미술 지도’ 중에서)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은 내용과 구조의 탄탄함에만 있지 않다. 저자의 흡인력 있는 스토리텔링과 더불어 본문을 구성하고 있는 140여 점의 현대미술 도판들은 책 속에서 언급한 예술가들이 창조해낸 예술 작품들을 더욱 실감나게 전달하여 감각적이고 입체적인 독서 체험을 선사한다. 또한 각 장의 끝에 별도로 3개의 꼭지들을 덧붙여서 해당 장에서 설명한 경로선의 의미를 한 번 더 정리하고(‘틀 밖에서 생각하라’), 당대의 미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20세기의 주요 사건들을 통해 역사/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했다(‘시대를 보는 한 컷’). 또한 본문에서는 다루지 못한 내용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며 미술사 전체의 흐름을 조망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이야기도 덧붙였다(‘현대미술 돋보기’).

“틀 밖에서 생각하기는 달리 말해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이다. 즉, 넓이의 확장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창조를 하기 위해서는 넓이만으로는 완전하지 않으며, 반드시 깊이 또한 갖춰야 한다. 이때 말하는 깊이란 통찰력이다. 통찰력이 발휘되려면 그 분야에 제대로 몰두해야 한다. 누구나 최고조의 몰입 상태에서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로 문제를 해결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통찰력은 그렇게 찾아온다. 한 분야를 정하고 거기에 몰두할 수 있다면 통찰은 반드시 온다. 절대 배신하는 법이 없다. 여기에 틀 밖에서 생각하기를 결합해보자. 통찰이 발휘되어 모두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멋지게 뒤집을 때의 희열을 경험해보자. 창조는 그렇게 이뤄진다. (…) 그대는 예술가다. 그리고 그대의 삶은 예술이어야 한다. 그러니 무작정 남의 뒤만 따르지 말라. 이제 그대가 가는 곳이 곧 길이다.” 
(‘에필로그, 이 세상 어디에도 본래 있었던 길은 없다’ 중에서)

미술서인 이 책은 인문서로서의 깊이를 갖고 있으며 시대변화에 적응하도록 돕는다는 측면에서 맞춤형 자기계발서라고도 할 수 있다. 과거와 싸우며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을 창조한 예술가들처럼 우리 역시 자기 인생의 기획자이자 실행자로서 일련의 프로젝트들을 과감히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과거의 예술과 싸우며 진부함과 안일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낸 선구자들의 예술적 삶을 통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기 인생의 멋진 기획자이자 퍼포머(perfomer)가 되는 방법을 배워보자. 요제프 보이스가 이야기했듯이, 우리 모두는 예술가로 태어난 존재들이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