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한국에게 보내는 편지: 한반도의 국제정치』에 대하여
상태바
『조선이 한국에게 보내는 편지: 한반도의 국제정치』에 대하여
  • 박건영 가톨릭대학교·국제정치
  • 승인 2021.11.08 06: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책을 말하다_ 『조선이 한국에게 보내는 편지: 한반도의 국제정치』 (박건영 지음, 사회평론아카데미, 638쪽, 2021.09)

 

조선은 한국에게 매일매일 편지를 보내고 있다. 현재적 미래적 맥락에서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겠지만 조선이 보내는 때로는 애달프고 때로는 기대감에 설레는 편지들의 수취인은 “우리”로 되어 있고, 그 우리에는 문재인과 박근혜와 이명박과 노무현도 포함되어 있다. 광해군, 최명길, 김상헌, 고종, 대원군, 이만손, 김옥균이 보내는 편지에는 이상주의와 실용주의, 사대주의와 재조지은과 기미책, 춘추대의와 권도, 위정과 척사, 그리고, 수구와 개화에 대한 간절하고 절박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조선이 한국에게 보내는 편지: 한반도의 국제정치』는 조선의 외교안보사가 생산한 시공간적으로 구체적인 한국적 역사의식에 터하여 현재와 미래의 한반도 국제정치를 분석/예측하고 한국 외교안보의 정책적 처방을 제시하는 글이다. 

 

저자가 이와 같은 역사과정의 맥락을 이해하고 착안/채택한 분석의 틀은 체제중심(system-centered)-주체중심(agent-centered) 시각의 역동적 결합이라 할 수 있는 ‘총체적-동태적 접근법(holistic-dynamic approach)’이다. 국제체제중심의 시각은 한국이 한국 외교와 한반도 문제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국제정치는 그 시작부터 권력담지자(權力擔持者)이자 규칙제정자인 강대국들 간의 경쟁, 타협, 협력의 장이었다. 따라서 한국의 외교적 공간은 국제체제 내에서 힘이 어떻게 배분되어 있는지, 그들 간의 전략적 관계가 어떠한지 여부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그러한 국제정치적 구도 하에서 용인되는 한국의 위상에 대한 현장감 있는 이해는 한국 외교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현실성 있는 외교를 구상하기 위한 선결조건이 된다. 요컨대 국제체제중심의 접근법은 한국이 ‘상대적 주제파악’을 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체제중심의 접근법은 한국의 ‘상대적 주제파악’을 용이하게 해줄 뿐 아니라 한국의 외교적 역지사지를 가능케 하여 강대국들의 전략적 득실구조와 그들의 전략적 셈법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한 역지사지 능력은 한국이 추구할 수 있는 최적의 외교안보노선과 정책의 확장된 범주를 발견할 수 있게 하며, 한국의 물질적 능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영역에서도 기민하고 선제적인 ‘중추적 역할(pivotal role)’을 통해 국가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

국제체제중심적 관점이 한국의 상대적 능력과 위상, 그리고, 강대국의 득실구조와 셈범을 드러내준다는 것은 한국이 의식하지 못할 수 있는 자신의 물질적 능력의 변화를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는 자신의 성찰능력에 의존하는 것이긴 하나 일상과 관성으로 인해 주관적으로 감지하기 어려운 자신의 변화를 제3자적인, 특히 실효성이 있는 강대국의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은유적으로 말하자면, 국제정치가 한국에게 팔꿈치로 쿡쿡 찌르며 한국에게 자신의 변화를 알려준다는 뜻으로서 ‘넛지(nudge)’를 하는 것이 보이는 것이다.

국제체제중심적 관점은 정책적 측면에서 세계주의적 시각의 이점과 필요성을 보여준다. 특히 한국의 이익은 국제사회의 이익과 조화를 이루며 추구되어야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세계주의는, 예를 들어, ‘한반도 문제’는 한반도의 고유한 문제가 아니며, 따라서 세계와 함께 풀어나갈 수밖에 없는 문제로 본다. 북한이 주장하는 “민족공조”에만 입각한 문제해결책은 현실이 아니다. 물론 외세의존적일 수 있는 “한미공조”도 정답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양자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한국이 주체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주체성을 확보하고, 어렵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정책을 일관성 있게 펴나간다면 양자는 한국의 국가이익이라는 점에서 수렴될 수 있는 것이다. 친북을 지적하고 친미를 비난할 필요가 없다. 한국이 주체성을 가지고 전략적 판단의 중심에 서면 한국은 당연히 친북과 친미를 동시에 할 수 있다. 한국은 한국인들의 생명과 재산과 미래를 위해 “민족공조”와 “한미공조”를 상호 친화적으로 추진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다. 한국과 북한과 미국, 그리고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은 모두 세계를 구성한다. 그리고 이 열강들은 ‘한반도 문제’의 해결 과정에 이익상관자로 참여하려는 의지를 직간접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세계주의적 관점에서 한반도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국제정치의 논리상 불가피할 뿐 아니라 한국의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국가이익의 관점에서도 타당하고 현실적인 발상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국제체제중심의 시각만으로는 ‘큰 그림(big picture)’을 그릴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이 시각은 주체가 창조하고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능력을 동태적으로 조명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국제정치체제의 넛지 효과도 의미를 가지려면 자각과 선택의 주체인 국가에게 주관적으로 인식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객관적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는 주관적 인식이 국가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뜻에서 ‘주체중심’의 관점이야말로 상대적으로 보다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설명도구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유사한 맥락에서 국제체제중심의 접근법만으로는 주체 자신의 정체성이나 규범의 변화가 외교안보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하고 충분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권위주의 시대의 한국과 민주주의가 공고화된 한국의 외교안보정책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알고 있다. 민주화된 한국의 외교안보정책주체들은 국내/국제법과 제도를 엄격히 지켜야 하며 나아가 인류공통의 규범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상식으로 간주하고 있다. 국내정치적 변동과 국제정치적 사회화가 한국의 가치관을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체 자신의 정체성이나 규범의 변화를 의식하는 외교행위는 국제체제중심이 아닌 주체중심의 시각으로만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명백한 것은 상호보완적 관계의 두 시각의 유기적 결합은 보다 상세하고 ‘큰 그림’을 보여줄 수 있다는 면에서 이른바 설명적/처방적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양자 간의 관계나 비중은 시공간을 초월한 기계적인 반분(半分)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지금은 냉전기 또는 냉전 종식 직후의 상황과 비교하여 후자의 적실성이 더 증가하였다는 점이 간과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국가적 능력의 발전, 민주주의의 공고화와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적 세대교체, 한반도의 세력균형의 변화, 북한의 국가적 취약성과 대외적인 비대칭적 위협의 동시적 증가, 중국의 부상과 그에 따른 미중경쟁구도의 심화, 미-일-한 간의 ‘샌프란시스코체제’의 탈바꿈을 추동하는 국제정치적 압력의 증가 등은 지난 수십 년 간 누적되어온 동북아 국제체제에 대한 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된 현실은, 한국의 외교안보정책결정자들, 국제학도들, 시민들에게 한국이 운전석에 앉아 자신의 운명을 주도적으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주체중심 시각의 의미를 부각시켜준다 하겠다.

저자의 분석 틀은 체제중심-주체중심 시각의 교직(交織)이면서도 동시에 체제와 주체 간의 상호작용 및 그것들의 변동을 주시하는 동태적 접근법이기도 하다. 이러한 동태적 접근법은, 은유를 동원하여 설명하자면, 올림픽 사격 종목의 하나인 클레이와 관련이 있다. 영국의 헌팅필드 경(Lord Huntingfield)은 1856년 새장에 푸른 비둘기를 넣고 조수가 먼 곳에서 끈을 당기어 문을 열어 비둘기를 날리면 이를 사격하는 경기를 고안하였다. 사람들은 이를 푸른비둘기사격(블루피전슈팅)이라고 불렀는데 후일 흙(클레이)으로 만든 피전을 사용하였다. 클레이는 1900년 제 2회 파리올림픽대회부터 사격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저자는 한국외교의 대상들이 모두 클레이피전과 같이 ‘움직이는 목표물(moving target)’이라고 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한국의 내공 있는 전략가들은 특히 냉전 이후 세계와 동북아 차원의 국제정치가 급변하고 있다며 움직이는 전략적 목표물의 예상되는 이동방향을 사전에 파악할 것을 주문해왔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과거와는 달리 한국 자신도 쉬지 않고 ‘변동하는 행위주체(moving actor)’라는 점을 자각하는 일일 것이다. 다시 은유적으로 표현하자면, 한국은 움직이는 발사대 위에 서서 움직이는 클레이피전을 맞춰야 하는 사격수라 할 수 있다. 그만큼 한국의 외교는 예견력과 치밀함과 순발력을 요구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되었다. 분석가들과 정책결정자들은 정태적이고 관성적인 전통적 시각에서 벗어나 이러한 ‘이중-동시적(double and simultaneous)’인 동태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새롭고 변화하는 현실에 기초한 국제정치적 역학관계의 역동성을 간파하고 “적극적 조정(positive adjustment)” 즉 선제적으로 해법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이 한국에게 보내는 편지: 한반도의 국제정치』의 목적은 한반도의 국제정치에 대한 분석과 이해뿐 아니라 그에 터한 한국의 국가외교안보전략이라는 처방을 제시하는 데에도 있다. 저자는 이를 총괄적으로 지도하는 개념적 틀로서 ‘전략적-실용주의(strategic-pragmatism)’를 내놓았다. 실용주의는 “실질적 결과적 이익”을 강조하는 가치관이다. 국가간 관계에서 특정 국가가 실용주의적인가의 여부는 그 국가가 타 국가와의 상호작용에서 자신의 실질적 국가이익을 결과적으로 증가시키려 했는가에 달려있다. 한스 모겐소(Hans Morgenthau)는 명저 『국제정치(Politics among Nations)』에서 외교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외교 주체가 “십자군적 정신(crusading spirit)”을 탈피해야 하고, 현실과 유리되어서는 안 되며, 외교안보정책의 목표를 “실질적 이익의 내용”의 관점에서 정의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나아가 방법론적 차원에서 실용주의는 사활적 국익을 위해서는 ‘변통(變通)’과 ‘권도(權道)’가 사용될 수 있다고 제시한다. 변통이란 현실 여건에 맞게 우회하고 응용하는 방법이고, 권도는 상황에 맞는 행위 즉 적시성(適時性)이 있는 행동을 뜻한다. 예를 들어, 맹자는 "남녀가 물건을 주고받을 때 직접 손을 맞대지 않는 것이 예의이고,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손을 잡아 건져주는 것은 권도이다"라고 했는데, 이처럼 권도란 단순한 편법이 아닌 예외적이고 특수한 상황에서 정당성을 갖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병자호란 시 최명길은 김상헌이나 윤집과는 달리 명분과 의리를 지키려다 왕과 백성이 도륙을 당하고 국토가 피폐해지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나라를 지켜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명길이 동생 최혜길(崔惠吉)에게 보낸 편지에 이러한 뜻이 담겨 있었다:

신종(神宗)이 임진왜란 때 끼친 유택(遺澤)을 비록 잊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또한 태조께서 창업하신 신령스러운 이 터전 역시 차마 망하게 할 수는 없는 것, 이것이 큰 의리이다. 그리고 해동 사람이라면 이미 동국의 신민인즉 우리 임금을 위해 우리나라를 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명나라를 위해 우리 임금에게 권해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이와 같은 실용주의 외교안보책이 성공하려면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수적이다. 모겐소에 따르면,

외교는 정치적 상황을 타국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자기본위(self-partiality, 自己本位)의 극단처럼, 그리고 타국이 자연스럽게 희망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에 대한 고려의 결핍처럼 국가에게 치명적인 해는 없다.

모겐소는 정치력과 영향력을 최대화하는 길은 일방적 힘의 사용이 아니라 자국 목표의 자제/제한에 있다고 주장했고, 타협을 가능케 하는 역지사지의 원리를 강조했으며, 권력투쟁이 이익추구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절대진리를 위한 선악의 투쟁이라고 생각하는 십자군적 정신의 위험성을 엄중히 경계했던 것이다.

저자는 실용주의는 그 자체로서 의미와 결과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며, 그러한 접근의 궁극적 성공 여부는 보편적 가치의 실현과 유리되어 판단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저자의 원칙은, “가치중립적,” “무차별적” 실용주의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전략적-실용주의’는 민주적 원칙과 인본주의적 가치를 모든 외교안보정책이나 공공정책의 기본이자 시발점으로 간주한다. 다만 저자는 축적된 실용주의적 성과들이 “서로 협력하여,”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관점에서 민주주의 자유 인권 등의 실현과 촉진에 기여한다는 면에서 원칙과 가치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저자의 접근은 이슈들에 대한 우선순위 부여, 그리고 현재 가능한 것과 미래에만 가능한 것을 구분할 수 있는 판단력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접근은, 다시 말해, 현재에는 해결불가하게 보이는 문제들이 작은 실용주의적 성과들이 집적/축적 되었을 때 미래에는 훨씬 용이하게 해결될 수 있다는 지혜를 강조한다. 요컨대, 저자의 접근은 실용주의적 성과들의 체계적 축적이 결국 상위적 가치를 실현한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차원에서 실용주의적이면서 동시에 “전략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전략적-실용주의’의 잠재적 힘을 보여준 주요 역사적 사례는 ‘북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미국 클린턴 정부의 ‘페리 프로세스(Perry process)’이다. 페리는 그의 저서 ‘예방적 방위전략(Preventive Defense)’에서 “우리는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프로그램의 지속이 김대중 대통령의 화해협력정책이 작동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빼앗아가 버릴지 모른다는 클린턴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 그리고 많은 의원들의 생각에 동의했다”고 말한 바와 같이, 당시 남한의 대북화해협력정책을 회의적 비판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발로 뛰고 고민하면서 작성한 보고서는 현장감 있고 균형 잡힌 그리고 집행 가능한 대안을 담았다. 그가 작성한 ‘대북정책재평가(Review of United States Policy Toward North Korea: Findings and Recommendations)’의 핵심은 “북한이 오랫동안 고립주의를 유지한 것이 지역적 불안정의 원인”이고, “상호위협감소(mutual threat reduction) 개념에 기초하여, 있는 그대로의(as it is) 북한과 협상에 임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한편, 북한이 협력하지 않는 경우 “협상을 통해 제거할 수 없는 위협을 봉쇄해야 하지만, 미국과 동맹국들은 북미기본합의(핵문제와 북미관계정상화 동시 해결)를 유지하고 가능한 한 직접적 충돌을 피하면서도 단호하고 절제된 조치를 취함으로써 북한이 첫 번째 접근방식에 동의하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역지사지의 실용주의적 ‘페리 프로세스’가 성과를 내고 김대중과 김정일의 공감대가 확대되면서 남북정상은 2000년 6월 13일 미국의 지지 아래 첫 만남을 가졌고, 이윽고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을 채택하였다.

저자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접근도 전략적으로 실용적이어야 생산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주지하듯, 북한의 인권 유린은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북한 정권의 이러한 악행을 규탄/제재하고 있다. 이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관점에서 보면 정당하고 당연한 행동이다. 그러나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보면 북한 인민들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역지사지를 해보면 지속적인 대북경제제재는 북한의 국내정치적 현실을 고려할 때 상책이 아니다. 그것은 인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뿐 아니라, 인민을 위해 “제국주의적 핍박”에 “영웅적으로 투쟁하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인민이 일치단결하자(Rally 'round the flag effect)”는 프로파겐다를 정당화하여 오히려 인권탄압 주체의 국내정치적 목적을 달성케 해주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게 된다. 변통과 권도, 그리고 모겐소가 제시하는 의도적인 “우회와 지그재그 항행(roundabout and zigzag)”이 활용될 수 있다.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는 한 이러한 분별력(prudence)은 위선이나 공론이 아닌 생산적이고 현실적이면서도 가치지향적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는 십자군적 무모함은 근시안적 하책이거나,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하는 고도의 정치행위, 또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보타주(sabotage)로 의심/비판받을 수 있다. 저자의 ‘전략적-실용주의’는 실용주의적 성과들의 누적이 보편적 가치의 실현으로 이어진다는 이른바 ‘양-질의 변증법(the quantity‒quality dialectic)’의 의미와 그것이 가지는 발상 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모든 정책이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Can it solve the problem?)의 문제로 귀결된다. 저자에 따르면 조선이 한국에게 보내는 편지들에는 외교안보정책이 실용적이면서 동시에 전략적일 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전략적-실용주의에 대한 성찰과 그 합리성에 대한 자각을 담고 있다.


박건영 가톨릭대학교·국제정치

가톨릭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University of Colorado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Texas A&M University에서 가르쳤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 코리아펠로우를 역임했으며, UNESCO-한국위원회의 제1회 ‘Korea Journal 상’과 한국국제정치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국제관계사: 사라예보에서 몰타까지』(사회평론아카데미, 2020), 『국제정치이론』(공저, 사회평론아카데미, 2021), 『외교정책결정의 이해』(사회평론아카데미, 2021), 『조선이 한국에게 보내는 편지: 한반도의 국제정치』(사회평론아카데미, 2021) 등 다수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