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문명 시대, 하늘 숭배 사상의 보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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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문명 시대, 하늘 숭배 사상의 보편성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11.01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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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의 나라 신화의 나라: 단군, 혁거세, 주몽 등 고대 국가 시조들은 왜 하늘의 아들일까 | 이기봉 지음 | 덕주 | 248쪽

 

신화 하면 흔히들 그리스 신화를 떠올린다. 제우스, 헤라, 아테나, 아폴론 등 올림포스의 신들을 비롯해 헤라클레스,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등 영웅들의 흥미진진한 모험담은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이야기의 재미에 푹 빠져들게 만든다. 이에 반해 전 세계 건국 신화들은 단순하고 재미가 떨어진다. 왜 그럴까?

이 책의 저자는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의 등장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그리스는 ‘폴리스’라는 수많은 도시 국가 형태로 존재했으며, 알렉산더가 통일하기 전까지 통일 국가가 등장한 적이 없었기에 그리스 신화는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반면 중앙집권 국가는 자국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오직 하나의 신화만을 남겨놓은 채 흡수당한 다른 국가의 신화를 역사의 심연 속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한반도의 역사에 등장하는 여러 국가 역시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였으므로 자신들의 나라가 하늘의 나라이며, 그들의 시조가 하늘의 자손이라는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여러 개의 건국 신화를 남겼다.

단군, 혁거세, 주몽 등 고대 국가 시조들은 왜 하늘의 아들일까? 신라 육두품의 시조도 하늘의 아들이라고? 환웅은 왜 곰과 호랑이를 경쟁하게 만들었을까? 우리는 그 어떤 시조도 사람 아버지와 사람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의 아들일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 책은 신화가 어떻게 사람의 아들을 하늘의 아들로 둔갑시키고, 사람의 나라가 아닌 하늘의 나라임을 보여주는지 우리 문명의 고대 신화 속으로 들어가 재미있게 그 해답을 풀어낸다.

 

2021년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우리나라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바꿨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의 지위가 변경된 나라는 우리나라가 처음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는 말은 잘살아보겠다며 그동안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선진국을 따라잡고자 똘똘 뭉치는 데 ‘우리 민족은 단군의 자손이다’와 같은 선민사상(選民思想)의 집단 이념이 한몫했다. 하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사상은 근대 이전 전통 문명 시대에서는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건국 시조와 그의 혈통을 이어받은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정통성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하늘의 나라’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족이 단합하는 구심체 역할을 한 고조선의 단군신화를 비롯해 고구려, 부여, 백제, 신라, 금관가야 등도 제각기 하늘의 아들이 통치한 하늘의 나라임을 보여주는 건국 신화를 남겼다. 심지어 신라는 건국 시조인 혁거세뿐만 아니라 석씨의 시조인 탈해와 김씨의 시조인 알지, 건국의 모태가 되었던 육두품 시조 등 무려 네 개의 신화가 전해진다.

이 책의 저자는 지리학 전공자로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연구한 여러 고대 국가의 건국 신화를 마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재미있게 풀어냈다. 1장에서는 하늘 숭배 사상의 보편성을 이야기한다. 2장에서 5장은 신라의 시조 혁거세의 건국신화를 비롯해, 탈해, 알지, 육두품의 시조에 대해 말한다. 6장은 금관가야, 7장은 고구려, 8장은 백제, 9장은 부여, 10장은 고조선의 건국신화를 담고 있다.

왜 다른 나라와 달리 신라에는 하늘의 아들이 여러 명일까? 그리고 건국 신화 하면 으레 고조선의 단군신화를 떠올리는데 왜 제일 먼저 언급하지 않고 맨 마지막에 등장시켰을까? 또한 저자는 한민족의 시조로 받드는 단군 신화를 고대 국가들의 여러 신화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호랑이와 곰을 경쟁시켜 하늘의 선택을 받은 웅녀가 환웅과 결혼해 단군을 낳았다며 건국 신화에 복잡한 경쟁 구도를 집어넣어 고조선의 탄탄한 정통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경쟁 구도는 고조선의 건국 신화만이 갖고 있는 독특함이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한반도 고대 국가의 건국 신화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해줌으로써 역사적 안목을 넓혀주고 풍부한 역사적 상상력을 펼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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