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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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교사
  •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
  • 승인 2021.10.24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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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칼럼]_ 대학직설

말 같지 않은 말을 들었을 때에는 귀를 씻었다는 옛사람도 있지만, 이번에는 귀라도 씻어야겠다.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로 나선 분의 “군사 쿠데타와 5.18 뺀 전두환” 발언 때문이다. 이분은 일찍부터 “부정식품을 선택할 자유”, “주 120시간 노동”, “페미니즘이 남녀 간 건전한 교제를 막는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 군 사기 위축”,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한다.” 등의 사실과 어긋나는 경박한 언사로, 저열한 표현은 저열한 사고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온 분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 뺀 전두환”은 (‘5.18’이라는 용어부터 전두환 일당이 광주의 민주화 의지를 폄훼하고 군대를 동원한 시민학살과 헌법 질서 파괴를 호도하기 위해 사용한 反역사적인 것이다) 이를테면 ‘동그란 네모’와 같이 그 자체로 성립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말이다. ‘공공적인’ 장소에서 이런 말 같지 않은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무지와 용기에 경악하게 된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이런 식의 언사로 “검사 시절에는 재판부와 조직 수뇌부, 같은 팀원 이런 분들을 설득했다”는 이분의 자랑 같은 변명이다. 그렇다면 법원과 검찰이 이런 말 같지 않은 말에 동의하고 공유했다는 것 아닌가. 어쩌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등의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법원과 검찰 일부의 판단과 처분도 그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분의 해괴한 말 중에 “인문학이라는 건 대학 4년과 대학원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훈계도 있다. 아마도 이분이 사법시험을 9번 치른 경험에서 터득한 요령일 것이다. 이분은 대학 1, 2학년 때에는 ‘교양’을 공부하도록 제도적으로 강제되기 때문에 그것의 일부로 ‘인문학’도 공부했을 것이지만, 교양 ‘수업’ 이후에는 사법시험에 매진하면서 ‘인문학이라는 건’ 공부할 필요와 이유가 없었을 것이고, 합격 이후에는 더욱더 그러했을 것이다. 

이분이 가리키는 인문학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필요 없는 공부’를 40년 이상 해온 나는 ‘인문학이란 건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어울려 살아왔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는 공부’라고 알고 있다. 그 공부 중에는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반성적이라거나 성찰적이라고 부르는 활동도 들어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세상을 살아가며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를 되돌아보는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 인문학 공부를 몸으로 실행하는 셈이다. 또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변하고 그들이 어울려 사는 방식이 변하고 세상이 변하기 때문에, 인문학이란 건 평생에 걸쳐 공부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고 게을리하는 사람도 있어서 배우고 익힌 지식의 내용과 깊이에는 차이가 있게 된다. 그래서 인문학 공부를 게을리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가 되고 ‘수구xx’이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분 자신이 ‘인문학 공부를 게을리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라고 해야 한다. 이분은 ‘고등고시’(!)에 합격한 순간부터 ‘영감님’이 되어, 누구에게나 거만하고 위압적인 언사와 태도로 군림하며 사는 것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또 인문학적 소양에서 대학 1, 2학년 수준에도 못 미치는 천박함을 자랑하더라도, ‘갑’의 위치에 있는 이분에게 ‘지적질’하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니, 불편함이나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어떻게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지,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반성’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고 ‘인문학이란 건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체득했을 것이다. 그런 탓에 ‘유신 시대’나 ‘5공 시대’의 특권 세력이 구사하던 언사로 사람을 평가하고 세상을 재단하면서 법원과 검찰을 설득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몸에 밴 무지와 용기로 공중 앞에 나서서 사람과 사회와 역사에 대한 저급한 인식을 얼굴 두껍게 보여주면서 역설적으로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인문학이란 건 죽을 때까지 공부할 필요가 있다’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강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강원대 교수회 회장, 한국사회학회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주 연구 주제는 사회과학철학, 사회과학방법론, 그리고 사회이론이다. 저서로 『사회과학의 철학적 기초: 비판적 실재론의 접근』, 역서로 『숫자를 믿는다: 과학과 공공적 삶에서 객관성의 추구』, 『맑스의 방법론』, 『경제,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과학으로서의 사회이론』, 『새로운 사회과학철학』, 『지구환경과 사회이론』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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