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의 『사회계약론』 - 일반의지를 중심으로
상태바
루소의 『사회계약론』 - 일반의지를 중심으로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10.11 13: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교양서20 제 6강〉_ 김용민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의 「루소 〈사회계약론〉」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여덟 번째 시리즈 ‘교양서20’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파트너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교양서는 사회의 기본이 되는 인간 교육, 즉 교양 교육이나 인성 함양에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도서다. 교양의 내용은 자기 수양의 지혜를 넘어 그리고 동양이나 서양의 문화적 전통을 넘어, 인간과 세계와 자연과 우주에 관계되는 넓은 독서를 포함한다. 전체 20회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자기 수련과 타자에 대한 공감과 사회적 필요와 삶의 배경이 되는 자연과 우주의 구성을 느낄 수 있고 알게 하는 기초적인 교양 도서 20권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마주한 삶의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주제 1. 서양사상 제 6강 김용민 명예교수(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루소의 『사회계약론』 - 일반의지를 중심으로


김용민 교수는 우리 민주주의의 위기를 “법치주의의 퇴조와 시민의 주권의식의 약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헌법 정신이 근거하고 있는 루소의 정치사상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같은 루소 정치사상을 이해하는 텍스트로는 『사회계약론』을 꼽은 다음, 핵심적 개념이라 할 “일반 의지를 중심으로” 그것을 심도 있게 검토한다. 이때 ‘일반의지(general will)’란 “어떻게 정당한 통치 법칙을 만들고, 또한 어떻게 정당한 사슬을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것인데 특별히 루소가 “주권자들의 동의에 의해서 산출되는 것”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일반의지에 부여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루소의 일반의지가 시대 한정적이지 않고 “여전히 현대에도 유효한 개념임”을 보여준다고 강조하면서 “자신의 이론이 루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밝힌 존 롤스만 하더라도 그의 ‘정의의 두 원칙’이 “넓게 보면 각각 자유의 원칙과 평등의 원칙으로, 이는 다름 아닌 루소의 일반의지가 추구하는 원칙”이라 할 수 있는 만큼 그에 따른 정치적 교훈을 오늘 다시 새겨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지난 8월 28일, 김용민 명예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교양서20>의 6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서론

루소의 정치 이론에 있어서 그 핵심 개념은 인민주권(people’s sovereignty)과 일반의지(general will)이다. 인민주권은 모든 시민이 주권을 가지고 있으며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선언하고 있고, 일반의지는 공통 이익을 추구하는 시민 전체의 의지에 따라 법을 만들고, 법에 따라 통치가 이루어질 것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인민주권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천명하고 있고, 일반의지는 법치주의의 원리를 천명하고 있다. 루소는 법치주의에 따라 통치가 이루어지는 국가를 공화국(Republic)이라고 부르는데, 이 공화국은 당연히 인민주권을 전제로 하고 있다. 루소에 있어서 공화국은 왕정(또는 군주정)에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그러므로 군주공화국도 가능하다. 루소에 따르면 민주공화국은 공화주의(법치주의) 하에서 다수의 시민이 법의 집행을 담당하는 민주정의 결합으로 규정된다.

 

2. 『사회계약론』의 탄생

루소의 생존 시기(1712-1778)는 루이 15세의 통치 시기(1715-1774)와 거의 일치한다. 루소는 프랑스 정치 현실에 관해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불평등이 심화된 현실과 시민이 노예로 전락한 전제 국가를 비판하고 있고, 『에밀』에서는 조국을 사랑하는 시민 대신에 조국이 없이 부만을 추구하는 부르주아지가 팽창하는 현실을 경고하고 있으며, 『사회계약론』에서는 유럽에서 혁명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고 경종을 울리고 있다. 루소의 예언은 적중해서 1789년에 프랑스에서 혁명이 발생해서, 불평등과 예속으로 점철된 프랑스 절대왕정이 공화주의 국가로 대전환을 이루게 된다. 당시 프랑스와 유럽이 처한 정치적이고 역사적 환경이 루소로 하여금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억압된 제3신분(평민)에게 자유와 평등을 찾게 해주겠다는 목표를 갖게 했고, 이는 『사회계약론』의 저술 동기가 되었다.

『사회계약론』은 한편으로는 고도의 추상성과 엄밀성을 지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제도론』의 내용이 압축된 발췌본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압축성과 함께 모호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서 『사회계약론』에 대한 상당히 다양하고 모순적인 해석들이 존재한다. 루소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자라는 평판에서 극단적인 전체주의자라는 평판까지 듣고 있으며, 때로는 보수주의자로, 때로는 급진주의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프랑스 혁명 당시 루소는 급진파에서 온건파에 이르기까지 혁명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이론가로 언급되었으며, 20세기에 들어서서는 자유주의, 사회주의, 전체주의, 민족주의, 공동체주의, 공화주의 등등 서로 양립되기 어려운 다양하고도 이질적인 정치 이념을 옹호하는 이론가로 해석되어왔다. 루소의 사상은 흔히 움직이는 타깃(moving target)으로 비유되기 때문에, 그의 정치적 관점을 어느 한 지점에 정지해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사회계약론』이 그의 작품 세계에서 ‘하나의 전체’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라면, 그 전체와의 관계에서, 일관된 의미를 해석해내는 것은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3. 『사회계약론』의 핵심 주제

루소는 『사회계약론』 1권의 첫머리에서 저술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다음 두 인용문은 그의 의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문단1] 나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고 또한 법은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면서 시민적 질서 속에서 정당하고 신뢰할 수 있는 통치의 법칙이 있을 수 있는지에 관해 탐구해보고자 한다. 나는 이 연구에서 권리가 허용하는 바와 이익이 규정하는 바가 조화되도록 항상 노력할 것인데, 결과적으로 정의와 유용성이 대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사회계약론』, 46).

[문단2]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며, 그는 도처에서 사슬에 얽매여 있다. … 어떻게 이런 변화가 발생했는가? 나는 모른다. 무엇이 이것을 정당화하는가? 나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고 믿는다(『사회계약론』, 46).

[문단1]에서 루소는 정당한 통치 법칙을 탐구하는 것을 연구 목적으로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있는 그대로의 인간은 자연적 선함을 지닌 자연상태에 있는 자연인이 아니라 사회상태에 존재하는 이기적 인간이며, 법은 인간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제시되어 있다. 정당한 통치의 법칙에는 권리와 이익, 정의와 유용성이 조화되어 있는데, 이것은 권리와 정의라는 규범적 요구의 실현을 추구하는 플라톤적인 고대 철학의 전통과 이익과 유용성이라는 현실적 요구의 실현을 추구하는 마키아벨리적인 근대 철학의 전통을 조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루소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정치 체제는 ‘정당성(legitimacy)’에 근거하고 있다.

[문단2]는 정당한 통치가 인간이 지닌 본성적 자유를 보장하는 데 놓여 있음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며, 그는 도처에서 사슬에 얽매여 있다”는 문장은 대부분의 한국어 번역서에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도처에서 사슬에 얽매여 있다”라고 잘못 번역되어 있다. 프랑스어 원문 “L’homme est né libre, et partout il est dans les fers.”에서, 자유를 인간의 본질적 가치로 생각하는 루소의 입장을 고려하면, ‘est né’를 현재형으로 해석하여 “인간은 언제 어디서 태어나든지 항상 자유롭게 태어난다”고 해석해야 한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그리고’로 연결되는 다음 주절은 자유롭게 태어난 인간이 억압받는 모순된 현실을 적시하는 것이 된다. 그래야만 자유와 억압이 동시에 공존하는 인간의 모순된 상태가 부각되고, 이 모순을 해결해야 할 루소의 과제가 정당화되는 것이다.

루소가 어떻게 정당한 통치 법칙을 만들고, 또한 어떻게 정당한 사슬을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이 ‘일반의지’이다. 일반의지에 따라 만든 법이 정당한 통치 법칙이 되며, 또한 이 법이 타인에 의한 억압이나 강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다스린다는 자유와 ‘자치(self-rule)’의 이념을 실현한다. 이처럼 일반의지는 최고의 정치 체제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으로서 루소 정치사상의 핵심 개념을 형성한다.

 

4. 자유와 평등을 향한 일반의지

1) 일반의지의 계보학

자연상태의 인간이 자신만의 힘으로 자신의 생존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과의 협력을 통해 공동의 힘을 창출하여 장애물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사회계약을 맺는 계기이다. 사회의 각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모든 권리와 함께 자기 자신을 공동체에 양도하는 계약을 통해서, 각 구성원은 자연상태에서 누렸던 ‘자연적 자유’에 대신해서 ‘시민적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며, 모두가 함께 양도함으로써 평등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루소는 사회계약이 인간들 사이에 자연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신체적 불평등 대신에 도덕적이고 법률적인 평등을 가져다준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사회계약을 통해 자유와 평등을 확보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일반의지라는 최고의 지도 원리를 창출하게 된다.

사회계약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주권자’가 되며, 각 사람은 양도할 수 없고 분할될 수 없는 주권을 소유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주권은 ‘통치자의 지배적 권력’을 의미했는데, 루소는 주권을 ‘신민들이 지닌 최고의 권위’라는 의미로 전환시켜 모든 시민에게 주권을 부여하고 있다. 주권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은 정치철학에 있어 루소의 커다란 공헌이다. 이 주권자들이 사회계약을 통해 결정한 사항이 ‘공동의 권력(common power)’을 행사하는 일반의지를 정치 사회를 운영하는 최고의 지도 원리로 채택한다는 것이다. 일반의지에 따라 법률이 제정되며, 이 법률에 따라 정치가 이루어질 때, 그 사회는 정당한 정치 질서를 갖게 된다.

사회계약에 따라 만들어진 정치 사회에서 일반의지가 도출되는 과정을 루소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전체 의지(will of all)와 일반의지 사이에는 자주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후자는 공동 이익만을 고려한다. 전자는 사적 이익을 고려하며, 단지 사적 의지들의 총화일 뿐이다. 그러나 사적 의지들은 넘치고 모자라기도 하는데, 넘치고 모자라는 것을 서로 가감 상쇄하면 차이들이 남게 되는데, 그렇게 남아 있는 차이들의 총화가 일반의지이다(『사회계약론, 61).

우선 루소는 개인의 의지를 자신의 개별적(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개별 의지와 정치 사회의 공통 이익을 추구하는 일반의지의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일반의지는 한 개인의 의지 안에 존재하며, 개인이 일반의지를 따를 때 자기 이익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익도 보장하게 된다. 다시 말해 공동 자유와 평등을 확보하게 된다. 

일반의지가 지닌 ‘일반성’은 그 의지가 모든 사람에게 나와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갖추어야 확보된다. 여기서 일반의지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본질’에서의 일반성을 말하며,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는 것은 ‘대상’에서의 일반성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일반의지에 따라서 제정된 법은 주권자가 제정했다는 점에서 일반성을 가지며, 그 적용 대상이 모든 국민이거나 혹은 특정인을 지명하여 그 대상을 한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일반성을 확보한다.

일반의지는 개별 의지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일반의지를 따른다는 것은 자기의 자유의지를 따르는 것이 되며, 또한 모든 사람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공동의 자유를 따르는 것이 된다. 일반의지 속에서 공동의 자유가 보장되고, 서로 상호 이익을 고려하기 때문에 평등이 보장되며, 나아가 정의가 실현된다. 일반의지는 항상 옳지만, 개인이 계몽되지 않았거나 파당적 의견에 지배받게 되면, 일반의지는 억압받고 올바르게 표출되지 않게 된다. 일반의지가 억눌려 있는 사람은 “자유롭게 되도록 강제되어서(be forced to be free)”, 자신의 자유와 이익을 찾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루소의 입장이다.

 

2) 입법권의 원천으로서의 일반의지

주권자로서의 시민들이 갖고 있는 일반의지가 실질적으로 국가를 움직이고 지도하는 힘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은 법률로 표명되어야 한다. 입법은 정치체에 활동과 의지를 부여하는 행위이다. 입법권은 주권자가 가지며, 입법 행위는 다름 아닌 일반의지의 행위가 된다. 일반의지에 따라 만들어진 법률 체계는 시민에게 최대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 자유와 평등을 입법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루소의 평등 개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루소는 절대적 평등을 거부한다. 그는 “평등은 권력과 재산의 정도가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동등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는 한편, 빈부의 차가 어떤 한도를 넘어서지 않아야 할 것을 강조한다.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불평등이 사유재산 제도에서 기원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나, 『사회계약론』에서는 불평등의 해결책으로 사유재산 제도의 철폐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재산 제도를 인정하는 가운데 법률을 통해 빈부의 차이를 규제해야 할 것을 주장한다.

루소는 법에 의해 다스려지는 국가를 공화국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나는 법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모든 국가를, 그것이 어떤 정부 형태를 갖추든, 공화국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오로지 그때에만 공공 이익이 지배하고, 공공의 것이 중요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합법적인 정부는 공화제이다.”(『사회계약론』, 67) 전통적으로 공화정은 군주정에 대립되는 정치 체제로 인식되어왔지만, 루소는 이런 전통적 인식과는 달리 공화정을 정부 형태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 루소는 법의 집행을 담당하는 행정관의 수에 따라, 정부 형태를 민주정, 귀족정, 군주정으로 분류하고, 이러한 세 가지 순수한 정부 형태 이외에 다양한 양태를 지닌 혼합 정부가 가능함을 말한다. 이 세 가지 순수한 정부 형태는 법의 지배를 통치 원리로 하는 공화국과 결합될 수 있다. 그러므로 민주공화국, 귀족공화국, 군주공화국이 가능하게 된다. 이 세 가지 정치 체제는 그것이 모두 공화국인 한 정당한 정치 체제이다. 루소의 이상 국가는 공화주의 국가인 것이다. 각 공화국에서 어떤 정부 형태를 선택하는가 하는 문제는 각 국가의 인민의 성격, 자연적 환경, 지리적 환경, 역사적 경험 등에 의해 결정된다. 즉 각 국가에서 일반의지에 담는 구체적 내용은 상대적이고 다양한 차이를 갖게 된다. 

 

3) 사회계약과 최초의 입법자

국가가 성립된 뒤에는 주권자가 일반의지에 따라 법률을 만들며, 국가는 법률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그러나 자연상태에서 사회계약을 맺어 최초로 국가를 설립하려고 할 시기에는 아직 입법을 담당할 수 있는 주권자가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대중들은 국가를 다스릴 정치적 지혜나 경험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중들이 사회계약을 순조롭게 할 수 있도록 ‘사회성의 정신(social spirit)’을 함양하고, 이들에게 최초의 정치법 또는 기본법을 부여하는 사람이 ‘입법자(legislator)’이다. 입법자는 독립적인 자연인을 도덕적인 존재인 시민으로 만드는 역할을 수행한다.

입법자는 아직 정치적 지혜가 없는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신의 권위를 빌린다. 대중들은 신의 권위에 복종하여, 입법자가 부여한 기본법을 채택한다. 시민들의 동의는 필수적인데, 왜냐하면 주권자의 동의 없이는 법률이 제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입법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회계약이 이루어지고 기본법이 채택되면 더 이상 사회에 머물지 않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국가가 성립된 이후, 주권자는 입법자에 대신해서 사회성의 감성(sentiment of sociability)을 함양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주권자는 시민 종교의 교리를 믿게 함으로써 사회성을 함양하여 법에 대한 복종심을 강화한다.

루소의 입법자에 관한 논의는 상당히 설득력을 갖지만, 그 논의가 지닌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과연 그렇게 신과 같은 입법자가 현실 세계에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루소는 역사적으로 모세, 리쿠르고스, 누마와 같은 정치가들이 등장해서 입법자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러한 성격을 지닌 입법자들이 역사적으로 필요한 시점에 반드시 나타난다는 보장은 없다.

 

4) 일반의지의 집행자로서의 행정부

루소는 주권자와 정부를 구분한다. 정부는 집행권의 담당자로 주권자가 만든 법을 실천에 옮기는 임무를 수행하는 주권자의 심부름꾼이다. 입법권은 주권자가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법을 제정한다는 의미에서 그 성격이 일반적이지만, 집행권은 특정한 행정관이 특정한 대상을 상대로 구체적인 법을 집행하기 때문에 그 성격이 개별적이다. 루소는 정부를 법을 만드는 주권자와 이 법에 복종하는 신민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적인 단체로 규정한다.

정부는 신민과 주권자 사이의 상호 연락을 위해 만들어진 중간적인 단체로 법률을 집행하고, 사회적ㆍ정치적 자유를 유지시키는 임무를 맡고 있다. 이 단체의 구성원은 행정관 또는 왕인데, 이들은 통치자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 모두를 통틀어 군주라고 부른다(『사회계약론』, 78-79). 통치자들(혹은 행정관들)은 본성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증대시키려고 한다. 행정관들은 세 가지 의지를 가지고 있는데, 정당한 정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행정관들이 자신의 개별 의지보다 일반의지를 따를 것이 요구된다.

통치자들에 있어서 사적 의지가 가장 강하고, 일반의지는 가장 약하며, 단체 의지는 중간에 위치한다. 통치자들의 타락, 다시 말해 정부의 타락은, 통치자가 일반의지를 무시하고 사적 의지를 앞세울 때 시작된다. 주권자와 정부 사이에 다시 균형을 찾으려면 주권자의 힘이 커져야 한다. 주권자의 힘이 커지기 위해서 주권자 집회가 자주 열려야 한다. 왜냐하면 집회가 열리는 순간 주권자가 최고의 권위를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루소는 주권자의 권위가 사회계약까지 폐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주권자는 자신의 권위를 사용하여 정부를 감독하고 감시하여 정부의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

주권자 집회를 강조하는 루소의 입장은 대표제도, 대의제도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된다. 루소는 개인의 의지, 나아가서 일반의지는 대표될 수 없다고 말한다. 대표제도에 대한 루소의 비판적 시각은 영국으로 향한다. 그는 영국의 인민들이 선거 기간에만 자유로울 뿐 선거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고 선언한다: “영국의 인민들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큰 오해이다.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단지 의회의 의원을 선거하는 기간에 한정될 뿐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 그들은 다시 노예가 되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된다.”(『사회계약론』, 102)

5) 일반의지가 실현된 역사적 사례로서의 로마 공화국

루소는 책을 마무리 짓는 4권에서 일반의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부각하고, 로마 공화국을 일반의지에 따른 통치가 가능했던 역사적 경험으로 제시하고, 끝으로 일반의지에 감성적이고 정신적 기초를 마련해주는 시민 종교에 대해 논의한다. 루소는 주권자 집회가 항상 올바른 일반의지를 산출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일반의지가 제대로 표명되기 위해서는 국가 내부에 당파나 부분적 집단이 없어야 하며, 각 시민은 오직 자신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 만약 당파가 영향을 미쳐 개인들의 의견을 오도한다면 일반의지는 제대로 표출되지 못하고 억눌리게 된다. 루소는 이러한 사태에 대해 일반의지가 소멸되었다거나 타락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일반의지는 언제나 변함없이 존재하고, 순수하다. 다만 우세한 다른 의지가 압도했을 뿐이다.”(『사회계약론』, 109)라고 말한다. 시민들이 기망에 빠져 일반의지를 표출하지 못했을 뿐, 그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순수한 일반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투표는 시민들의 마음속에 있는 의지를 표출하는 방법이다. 보통은 표를 계산하여 다수의 표를 획득한 것을 일반의지로 판명한다. 하지만 루소는 다수결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다수의 의견 속에 일반의지가 존재한다고 일단 보고 있으나, 만약 다수의 의견이 억압된 상태에서 표명된 것이라면 그것은 일반의지가 아니며, 자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6) 일반의지의 형성과 유지를 위한 정신적 토대

일반의지는 ‘공통 이익(common interest)’을 추구하는 주권자의 의지이다. 그러나 이익은 시민들을 결합시킬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익이 갖는 결합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공통 이익을 인간 영혼에 존재하는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힘으로 강하게 보장할 필요가 있다. 루소는 이러한 힘을 생성하는 원천으로 ‘마음의 법’과 ‘시민 종교’의 신조를 말하고 있다. 우선 마음의 법은 시민에게 습관의 힘을 생성시킨다. 

다음으로 시민 종교는 시민에게 사회성의 감성을 함양하며, 법률에 복종하는 복종심을 키우는 데 기여한다. 최초의 입법자가 종교를 이용하여 대중들을 사회계약으로 이끌고 기본법을 채택하게 하였다면, 국가의 주권자는 종교를 이용해 시민들이 자신들의 의무를 사랑하게 만든다. 

5. 결어

루소의 일반의지는 여전히 현대에도 유효한 개념이다. 그렇다면 일반의지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사회계약론』에 담겨진 여러 가지 내용도 현대 정치에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생각한 바의 다섯 가지 교훈을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인간에게 최대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자유, 평등의 근본적 가치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필요하다. 일반의지는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의지이다. 이 일반의지를 잃은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 일반의지를 행사함으로써 행복한 시민적 삶을 완성해야 한다.

둘째, 다수의 의지가 항상 일반의지와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일반의지는 항상 올바르지만, 그것을 인도하는 판단이 항상 현명하다고 볼 수 없기에, 올바른 일반의지를 갖기 위해서는 개인이 계몽될 것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파당이나 정치꾼의 레토릭이 시민의 의사 형성에 영향을 미쳐 일반의지를 오도할 것을 경계해야 한다. 또한 통치자는 자신의 사적 의지나 휘하에 있는 권력 조직의 단체 의지를 일반의지로 포장해서 시민의 지지를 얻어 자신과 조직의 권력을 확대하고 영속화할 경향이 농후하므로 이 역시 경계해야 한다. 일반의지가 오도되고 또 기망에 빠지게 되면 일반의지를 앞세운 포퓰리즘이 득세하게 되므로, 우리는 항상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포퓰리즘의 등장을 경계해야 한다.

셋째, 헌법 1조에 규정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선언의 의미를 루소의 이론을 통해 분명히 알아야 한다. 공화국은 인민 전체인 주권자가 제정한 법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지는 국가이다. 민주공화국은 법치주의에 따라, 시민의 다수가 법의 집행에 참여하는 제도이다.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것은 인민주권을 침탈하는 것이고, 인민의 입법권이 파괴될 때 국가의 심장은 멈추게 된다.

넷째, 시민들은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통하여 일반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법률의 집행을 담당하는 통치자나 행정관은 자신들의 사적 의지나 단체 의지를 일반의지보다 앞세우려는 강한 자연적 경향을 갖는다. 이는 행정권의 강화로 귀결되며, 시민은 행정 권력의 압제에 신음하게 된다.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주권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정부를 감시하고 감독해야 하며, 비대해진 행정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 

다섯째, 시민 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 루소는 일반의지의 생성을 돕는 정신적이고 감성적인 조건으로 습속, 관습, 여론 그리고 시민 종교의 교리를 말한다. 이 두 조건을 갖추려는 노력은 궁극적으로 시민 교육과 연관된다. 한 시민이 일반의지를 제대로 갖기 위해서는 계몽과 교육이 필요하다. ‘시민 교육’이 전제되지 않는 법치주의 또는 공화주의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와 평등을 달성할 수 없다.

필자는 앞에서 『사회계약론』을 ‘하나의 전체’ 속에 이해해야 할 것을 주장했다. 이 ‘하나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루소 철학의 대원칙은 “인간은 본성적으로 선하지만 사회에서 타락되었다”는 것이다. 루소는 이 책에서 시민이 자유, 평등, 정의라는 덕성을 갖출 때, 정당하고 좋은 정치 질서, 다시 말해 공화주의적 정치 질서가 가능해지고, 모든 시민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