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와 팬데믹 시대의 인간과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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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와 팬데믹 시대의 인간과 지구
  • 김춘진 서울대학교·스페인문학
  • 승인 2021.09.27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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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인류 문명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인간이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만한 적이 있다. 허세였다.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먹이사슬 정점에 있는 최고 포식자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오늘날 압도적 기술 문명으로 최고 포식자의 지위가 공고해질수록 역설적으로 더 분명해지는 것은 지구 생태계의 유한하고 나약한 수많은 생물 종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서양 중세 신학을 넘어 근대 학문의 중추로,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주의 세계관으로 우뚝 섰던 인본주의 학문은 이제 인간을 중심에서 끌어내려 모든 생명의 평등을 강조하는 생태학, 또는 야생과 문명의 가치 서열보다 차이를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담론들로 귀결되는 중이다.  

더욱이 현대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기는커녕 오히려 지구 생태계의 무도한 파괴자로 군림해왔다. 대량 에너지 소비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다. 유엔 산하 정부 간 협의체(IPCC)의 보고는 산업화 이후 앞으로 20년 안에 지구 연평균 기온은 1.5도 상승할 것으로 내다보고 다가오는 중대한 위협을 경고했다. 2015년 파리협약은 위기에 대한 세계의 공동 대응 기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도 현실주의 정치가들을 비롯한 회의론자나 음모론자들이 기후 위기를 가상의 가공된 위협에 지나지 않는다고 무시하려 들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위기 징후가 기록적 홍수, 가뭄, 산불, 빙하 해빙과 해수면 상승 등 다양한 기상 이변과 재앙으로 현실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후 온난화와 기상 재앙은 물론 대기 오염과 플라스틱 오염 등은 모두 인간의 과다한 욕망과 소비가 초래한 지구 파괴 현상들이다. 생태 터전인 지구가 거주 불가능한 불모의 행성으로 변해가고 있다. 지질학적 현재인 인류세(anthropocene)에 생물은 대멸종기에 진입했다고 한다. 과거 어느 대멸종기보다 빠른 속도로  하루 800종 이상이 사라지고 있다고도 한다. 인류는 역사상 유례없는 전지구적 전염병 코로나19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두 해 동안 인류를 괴롭혀 온 코로나19는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인간에 대한 바이러스의 공격이다. 문명의 확장으로 야생의 경계를 침범한 데 기인하지만 온난화가 초래한 생태 환경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되짚어 생각하면, 기후 환경과 팬데믹 위기는 인간에 대한 지구의 경고다. 인류가 함께 귀 기울여야 한다. 수백만 종 생명들이 갈라지고 진화해 한 그루 나무처럼 하나의 공동 운명체를 이루어 온 아름다운 지구다. 목성 탐사를 기획한 칼 세이건은 보이저 위성이 태양계를 벗어날 즈음 작동 불능의 위험을 무릅쓰고 방향을 돌려 지구를 뒤돌아보게 했다. 그 역사적 순간에 보이저가 찍은 지구 사진이 압권이다. 광대무변 우주 한 공간에 보일 듯 말 듯 반짝이는 먼지 하나, 푸른 빛 점 하나였다. 생존 경쟁으로 아우성치는 수많은 개체들은 그저 한 덩어리 점이었다. 너와 내가 구별되지 않았다. 모두 개체이면서 전체이고 다르면서 같은 것이다. 인간도 인류의 문명도 그저 하나의 지구일 뿐이었다. 아득히 먼 우주로부터 보이저가 인류에게 보내온 사랑과 연대의 메시지였다.    

지금이야말로 개인을 넘고 국가를 넘어 초개인적 초국가적 세계 인류 연대가 절실한 때다.  우리의 지구를 지속 가능한 아름다운 생명의 터전으로 지켜야 한다. 우리가 자초한 환경 위기를 극복하고 후손들에게 생명력이 넘치고 지속 가능한 아름다운 지구를 물려주는 것은 앞서 사는 세대의 의무일 뿐만 아니라 인류 생존의 과제다. 개체로는 만물의 영장일 수 없지만 연대하는 인류는 위대한 문명을 연출한다. 과도한 탐욕으로 지구를 파괴했지만 동시에 경이로운 정신과 협동 능력으로 지구를 구할 수도 있다. 이미 세계는 하나다. 세계가 합의하고 동참하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는 지구 환경 회복의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갈 로드맵이다. 문제는 연대의 실천이다. 위기를 극복하고 더 살기 좋은 지구의 미래를 만들어 가려는 세계 시민 공동의 실천적 의지와 노력이 관건인 것이다. 

기술적 환경도 준비되었다. 이른바 집단 지능의 시대다. 정보 기술 인터넷을 통한 지능 연대와 협동이 문명의 확장을 주도하고 있다.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든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고 무슨 생각이든 세계의 누구와도 동시에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스웨덴의 학생 기후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처럼 누구든 자기의 문제의식을 세계와 공유하고 연대를 외칠 수 있다. 갈수록 인간관계가 이기적이고 파편화되는 현대 인류에게 아이러니하게도 무궁무진한 연대와 협동의 기술이 주어진 것이다. 인류의 사랑, 그리고 연대와 협동은 오늘날 생태적 위기에 처한 인류에게 가장 긴요하고 또 실천 가능한 덕목이 되었다.      


김춘진 서울대학교·스페인문학

한국외국어대 서반아어과를 졸업하고 스페인 마드리드 아우토노마 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 서울대 스페인중남미연구소장, 라틴아메리카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스페인피카레스크소설』, 『보르헤스』(편저), 『스페인어권 명작의 이해』(공저), 『차이를 넘어 공존으로-스페인어권 세계의 문화 읽기』(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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