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만든 욕망의 집합체, 비너스…여신의 역사는 곧 인간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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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만든 욕망의 집합체, 비너스…여신의 역사는 곧 인간의 역사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09.06 1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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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신의 역사: 비너스, 미와 사랑 그리고 욕망으로 세상을 지배하다 | 베터니 휴즈 지음 | 성소희 옮김 | 미래의창 | 232쪽

 

역사가 기록되기 전부터 인간은 여신을 원하고, 상상해내고, 사랑했다. 여신은 생존이 위협받았던 선사시대에는 생명과 다산의 상징으로, 학문이 발달한 고대 그리스에서는 신화 속 미와 사랑의 화신으로 나타났다. 로마인들에게 비너스는 사상과 정치의 핵심이었고,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자들에게는 영감을 주는 뮤즈였다. 때로는 전능한 신이었으며, 때로는 여성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었던 비너스는 이름과 형태만 바뀐 채로 재탄생해 오늘날까지 우리를 매혹하고 있다. 여신은 미와 사랑, 섹스, 전쟁, 폭력 등 인간이 욕망을 투영하는 대상이었다. 따라서 여신의 역사는 곧 인간 욕망의 역사다.

저자는 수십 년간 여신의 자취를 따라 그리스 신전과 중동의 발굴터, 폼페이의 가정집 등 수많은 유적지를 직접 찾고 조사했다. 그렇게 얻은 생생한 역사적 기록을 이 책에 담았으며, 신화를 비롯한 고대 문헌과 예술, 고고학 연구와 철학적 사유를 촘촘히 엮어 비너스 뒤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친다. 

흔히 비너스 하면 벌거벗은 여인 이미지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비너스는 최초로 문명이 탄생한 때부터 지금까지 인류 역사의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 인간은 왜 여신을 만들어냈을까? 그리고 왜 지금도 우리는 여신과 같은 아름다운 무언가를 욕망하고 있을까? 저자는 역사적 증거로 그 답을 풀어간다.

중동의 한 지방에서는 도끼에 갈비뼈와 다리가 베이고, 화살에 두개골이 뚫린 청동기시대 유골 수백 구가 발견되었다. 이처럼 전쟁과 폭력이 난무했던 당시 중동에서는 인간의 파괴적 충동을 설명하기 위해 죽음과 전쟁의 여신들을 만들어냈다. 한편, 서구 세계에서도 여신이 탄생했다. 그리스인들은 미와 사랑을 향한 불같은 욕망을 신화로 설명했다. 동서양이 교류하면서 중동의 여신들, 그리스 여신, 지역 토착 여신이 하나로 혼합되어 아프로디테가 태어났다.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한 후에도 그리스 전역에 퍼졌던 아프로디테 숭배 문화는 이름만 비너스로 바뀐 채 계속되었다. 비너스는 로마 시대에는 세계 정복의 야심을 후원하는 존재로,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문주의자들의 뮤즈로 빛을 발했다. 형태를 바꾸어 재탄생한 여신은 그 시대를 반영하는 최고의 역사적 증거인 셈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벌거벗은 비너스는 비교적 최근에 나타났다. 근대에 들어서자 비너스는 욕정을 자극하는 인간 모델로 전락했다. 여성들은 과거 여신들이 가졌던 위엄과 능력은 가질 수 없었으나, 여신의 아름다운 육체는 본받아야 했다. 비너스는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보는 억압과 차별의 구실로 사용되었다. 지금도 비너스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일상에 들어와 있다.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아프로디테의 꽃 ‘장미’를 선물하며, 피부를 가꾸기 위해 비너스의 새 ‘비둘기’가 그려진 비누를 쓰고, 비너스의 과일 ‘석류’와 아름다운 여자를 연관 짓는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여신과 같은 어떤 대상을 사랑하고, 욕망하고, 바라고 있다.

미와 사랑, 섹스, 폭력, 정복 등 고대부터 인류가 여신을 통해 욕망했던 것들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유효하다. 욕망은 우리가 존재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자극하는 삶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여신은 인류가 사회를 이루고 협력하도록, 서로 관계를 맺도록 돕는 존재였다. 고대인들에게 비너스는 매춘과 육체적 만남을 수호하는 신이자 동시에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매개체였다. 비너스가 수호하는 아름다움은 육체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아름다움도 포함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랫동안 철학가와 예술가, 심리학자들에게 비너스는 영감을 주는 흥미로운 주제였다. 그러니 서구 문명과 그 영향 아래 있는 지금 이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여신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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