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출판의 활성화는 요원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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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출판의 활성화는 요원한가
  • 백원근 서평위원/책과사회연구소 대표·출판평론가
  • 승인 2021.09.06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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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올해는 ‘60+ 책의 해’이다. 2018년 ‘책의 해’와 2020년 ‘청소년 책의 해’에 이어, 고령자의 독서환경 개선을 위한 토양을 조성하고 밑돌을 놓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후원하고 책과 관련된 작가·출판·서점·도서관·독서 단체가 힘을 모아 시행하는 단년도 사업이다. 

여전히 계속되는 코로나19 상황에서, 그것도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시범 사업들의 추진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 주요 사업으로는 독거노인 600명에게 자원활동가들이 책을 낭독해 읽어주는 <전화로 책 읽어드립니다> 및 효과 연구, 고령자 참여 책 추천 이벤트 <60+ 세대가 60+ 글자로 건네는 책 이야기>, 고령자 독서동아리 참여자 등이 책을 영상으로 추천하는 <백 세 인생 내 인생의 책>, 책과 더불어 행복한 고령자 모습을 담는 <60+ 사진 공모전>, 전국 10개 공공도서관에서 고령자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60+ 책 마실 가세> 공모 사업, 전국 8개 서점에서 고령자 글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작가와 함께 하는 행북(BOOK)학교>, 병원과 치매안심센터에 방문하는 치매 환자 1,000명에게 책을 선물하는 <치매 환자를 위한 책 선물>, 독서동아리 지원사업에서 60세 이상 참여 동아리를 집중 지원하는 <60+ 독서동아리 지원>, 홈페이지와 소셜미디어(SNS)에서 고령자가 읽기에 적합한 책을 소개하는 <60+ 책 추천>, 4차례에 걸친 포럼 행사 등이 진행되고 있다.     

‘60+ 책의 해’는 2025년부터 시작되는 우리나라의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고령자 친화적인 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소산이다. 국제연합(UN)이 정한 기준에 따라,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의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서 고령자 독자를 위한 독서 자료를 공급하는 시니어 출판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시니어 출판의 여건은 아직까지 열악하다. 국내 최대 온·오프라인서점인 교보문고 구매자 기준으로 볼 때 60대 이상 독자가 출판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5% 수준으로 인구 비중에 훨씬 못 미친다. 이는 저조한 독서율에 기인한다. <국민 독서실태 조사>(문화체육관광부, 2019)에서 60대 이상 독서인구 비율은 31.5%였고, 1주일에 1회 이상 책을 읽는 독서인구 비율은 10.8%였다. 통계청이 조사한 <사회조사>(2019)에서 65세 이상 연간 독서율은 21.2%, 연평균 독서량은 1.8권 정도였다.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노인실태조사>(2020)에서는 65세 이상 노인의 주된 여가 활동 중 ‘독서/만화책/종교서적 보기’는 2.4%에 불과했다. 책을 습관적으로 읽는 사람은 실질적으로 100명 중 2명 정도인 현실을 보여준다. 
     
이렇듯 독서인구의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시니어 출판시장은 활성화되기 어렵다. 고령자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2020년 28.7%)인 일본의 경우 이미 1995년에 고령사회대책기본법을 만들었다. 출판 현황을 보면 건강, 장수, 수면, 치매 예방, 요리, 패션, 성과 사랑, 여행, 반려동물, 법률, 금융, 창업, 시니어 대상 서비스 등 모든 영역에서 시니어에 특화된 다양한 도서 발행이 활발하다. 책 읽기가 생활화된 고령자 비율도 높다. 소니생명보험이 조사한 <시니어 생활 의식 조사>(2020)에 따르면 ‘노년층의 10가지 즐거움’(복수 응답)은 ‘여행’(43.4%), ‘텔레비전 시청’(34.6%)에 이어 ‘독서’(29.2%)가 세 번째 순위로 올랐다. 이 덕분에 남성 시니어 월간지인 <시라이>는 약 10만 부, 여성 시니어 월간지인 <하루메쿠>(옛 이키이키)는 38만 부나 발행될 정도다. 출판 트렌드는 1990년대에는 노화와 죽음, 2000년대에는 건강, 2010년대에는 생활, 요리 레시피, 간병 만화, 노년 문학 등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150만 부 이상 팔린 사토 아이코의 밀리언셀러 『90살, 뭐가 경사야』의 평균 구매 연령이 66세라니 고령자들의 독서 열기가 얼마나 높은지 짐작할 수 있다. 정년 이후의 삶의 방식에 대한 관심, 고령자를 배려한 요리책, 재능 있고 장수하는 고령 저자의 책, 1천억 원대가 넘는 퍼즐잡지 시장의 존재 등은 한국 출판시장의 미래를 점칠 수 있는 참조 자료다. 미국의 경우 시니어 전용 도서를 반스앤노블 서점에서 찾아보면 4,805종(건강, IT 중심), 큰글자책은 35,745종이 검색될 정도다.  

지난 8월 20일 유튜브 생중계로 열린 포럼 ‘시니어 출판시장의 오늘과 내일’에서는 출판시장에서 고령자의 구매력이 부족해 출판사들이 적자를 볼 수밖에 없으니 출판사들의 적극적인 시장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렇지만 출판시장의 특성으로 수요가 공급을 만든다는 측면과는 상반된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측면을 주목할 때다. 시니어 맞춤형 출판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출판계와 출판 지원정책의 연계를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할 때라는 점은 분명하다.

원천적으로 시니어 독자가 필요로 하는 콘텐츠는 물론이고 고령자를 돌보는 가족을 위한 책, 시니어 서비스 종사자를 위한 책, 시니어 도서 선정 지원제도의 신설 등 출판 활성화 방안이 필요하다. 시니어 맞춤형 출판 방식인 큰글자책과 오디오북의 활성화를 위한 주문형 출판 및 시니어 플랫폼 구축, 온·오프라인 서점에서의 시니어 독자를 위한 북 큐레이션, 함께 읽는 시니어 북클럽의 활성화, 시니어 친화적인 도서관 환경의 조성 등 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출판 생태계는 저술, 출판, 유통, 판매, 독서 행위가 선순환 구조를 만들 때 성장·발전할 수 있다. 누구든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 시니어 출판과 독서환경이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것이라면, 이제 산업적 시각에서만이 아니라 독서복지의 측면에서 그 발전 방안에 지혜를 모아 나갔으면 한다. 통계청의 <2020 고령자 통계>에서 우리나라 고령자 4명 중 1명(25.0%)만이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절대다수가 좀 더 행복해지는 사회를 만드는 데 책과 독서환경의 역할이 더욱 커지기를 바란다. 


백원근 서평위원/책과사회연구소 대표·출판평론가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로 한국출판학회 출판정책연구회장, 일본출판학회 정회원이다. 대학에서 출판문화론 등을 강의한다.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문화체육관광부 규제개혁위원, 서울도서관 네트워크 위원장, 경기도 지역서점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한국출판산업사』를 썼고, 옮긴 책으로 『서점은 죽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책』, 『책의 소리를 들어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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