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위 단양강 잔도와 만천하 스카이워크
상태바
벼랑위 단양강 잔도와 만천하 스카이워크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1.08.30 07: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류혜숙의 여행이야기]_ 충북 단양 단양강 잔도

 

 

                          단양강 잔도. 정면은 상진철교, 만학천봉 위에는 만천하스카이워크가 앉아 있다.

단양강은 한강이고, 남한강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상진(上津)’이라 기록되어 있다. 상진대교를 건너며 옛날에 나루가 있었겠다고 생각했는데 단양강을 통째 진(津)이라 했던 모양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단양강은 ‘천 바위와 만 구렁에 한강(一江)이 돌고, ... 긴 강(長江)이 옷깃처럼 싸고 일만 산을 돌았다’고 묘사되어 있다. 그렇게 흘러 흘러온 단양강은 단양 읍내를 크게 감싸며 굽이치고 상진대교와 상진철교 아래에서 다시 한 번 남쪽으로 크게 휘면서 벼랑을 깎아 세운다. 만개의 골짜기와 천개의 봉우리라는 만학천봉(萬壑千峯)의 단애다. 도포를 닮았다고 ‘옷바위’라고도 부른다. 도포자락에는 포효하는 호랑이 문양이 있어 예부터 신성시되었고 하나의 소원을 빌면 이루어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잔도(棧道)는 그러한 벼랑에 매달려 있다.

 

                                  단양강 잔도. 길이 1.2km 정도로 만학천봉 단애에 매달려 있다.
                   상진철교와 만학천봉 위의 만천하스카이워크. 철교 아래로 잔교가 지나간다.

상진대교를 건너면 바로 나무 데크로 이어진 잔도가 시작된다. 벼랑에 매달린 길, 커다란 강과 함께 흐르는 길, 단양강의 잔도는 백작의 가슴 위에서 반짝거리는 긴 목걸이 같다. 상진철교 아래를 지난다. 기차가 지나갈 때는 잠시 기다렸다가 가라는 안내 문구가 있다. 전동 휠체어, 전동 휠, 퀵 보드는 통행금지다. 잔도의 전체 길이는 1천200m, 폭은 2m 정도다. 대부분이 나무 데크 길이지만 중간 중간 발아래가 훤하다. 낙석지대 푯말이 붙은 곳에는 아케이드가 설치되어 있고 파이처럼 겹겹으로 주름진 벼랑에는 철망이 쳐져 있다. 벼랑의 주름에 뿌리내린 풀들의 향이 짙다. 여리고 노란 꽃들이 철망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어딘가 숨어있는 스피커에서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온다. 베토벤과 쇼팽과 크라이슬러가 잔잔하다. 포르테조차도 은근하다. 음량을 결정한 이에게 경의를 보낸다. 

 

                               단양강 잔도 대부분에 낙석방지 등을 위한 아케이드가 설치되어 있다. 
                                      공중 정원을 통과하는 것 같은 단양강 잔도 구간.

강물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구름은 묵은 솜이불처럼 두꺼웠지만 곧 물러날 뜻을 내비치듯 희미한 푸름을 머금고 있다. 긴 머리의 여자가 시폰 원피스를 사각거리며 지나간다. 커플티를 입은 연인이 속닥거리며 지나간다. 중년의 부부가 깍지 낀 손을 흔들며 경쾌하게 스친다. 그들의 발걸음 아래로 강물이 흔들리고 윤슬이 반짝인다. 멀리 철교 위를 기차가 지나간다. 천천히 조용하게. 이 길에서는 느릴수록 호사스럽다. 완전 무장을 한 한 무리의 관광객이 밀물처럼 온다. “이런 산책길이 또 어디 있겠어요?” 인솔자의 음성에서 책무의 기쁨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곧 공중 정원과 같은 길이 나타난다. 푸른 나뭇가지 아래에 벤치가 놓여 있고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고요함을 배우고 한가로움을 훔친다.’ 이제 잔도는 끝이다. 

 

                                                     만학천봉 위의 전망대, 만천하스카이워크.

길 끝에 아이스크림 아저씨가 계신다. “이곳이 공식적인 잔도 입구인가요?” “그렇죠.” 단양강 잔도는 2017년 9월 1일 열렸다. 단양에는 여러 길들이 조성되어 있는데 강과 함께하는 길은 ‘느림보 강물길’이다. 총 16.1km에 1구간 삼봉길, 2구간 석문길, 3구간 금굴길, 4구간 상상의 거리, 5구간 수양개역사문화길로 나뉜다. 단양강 잔도는 그 중 5구간에 속해 있다. “전망대는 저쪽으로 가면 됩니다.” 수많은 길들과 수많은 볼거리들이 있지만 ‘잔도’와 ‘전망대’는 단양이 ‘가장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전망대는 만학천봉 꼭대기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만천하스카이워크’다. 나선형으로 상승하는 형상이 템즈 강변의 런던시청과 닮았다. 매표를 하면 셔틀버스를 타고 전망대까지 오른다.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아 곧장 치고 오를 수 있을 것만 같지만 버스는 만학천봉의 뒤쪽 산자락을 타고 굽이굽이 오른다. 그만큼 강변 쪽 가파름이 심하다는 뜻일 게다. 오르는 길도 장관이다. 

 

                                     전망대가 앉은 봉우리가 꽃밭이다. 하늘 길 놓인 자리가 꽃자리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길, 사방의 천하가 열린다. 

전망대가 앉은 봉우리가 꽃밭이다. 하늘 길 놓인 자리가 꽃자리다. 지나치게 어여뻐서 자꾸만 멈춘다. 그러나 전망대의 완만한 슬로프에 발 딛자 어여쁨도 잊는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길, 그때마다 사방의 천하를 보여주는 길이 몽롱하고 하늘로 오르는 사람들의 실루엣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정상에 오르면 북쪽으로 만개의 골짜기와 천개의 봉우리가 만학천봉의 단애를 뒤따르듯 굼실굼실하다. 동남쪽으로는 일만 산을 돌아 나온 강이 단양읍을 감싸고 멀리 소백산 비로봉이 아련하다. 남서쪽으로는 제자리에서 멀어지는 커다란 단양강과 죽령이 거침없다. 정상에는 세 방향으로 하늘길이 나 있다. 투명한 바닥은 120m 아래로 수직낙하 하는 허공이다. 어떤 이들은 성큼성큼 신처럼 걸어 들어가고, 어떤 이들은 선뜻 발 들이지 못한다. 투명한 바닥의 단단한 프레임만을 골라 디디며 휘청휘청하는 누군가도 있다. 모든 사람들의 표정은 놀라울 만치 환하고 다시 내려서는 걸음들은 빠르다. 하늘은 점점 푸른색으로 번져 나갔고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전망대에서 본 단양읍내. 아래는 상진철교와 상진대교. 
                                                  전망대 꼭대기에 바닥이 투명한 하늘길이 나 있다.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대학에서 불문학을,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무가지 음악잡지 ‘Hole’을 만들었고 이후 무가지 잡지 ‘문화신문 안’ 편집장을 잠시 지냈다. 한겨레신문, 주간동아, 평화뉴스, 대한주택공사 사보, 대구은행 사보, 현대건설매거진 등에 건축, 여행, 문화를 주제로 글을 썼으며 현재 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 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청송의 혼 누정』, 『물의 도시 대구』(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